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층 계단을 오르자, 숨이 조금 찼다. 영실은 철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아직… 있네.”
작게 중얼거린 그의 목소리가 복도에 흩어졌다.
대학을 졸업한 지 스무 해가 넘었는데, ‘햇빛촌’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천천히 철문을 열었다. 삐걱— 익숙한 금속 소리가 복도 끝까지 울렸다.
곰팡이와 먼지 냄새가 섞인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냄새는 이상하게도 불쾌하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기억의 문을 여는 비밀번호 같았다.낡은 소파 위에는 한 남학생이 누워 있었다. 휴대폰을 보던 학생은 영실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그의 표정엔 놀람과 경계가 뒤섞여 있었다. 낯선 중년 남자가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왔으니 당연했다.영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떼가 묻은 벽, 뜯겨진 가죽 소파, 아직도 버티고 있는 커다란 스피커, 그리고 탁자 위의 낡은 주전자 하나.
모두 그대로였다.
‘참,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그는 조용히 음료수 선물세트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학생은 여전히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영실은 문을 닫으며 작게 인사했다.
“고맙다.”
그 말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복도를 걸어나오자, 밴드 연습실에서 기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가슴을 쿵 하고 울렸다.
30년 전, 자신이 처음 이 계단을 올랐던 날의 공기가 그대로였다.
‘그 녀석은… 아마 지방에서 올라온 아이겠지. 토요일 오후, 혼자 동아리방에 누워 시간을 보내고 있었겠지.
나처럼, 어쩌면 나보다 더 외롭게.’
영실은 발걸음을 멈췄다.
‘왜 그냥 나왔을까… 고맙다고, 반가웠다고, 그 시절의 햇빛촌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말이라도 할 걸.’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내가 5기 회장이었다고, 그때 내가 이 동아리를 살렸다고… 한마디쯤 해줄 수 있었잖아.’
한숨이 흘렀다. 그 바람이 겨울의 공기와 섞여 사라졌다.
길을 걷던 영실의 눈에 ‘안암꼬치’ 간판이 들어왔다. 붉은 네온사인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그 이름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게 놀라웠다.
‘세상은 다 변했는데, 너는 아직 있구나.’
그는 발걸음을 돌려 문을 밀었다.
“혼자세요?”
주인아저씨가 물었다.
“네, 혼자에요.”
그 목소리에는 쓸쓸함과 편안함이 섞여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영실은 삼치구이를 시켰다.
잠시 후, 주인아저씨가 오뎅국물을 내왔다.
“서비스예요.”
그의 미소엔 세월이 묻어 있었다. 예전엔 40대였던 얼굴이 이제는 깊게 패인 주름으로 덮여 있었다.
영실은 소주 한 잔을 따르고, 따뜻한 오뎅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짭조름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역시… 이 맛이지.”
그 순간, 햇빛촌 방의 먼지 냄새와 오뎅국물의 뜨거운 향이 묘하게 뒤섞였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 그것들은 언제나 — 사람의 온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