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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그리hangree Aug 03. 2023

보물찾기

가을이 농익을 무렵 우리는 시골을 간다. 시골이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아파트 콘크리트에서 벗어나 풀 향을 맡고 나무의 기운을 느끼면서 흙을 파헤치는 기분이란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이랄까. 나의 어린 시절에는 늘상 흙을 파헤치며 놀이를 하고 일도 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 시골은 답답한 도시의 탈출구가 될 수 있겠다.

고구마는 어르신들의 손자들을 위한 배려다. 농사 일정에 맞추어 시골로 가는 날짜를 찾아 가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당한 때가 지나도 상하는 건 아니다. 고구마는 땅 속에서 기다린다. 오랜 기간은 안 되겠지만 한 달 이내에 일정을 맞춘다면 직접 흙을 뒤집고 고구마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흙에서 뛰어놓을 아이들을 기다린다. 손자와 손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흐뭇해하고 즐겁다. 아이들 역시 딱딱한 시멘트, 아스팔트바닥보다 보드레한 흙을 즐거워한다. 지렁이가 징그럽다기보다 호기심에 유심히 살피고, 땅강아지가 무서워 도망가도 어디로 가는지 더 파헤쳐보기도 한다. 삽이나 호미를 써 보면서 흙에서 뒹굴러도 즐겁다. 그렇게 시골의 맛을 느낀다.

와이파이가 없어서 시골 가는 걸 싫어하던 아이들이다. 조금씩 성장하면서 시골의 맛을 느껴가는 중이다. 하우스 안에 무슨 채소가 있는지 열어 본다. 할아버지가 무얼 하는지 유심히 따라다닌다. 재주 좋은 할아버지의 작품들은 감히 따라할 수 없다. 길가에 늘어진 꽃들이 채송화인 것도 확인하고, 주변의 풀을 뽑느라 매번 쭈그려 앉아있는 할머니를 이해하기도 한다. 잡초는 여름 내 몇 번을 뽑아내도 자라고 또 자라난다.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는 채소 키우는 일 만큼이나 꽃길을 좋아한다. 나만 중요했던 아이들이 주위 사람들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동안 조부모님은 늙어가고 힘들다.

고구마를 캐려면 땅 위에 줄기를 먼저 제거한다. 줄기와 잎이 말라가기도 하지만, 여전히 풍성한 줄기는 엉킨 머리처럼 두툼하다. 할아버지가 줄기를 모아 이발하고 지나가면 다음 사람이 비닐 끝부분을 꺼내어 고랑 끝까지 나아간다. 비닐은 끊어질 수 있으니 요령이 있어야 한다. 비닐을 걷을 때 돌돌 감으면서 나아가면 일을 줄일 수 있다. 어차피 비닐을 모아놓아야 다음 농사를 또 준비할 수 있으니 단번에 일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먼지를 폴폴 날리며 비닐이 걷어지면 이제 아이들이 할 차례다. 

파묻혀 있는 고구마를 찾아나가는 아이들은 보물찾기를 한다. 고구마가 커다라면 아이들의 입도 커지며 즐겁다. 흙을 조금씩 털어내서 고구마의 형체를 반긴다. 흙이 단단하면 호미를 이용해서 고구마가 다치지 않게 흙을 파내는 게 중요하다. 고구마까지 호미로 찍어버리기 십상이니 말이다. 어차피 우리가 가져갈 고구마지만 상처가 있다면 가져가서 썩기 쉽다. 그러니 집에 가져가 먹을 고구마를 조심히 캐낸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조금 캐다가 힘들다고 들어가 버리더니 요즘은 철이 들었는지 힘들어도 끝까지 캐고 말려서 담을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다 컸구나, 생각이 들 때 떠나갈 시간도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바로 씻어서 찜 솥에 고구마를 쪄낸다. 단맛의 고구마가 푹 익어 김치와 먹으면 찰떡이다. 역시 집에서 먹는 것보다 시골에서 바로 즉석에서 먹을 때 더 맛있다. 함께 흙을 파헤치며 고구마를 캐내고 씻어서 먹는 그 맛은 최고다. 나이들수록 아이들도 내가 겪었던 모든 경험을 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겪었던 일이 얼마나 좋았으면 아이들에게도 겪도록 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고 싶다. 경험을 많이 할수록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른의 마음이다. 아이들은 나보다 아는 것이 더 많고, 정보를 잘 찾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겪은 경험과는 많이 다르다. 배운다는 것은 끝이 없다. 지금은 아이들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함께 하는 동안 서로 배워갈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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