역사의 무게: Volkstrauertag 독일 추모행사
크리스마스 6주 전의 일요일 (대림 2주 전)은 독일의 Volkstrauertag (국민추모일)로, 한국의 현충일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날이다.
이 날은 전쟁으로 순국하신 분들을 추모하는 날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난 모든 이를 기리는 행사인데, 독일에서 14년 넘게 생활했지만, 한 번도 이 추모식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고, 솔직히 큰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는데.. 학교에서 열리는 Opferfeier (추모식)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성악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데 왜 자꾸 노래를 하는 기회가 주어지는지 모르겠다..엉엉…)
노래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원래 낮은편인데 너무 높은 음역대 때문에 연습하는 동안 꽤 애를 먹었다.. 하지만 노래를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고인들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내 목소리가 그들의 영혼과 남겨진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길 간절히 바랐다.
이번 추모식의 주제는 전쟁으로 순국하신 군인들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아내, 남편 등 우리가 잃은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시간이었는데, 무거운 분위기의 행사였지만, 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니 그들의 슬픔에 조금이라도 공감하고 위로를 건넬 수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뭉클했다.
그중에는 6.25 전쟁때 한국으로 가서 군복무를 하다가 독일로 돌아온 사람의 가족도 있었다. 사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있었는지 채 100년이 되지 않았고, 희생자의 가족으로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마치 전쟁이 수 세기동안 안 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음에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또 Beuron (보이론) 수도원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이 행사는 보이론 출신의 선교사가 6.25 전쟁 당시 북한 포로로 잡혀 희생된 사건을 기리기 위해 매년 열리는 것으로, 독일 남서부의 작은 마을인 이곳에서 그들의 희생을 기억, 추모한다.
행사는 보이론 출신 선교사뿐만 아니라, 6.25전쟁 당시 순교한 모든 분들을 기리고 있다. 독일에서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되새기며, 정말 묘한 감정을 느꼈다.
특히, 북한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몇몇 독일 신부님들의 이름이 언급되었을 때는 마음이 무겁고 또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 만약 그분들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아마도 이 추모식에서 6.25전쟁 이야기가 거론되지 않았을 것이고, 나는 이 곳에 올 이유도 없었겠지..
이 두 행사에서 공교롭게도 6.25 전쟁의 희생과 아픔이 중심적으로 다뤄졌다.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그로 인해 겪은 고통과 상처를 기리는 이 추모식에서 내가 깨달은 점은,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이 순간, 나도 모르게 고민에 빠져든다. '과연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그들의 노력에 부합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아픔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자문하게 된다.
내가 독일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들이 지켜온 나라와 그들의 희생이 나의 삶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되새길 때, 마음 한켠에서 죄송함과 함께 책임감이 느껴진다.
비록 나는 한국이 아닌 독일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그걸로 충분히 의미있는게 아닐까..!
Dank ihrer Opfer bin ich heute hier.
그들의 희생 덕분에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