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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스텔라 Nov 21. 2024

다시 찾은 응급실

Lieber Vorsicht als Nachsicht.

2022년 10월 23일, 나는 프라이부르크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사건은 가파른 언덕길에서 시작한다.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던 중, 양쪽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이미 가속이 붙은 상태라 멈추기엔 너무 늦었고,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거 진짜 큰일 났다... 근데 일단 신나니까 가보자!'

그렇게 아무 일도 없길 바라며 내려가던 중,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자동차가 보였다. 순간 속에서 본능이 외쳤다. '차보다는 벽이 낫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가속이 붙은 상태로 방향을 틀어 건물을 향해 돌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전거를 버리고 바닥으로 뛰어내렸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그러려면 나는 이전에 여기 대신 소림사에서 공중제비 기술이라도 배웠어야 했겠지...

유감스럽게도 나는 사진의 소림사 무술과 같은 멋진 공중제비는 하지 못하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걸 알면서도 손을 떼지 못한 채, 나는 그대로 벽과 강렬한 만남을 가졌다.

마치 파리채에 눌린 파리처럼 벽에 붙어버렸다. 자전거는 휘어졌고, 내 얼굴은 그 모든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나는 얼굴을 브레이크 삼아 멈춘 것이다. 허허..


벽과 충돌한 뒤 잠시 기억이 끊겼다. 정신을 차렸을 땐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고, 다른 사람은 얼음팩을 가져다줬다. 그제야 왼쪽 볼이 욱신거린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응급실로 실려간 뒤로는 기억이 희미하다. (고마운 사람들.. 얼굴이 기억 안 나서 감사인사도 못했다.)

여담으로 모든 광경을 지켜본 남자친구는 망부석이 된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한다.


응급실에서 기억나는 건 단 두 가지다. 의료진이 귀걸이와 목걸이를 빼려 하자, “그거 선물 받은 건데, 잘 보관해야 해요!” 그리고 간호사에게 “너무 추워요. 담요 좀 더 주세요!”라고 말했던 기억.

무의식 중에 독일어로 말한 나 자신이 놀라울 뿐이다. 아마 '여기선 독일어 써야 살아남는다'라는 본능이 작동했나 보다.


다른 여담으로 간호사들은 수술팔찌를 붙여주다가 오늘 날짜가 나의 생일이라는 걸 알고는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이가 온전한 게 생일선물이지 않겠냐며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 당시 투명교정기를 끼고 있었는데, 교정기가 없었더라면 이가 호도도독 전부 빠졌을 것이라고 의사가 덧붙혀 설명도 해주었다.. 어머나.. 졸지에 틀니낄뻔 했다..


그렇게 병원에 입원해 수술 날짜를 기다렸다. 그런데 대학병원 간호사들이 파업을 하는 바람에 수술 일정이 미뤄졌다. 당시엔 너무 아파서 '젠장.. 간호사 파업도 참 타이밍 좋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웃을 수 있다. 결국 7일간 입원 후 퇴원했다.


퇴원 후 한동안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 놀랐다. 붕대를 감은 얼굴은 마치 ‘현대미술 조각 작품’ 같았고, 눈에 터진 핏줄 덕분에 정말 섬뜩했다. 정말.. 집단 구타당한 사람 얼굴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학교에 출근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게도 무모했던 나 자신이 놀랍다. 내 얼굴을 보고 놀라던 동료들과 아이들의 얼굴이란.. ㅇOㅇ

2년이 지난 지금도 왼쪽 볼에는 움푹 파인 자국이 남아 있다. 남자친구는 볼 때마다 볼을 쿡! 찌르며 농담 삼아 말한다. “많이 사람 됐네!” 그 말을 들으면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한편으론 정말 얼굴 반쪽이 만신창이였던 그때가 떠오른다.



그리고 며칠 전, 나는 환자가 아니라 보호자로 대학병원을 찾았다. 익숙한 병원의 냄새와 복도 풍경이 나를 그날로 데려갔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웠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온것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하는 것도 쉬웠다.


이번의 주인공은... 축구를 하던 중 상대방과 추돌하여 이마가 크게 찢겼는데, 왜 찢겼는고 하니... 상대 선수의 치아와 부딪혀 이마가 푹 파였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그의 키 덕분에 '치아와 이마의 충돌’이라는 독특한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큰 수술이 필요하지 않고 응급실에서 바로 수술이 진행되어서 입원은 따로 하지 않고 퇴원했다. 정말.. 다행이다!


벽에 부딪히던, 사람이든 치아든, 부딪히는 건 항상 위험하다! 늘 조심하자!

Lieber Vorsicht als Nachsicht!
후회하기 전에 조심하자!

에필로그

같이 경기를 뛰었던 팀원들은 다소 이 사건을 경미하게 생각하던 그에게 병원을 무조건 갈 것을 푸시했는데.. 그는 이마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해맑게 나에게 달려와 "나 더 뛰고 싶은데, 애들이 병원 가래!" 라고했다. 나참.... 피를 흘리며 해맑게 폴짝폴짝 뛰는 그를 보자니, '얘가 뇌가 다쳤나 싶었다..'.

수술 후, 본인의 조기축구 단톡방에 수술 사진을 올리며, 모든 일처리는 느리지만 이상하게도 오늘만큼은 일처리가 아주 수월했던 독일의 의료시스템을 찬양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독일인들은 본인 나라를 사랑한다는 메시지에 아주 기뻐하는 듯했다.

독일이라는 나라, 어쩌면 살기 좋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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