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3살, 사춘기의 속사정 - 1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by 아브리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올라갔다. 그러나 부모님의 일로 인해 한 학기 뒤 이민을 가기로 결정이 나 있던 상황이라 마음 붙일 시간은 없었다. 대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어차피 떠날 테니 두려울 게 없었다.


중학교는 집에서 거진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싫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엄격한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 작은 일탈을 하기에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름 생각해 낸 것이 학교 매점이나 운동장, 아니면 그 앞 편의점에 친구들과 죽치고 앉아 있다가 아홉 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많이 웃고 떠들었다. 친구를 끼고 학교 곳곳을 쏘아다니며 얼굴을 알렸다.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오죽하면 말없이도 대화가 가능했다. 돌아보면 억눌러왔던 감정을 해소할만한 방법을 몰랐기에 나에게 맞지도 않는 옷을 입었던 것 같다. 자유로웠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불안했다.


외로웠다. 지나가는 선생님, 선배, 동급생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다. 누구에게든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이름을 물었다. 혼자 있으면 다가가 말을 걸었다. 곧 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첫날부터 나를 싫어했다. 하지만 6학년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젠가 면담에 불려 가 내가 학급 전체 분위기를 좌지우지한다며 혼자서 반 전체를 왕따 시키지는 말라는 충고도 들었다. 무슨 말인지 오늘날까지도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선생님의 걱정과 달리 반 친구들과는 꽤 잘 지냈다. 떠날 때 반 친구들이 모두 모여 송별회를 해주었을 만큼.


졸리지 않았지만 수업시간에 딱 한번 억지로 졸아보기도 했다. 당연히 선생님께 혼났다. 그런 경험이 처음이라 내심 즐거웠다. 공부는 하지 않았다. 시험을 볼 때 마구잡이로 찍어보기도 했다. 죄책감과 희열감이 오묘하게 섞였다.


슬금슬금 욕도 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욕을 하던 시기였을 것이다. 아는 욕은 한정적이었지만 충분했다. 나에게 금기시되던 모든 것을 몸에서 털어내는 것 마냥 굴었다.


점심시간이 가장 좋아하던 시간이었다. 학교 밥이 참 맛있었다. 메뉴는 미리미리 확인하고 부리나케 뛰어가 밥을 받았다. 잘생긴 선배가 급식 당번이라도 서는 날은 계 탄 날이었다. 사실 밥을 복스럽게 먹는 편도 아닌데 당시에 나는 잘 먹는 것이 일종의 묘기였다. 한 입에 초코파이를 한 번에 넣으면 친구들이 놀랐다. 생각해 보니 지금도 한 입에 왕창 먹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기는 한다. 외모와 상반되는 반전인가 보다. 점심이 끝나면 당연하게도(?) 매점으로 향했다. 얼마 없는 용돈을 쪼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재밌는 일 없나 돌아다녔다.


실연당한 한 친구의 부탁으로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아이유의 ‘하루 끝’을 우는 친구 옆에서 계단에 앉아 불렀었다. 둘 다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실연당한 친구는 실연당했다는 이유라도 있지, 나는 대체 뭐 하는 놈이었는지 모르겠다. 복도에서 춤을 추다 신경 쓰던 선배에게 딱 걸리기도 했다. 이제야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그 선배에게 관심이 있던 것은 당시 만연한 사실이었는데,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던 남자애는 동급생이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나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인간적으로 부족했던 시기였다. 분명 그때의 나는 내가 맞는데, 어색하다. 그때의 광경을 목격한 깊은 유감을 표한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나 하나 살자고 여럿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을까, 미안하다. 덕분에 이제는 환골탈태했다는 걸, 알았으면.


그러나 후회는 없다. 그때의 나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기에.


다음 주 2편으로 이어집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