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영실은 입학 30주년 기념행사 준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20여 년 만에 모교로 향했다.
지하철이 안암역에 멈추자, 가슴이 묘하게 뛰었다.
설렘 반, 두려움 반 —
그것은 낯선 사람을 만나러 가는 마음과도 비슷했다.
세월이 흘러도, 학교의 이름만큼은 아직 자신을 붙잡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영실은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언제나 그렇듯, 과거는 불현듯 발 밑에서 되살아났다.
거리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낡은 하숙집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반듯한 원룸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술집 간판 대신 카페와 프랜차이즈 간판들이 번쩍였다.
“와… 여기가 진짜 안암 맞나.”
그는 중얼거렸다. 젊음의 거리 대신, 소비의 거리만이 남아 있었다.
학교 안으로 들어서자 더 낯설었다. 한때 친구들과 밤새 토론을 하던 교양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운동장 자리엔 차들이 빽빽이 들어찬 주차장이 들어섰다.
‘풀밭에 앉아 막걸리 한잔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는 미소 지었지만, 그 미소엔 쓸쓸함이 스며 있었다.
‘요즘 애들은 그럴 여유도 없겠지. 숨 쉴 틈조차 없는 세상이라.’
캠퍼스를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애기능 앞에 서 있었다.
햇빛촌의 대자보를 처음 보던 그곳. 시간이 지나도 건물은 그대로였다.
아니, 그대로이기 때문에 더 낡아 보였다.
‘세상은 이렇게 변했는데, 학생회관은 여전하네.’
낡은 벽의 얼룩, 삐걱거리는 계단, 그리고 오래된 페인트 냄새.
모든 게 익숙하고, 또 이상하게 아팠다.
영실은 문득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기, 저 문 앞에서 내 인생이 살짝 틀어졌었지…’
그 기억이 부드럽게 가슴을 눌렀다.
그는 1층 매점으로 향했다. 매점은 신기하게도 거의 그대로였다. 다만 라면을 끓여주는 것만 달랐다,
예전엔 아주머니가 직접 냄비에 라면을 끓여주곤 했는데, 이젠 자동 조리기가 줄지어 서 있었다.
라면 봉지를 올려놓으면, 기계가 알아서 끓이고 불을 꺼줬다.
‘이제는 라면도 사람이 끓이지 않는구나.’
영실은 괜히 웃었다. 그러나 웃음은 금세 입안에서 굳었다.
그의 시선이 매점 유리창 너머의 캠퍼스를 스쳤다.
그곳엔 젊은 학생들이 무리 지어 셀카를 찍고 있었다.
하얀 웃음이 번져가는 그 장면이, 묘하게 먼 나라의 풍경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