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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그리 유경미 Dec 18. 2024

달팽이가 외쳤다

하얀 통에서 산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이들이 오며 가며 관심을 갖기도 하루이틀이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나 역시 그의 파란 밥을 하루 한 번, 혹은 이틀에 한 번 갈아주면서 쳐다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 사이에 지루해진 그와 나의 관계를 생각했다.

반가운 사이는 분명 아니다. 집에서 생명체를 키우는 것은 아이들과 남편으로도 벅차다. 공기를 정화시켜 준다는 핑계로 늘어난 화분도 이제는 이방인이다. 테라스 창가에 줄지어 앉아있는 화분들은 내 관심사에서 이미 멀어졌다. 그런데 또 달팽이라니, 불편한 동거가 맞긴 한가 보다. 먹을 것을 넣어주고 똥을 치워주는 기본적인 일을 하는 것만으로 의무감에 지겨워지다니. 가족이라고 생각하기엔 아직 거리가 있다.

달팽이를 병실 같은 하얗고 네모난 통에 입주시켜 버린 건 어쩌면 잔혹한 일일지도 모른다. 없던 병이 생길지도 모른다. 날이 밝으면 숨어 있다가 해가 조금 내려앉을 때가 되면 상추 밖을 나설 준비를 한다. 조그만 세상이 작은 줄 알면서도 어딘가로 계속 돌고 있는 것인가. 그저 묵묵히 미끄러져 가야만 하는 고행을 사서 하는 것인가. 그저 인생은 그렇게 나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달팽이가 안쓰러워 뚜껑을 열고 물을 찾았다. 달팽이가 뚜껑으로 올라올 때를 기다려 열었다. 뚜껑에 매달린 채 지진을 경험한 달팽이는 부들부들 떨었다. 부엌 싱크대에 수전을 샤워용으로 바꿔 뚜껑에 물을 틀었다. 비가 오는 정도의 느낌이 나도록 살살 끼얹었다. 가느다란 두 눈이 깜짝 놀라 움츠러들었다. 세상은 원래 네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단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보다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말로 달팽이를 위협한다. 나더러 감성적인 F가 아닌 이성적인 T라고 했던 남편의 말이 떠오른다.

적응을 했는지 물 위를 걷는다. 걷는다기보다는 달팽이는 미끄러지는 게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는 날에는 풀숲에 있던 달팽이들도 풀밖으로 나와 사람들의 눈에 띈다. 그 역시도 샤워물이 좋아서가 아니라 피하고자 이리저리로 움직이는 모양새다. 어쩌면 눈 오는 날 강아지가 발이 차가워서 뛰는 것인데, 즐거워서 뛰어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시선에 입각한 현상일지 모르겠다. 달팽이는 습한 곳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물이 쏟아지는 곳에 있는 것을 좋아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미안하다.

물을 끼얹으며 동시에 그의 집을 청소한다. 흐르는 물을 방패 삼아 칫솔로 미끄러운 그의 길을 지운다. 하얀 집으로 들어와 평생을 걸었던 그의 길을 지운다. 내가 걸었던 길을 지워버린다는 것, 과거를 인정하지 않은 채 현재에만 몰두하라는 의미에서 일까. 어쩌란 말인가. 과거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동시에 미래의 나는 지금 만들어지고 있다. 역사적인 것은 누가 지운다 한들 지워지지 않는다. 현재에 다 녹아들어 있기에 가슴속에 품어져 있기에 현재의 내가 있다.

지금 달팽이는 외치고 있다. 나와는 가족이 되고 싶지 않음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외치고 있다. 내가 아무리 가족처럼 대해주더라도 그는 우리와 다르다. 사람과 친한 강아지라면 가족 같은 느낌이 들도록 애교도 부릴지 몰라도 그 녀석은 냉정하다. 차갑다. 나는 나라고. 너희들의 한 무리에서 나를 제외시키라고. 함께 할 수 없는 종이지만, 그래도 나는 같이 살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와 너의 생각은 다르다. 애초부터 달랐다. 서로 이해하면 될 줄 알았으나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인간은 늘 이기적인 존재다. 나를 유리하게 판단하고 말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만, 자신이 위험에 처하거나 위급할 때는 나부터 살고 봐야 한다. 동물의 본능이 인간의 본능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말을 잘하는 이들의 논리는 세상 달콤하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이 옳고 자기 위주의 발언을 하기에 급급하다. 나 조차도 타인에게는 세상 쿨하다. 하지만, 나를 방어하기 위해 한 발짝 물러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이기적인 세상에 달팽이는 외친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인간보다는 착하다고.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고.

달팽이는 속으로 외쳤다. 모든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나는 동물 전문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물살에 끄덕 없이 제갈길 가는 그를 보며 그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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