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선배가 사준 라면

4교시 수업이 끝나자, 강의실 문이 동시에 열렸다. 영실과 동기들은 배를 부여잡으며 식당으로 향했다.
그때,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밥 먹었냐?”

고개를 들어보니 과 선배 동원이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느긋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직이요. 지금 가는 중이에요.”
“잘 됐다. 형이 밥 살게. 따라와!”

영실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일행을 이끌었다. 처음엔 네 명이었지만, 길을 가며 또 다른 동기들을 마주칠 때마다 동원은 손을 흔들었다.
“야, 너희도 와! 형이 쏜다!”
결국 여덟 명이 한 무리가 되었다.

‘이 형, 설마 다 데리고 가는 거야?’
영실은 살짝 불안했다. 보통 선배 한 명이 두세 명쯤 데리고 밥을 사주는 게 관례였다.
이건 거의 ‘단체급식’ 수준이었다.


그 시절, 대학엔 ‘선배가 밥 사주는 문화’가 살아 있었다. 어떤 선배들은 후배들 밥값을 마련하려고 과외를 뛰었고, 그 덕분에 신입생들은 한 달 내내 공짜로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영실도 그 혜택을 톡톡히 본 편이었다.그가 제일 좋아하던 식당은 ‘가정식당’과 ‘황소식당’이었다. 가정식당은 기본 반찬으로 꽃게장이 나왔고,

황소식당은 김치전을 덤으로 줬다. 공깃밥은 무한리필.
‘오늘은 황소식당이면 좋겠다…’

뒤에서 정규가 팔꿈치로 영실을 툭 치며 속삭였다.
“야, 황소식당 쪽으로 간다.”
“진짜?”
둘은 눈을 마주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동원은 골목을 돌아 학생회관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대로 매점 앞에서 멈춰 섰다.

“매점으로 가네? 설마…”
영실은 정규를 보며 불안하게 웃었다.

“아주머니, 라면 아홉 개랑 햄버거 아홉 개 주세요!”
동원의 외침에 매점 안 공기가 순간 멎었다. 정규가 놀라서 물었다.
“형, 여기 라면도 팔아요?”
“그럼~ 여기 안성탕면 진짜 맛있다. 햄버거 먼저 먹어라.”

영실은 500원짜리 햄버거를 받아들었다. 빵은 퍽퍽했고, 고기는 딱딱했다.
‘이거… 고등학교 매점 맛이잖아.’
한입 베어 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맛있지?”
“네! 맛있어요!”
영실과 동기들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모았다. 잠시 후, 라면이 나왔다. 커다란 냄비 하나에 아홉 개를 한꺼번에 끓인 라면은 이미 불어 있었다. 국물은 탁했고, 면은 죽처럼 퍼져 있었다.그래도 모두 말없이 젓가락질을 했다.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

대단한 것도, 맛있는 것도 아닌데 —
그 시절의 밥상은 늘 이렇게 허무하게 웃음을 남겼다.


매점 문을 나서며 영실이 정규에게 속삭였다.

“앞으로 동원이 형이 밥 사준다고 하면 절대 따라가지 말자.”
정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음엔 밥 먹었다고 거짓말하자.”

둘은 서로를 보며 킬킬 웃었다.


햇살이 매점 유리창에 부딪혀 반짝였다.
그 시절의 세상은 그렇게 —
가난했지만,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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