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 1993, Reboot 2023
‘이런, 또 늦었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영실은 시계를 흘깃 봤다. 초침이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마저도 그는 손끝으로 허공을 움켜쥐듯, 시간의 조각을 붙잡고 싶었다.
신호등이 바뀌자, 영실은 가방을 움켜쥐고 지하철 입구로 달렸다.
“죄송합니다. 먼저 갈게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에스컬레이터를 뛰어오르며 연신 사과를 건넸다.
발끝이 미끄러질 듯 덜컹거렸지만, 뒤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플랫폼 아래쪽에서 열차 진입음을 알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안 돼, 제발 지금 놓치면 안 돼.’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내려가던 영실은 막 닫히려는 문틈 사이로 몸을 밀어넣었다.
철컥— 문이 닫히며 세상이 일순간 고요해졌다.
영실은 한참을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휴…”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빈자리는 없군.’
매일 아침 같은 풍경이었다.
피곤이 얼굴에 내려앉은 사람들, 이어폰을 낀 채 고개를 숙인 청춘들, 그리고 그 자신.
경기도 외곽에서 서울까지, 영실의 하루는 늘 이렇게 밀려드는 파도 속에서 시작됐다.
그때였다. 휴대폰 화면에 낯선 알림이 떴다.
‘응? 이 시간에 문자가?’
손끝으로 화면을 밀자, ‘○○대학교 동문회’라는 문구가 떴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부 요청, 동문 모임, 정치인 후원…
그런 문자들은 이제 일상처럼 익숙했다.
졸업한 대학과의 인연은 오래전에 끊어진 줄 알았다. 그의 인생에는, 더 이상 ‘동문’이라 부를 만한 여유가 없었다.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93학번 입학 30주년 기념행사’
‘벌써… 30년이라니.’
열차 창밖으로 스쳐가는 어두운 터널을 바라보며, 영실은 잠시 숨을 멈췄다.
그의 얼굴에 피로와 함께 알 수 없는 쓸쓸한 미소가 번졌다.
‘내가 이제 오십이라니. 인생의 반환점이라면, 이제 남은 길은 얼마나 될까…’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열차의 진동이 심장의 박동과 섞여 울렸다.
‘앞으로의 10년… 그 안에 뭘 남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