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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공방

혼자 있다는 것

by 한그리 유경미

나 혼자 산다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처음의 취지는 혼자서도 잘사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요즘의 내용을 보면 혼자서 사는 일은 쉽지 않고, 어려우니 혼자 사는 멤버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라는 것처럼 보인다.

조그만 네모 통 안에 들어온지 며칠 된 달이는 혼자 사는 일이 어떨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달이의 통 안에는 물 약간과 상추나 가끔 다른 채소, 본인의 똥 정도가 전부다. 주르륵주르륵 벽을 타고 돌아다녀도 몇 분안에 끝난다. 그래서일까. 집청소를 한다는 핑계로 달이를 꺼내 놓으면 어디로든 도망가는 듯 보인다. 작은 통의 불만이 이제야 나타나는 것인가.

나는 집순이라 집에 무언가 할 수 있는 조그마한 것만 있어도 혼자서 잘 논다. 코로나 3년의 시간이 되기 전에는 캘리그라피를 동네 주민자치센터에서 배웠다. 글씨 자체를 예쁘게 쓸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것도 물론 있지만, 글씨를 쓸 때 내 마음을 담아 모양을 낸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잠정 휴강이었다가 다시 강의가 재개되었지만, 나의 흥미는 유지되지 않았다. 그때 사두었던 붓펜으로 가끔 아이들이 쓰던 종합장이나 연습장에 끄적인다. 잘 쓰는 건 아니지만 무어라도 집중하면 시간은 잘 흐른다.

또 하나의 끄적이는 놀이는 재봉틀이다. 생각해보니 요즘은 꺼내지 않은지 오래다. 캘리그라피는 붓펜과 종이만 있으면 되는데, 그에 비하면 준비할 일이 많다. 재봉틀을 꺼내야 하고, 어떤 걸 만들지 생각해서 도안을 만들어야 하고, 천을 골라 크기를 만들어 박아야 한다. 그러다 재봉틀 안에 있는 북실을 감아두기도 해야 한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참 귀찮은 걸 하기 싫어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지배한다. 멍하니 생각만 해도 시간이 잘 흐르니 재봉틀에 대한 관심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구나 싶다.

마지막으로 혼자 놀기의 특화된 건 바로 요리다. 맛이 있든 없든 이십 년을 해왔으니 잘 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니까. 며칠 전 가족들이 환절기에 몸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뼈를 사와 고았다. 누군가는 그걸 왜 혼자 그러고 있느냐고 말한다. 나 혼자 먹으려고는 절대 하지 않을 일이기는 하다. 오랜 시간 여러 번에 걸쳐 만드는 사골은 다양한 음식에 사용되어 좋다. 처음 먹을 땐 사골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잘 먹는 가족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한 끼, 두 끼 지날 때쯤 지겨워지는 건 당연하다.

그때 다른 음식으로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사골 안에 삶은 국수를 넣는다. 딸은 아침으로 밥은 제외하고 국수만 먹고 가는 날이 있다. 먹지않는 것보다는 나으니 그거라도 먹으라 한다. 가래떡을 사다가 떡국을 넣기도 한다. 그때를 대비해 양지나 사태를 푹 삶아놓았다가 냉동실에 소분에 두었다. 한 봉지를 꺼내 함께 넣어준다. 하얀 사골만 있는 것보다는 고기를 한번이라도 씹는 게 좋으니 하루는 또 잘 팔린다. 이번엔 미역국을 끓일 차례다. 나는 조갯살 들어간 투명한 미역국을 좋아하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가족들은 고기 넣은 하얀 미역국이 더 좋단다. 그래, 많이 해줄께요.

혼자 지내면 말을 잊는다. 손으로 끄적끄적 무언가를 하는 것은 편안하지만, 말을 하는 것은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네모난 사각틀 안의 너와 조금 큰 네모난 사각틀 안의 나는 닮아 있다. 너의 입이 그리 조그만 이유가 있구나. 알겠다. 혼자 지내는 연습을 이제 가족들이 사회로 나갈때를 위해 필요한 일이구나 느낀다. 집순이여도 가끔 말하는 일이 그립다. 아이들을 붙잡고 밥을 먹이며 가만히 바라본다. 왜요, 하고 묻는 아이들이 정말 왜 보는 것인지 궁금해한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보고만 있어도 같이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는다.

홀로 바라보는 달이에게 미안해진다. 말을 걸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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