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음료수 선물세트 같은 거 있나요?”
“저~ 위에 있어요.”
낡은 냉장고 위를 가리키는 아주머니의 손끝이 떨렸다. 그 손을 보는 순간, 영실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매점 아주머니였다. 그가 대학생이던 시절, 늘 라면 냄비를 끓이던 그 손.
세월이 흘렀지만, 눈빛은 여전했다. 다만 허리가 조금 더 굽었고, 손마디는 예전보다 굵어졌다.
“안성탕면 한 그릇이요.”
그 말 한마디면 언제나 냄비에서 파 향이 피어오르던 시절.
그 불은 라면의 냄새가 문득 코끝을 스쳤다.
‘그 맛을 아직도 기억하네…’
물론 아주머니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수많은 학생들이 스쳐 지나갔고, 그 중 하나였던 자신을 기억하라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영실은 조용히 선물세트를 계산했다.
학생회관 복도로 들어서자, 낡은 벽마다 여전히 대자보가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노동조합 집회, 인권 영화제, 교지 모집…
그 종이 냄새 속에는 여전히 젊은 목소리의 열기가 남아 있었다.
어디선가 밴드가 연습하는 기타 소리가 새어나왔다.
탁탁— 벽을 울리는 리듬이 묘하게 익숙했다.
계단을 오르자, 오래된 철제 난간이 삐걱거렸다.
그 소리가 마치 30년 전, 그의 청춘이 아직 숨 쉬고 있다는 신호처럼 들렸다.
‘그때 나는 참 치열하게 살았었지…’
영실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췄다. 그 시절의 자신이 문득 눈앞에 겹쳐졌다.
연애 한 번 못 해봤고, 밤새 노래방을 가거나, 게임을 하거나, 당구장에 간 적도 없었다.
그의 대학은 늘 “누군가를 돕는 일”로 채워져 있었다.
축제 기간에도 그는 친구들과 주점을 열어 빈민 지역 아이들의 공부방 기금을 마련했다.
그 시절, 그건 그에게 ‘옳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옳음’은 어쩐지 너무 차가웠다.
‘그래도… 한 번쯤은 그냥 놀아볼 걸.’
그는 고개를 떨구며 혼잣말했다.
‘한 번쯤은, 내 청춘을 위해서 살아볼 걸…’
계단 위로 올라가며 영실은 손잡이를 스쳤다.
거칠어진 철제 표면이 마치 세월의 표피처럼 느껴졌다.
한층 한층 오를 때마다, 그의 가슴 속에서도 묻어둔 시간들이 덜컥덜컥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