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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그리hangree Oct 13. 2023

만두빚기 1

이러저러한 일로 우리가족은 추석에 친정으로 간다. 차례도 지내지 않고 그냥 친정 부모님과 형제들과 만나 같이 맛있는 걸 해 먹다가 헤어진다. 날짜가 길다고 해서 시댁을 가야한다고 부모님은 성화였지만, 마침 연휴 끝 무렵에 남편은 일해야 한다며 시댁에는 다음에 가기로 했다. 어쨌거나 어떤 맛있는 걸 해 먹어야 좋을까 생각하는데, 친정어머니는 만두 빚기를 픽하셨다.

재료는 내가 사가겠다며 설레발을 쳤다. 그렇게 나서지 않으면 엄마는 본인이 다른 반찬 재료들을 사서 만들어놓으시는 걸 알기에 만두 재료라도 내가 사야 되겠다며 우겼다. 친정인 강화에서는 만두를 참 잘 빚는 편이다. 아마도 인천경기권은 만두를 좋아하는지 시댁인 충청권보다도 만두를 자주 빚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만두는 중국 음식이었다고 한다. 제갈공명이 남만의 맹획을 치고 돌아오는 길에 풍파를 만났는데, 사람을 죽여 제를 지내는 것이 남만의 풍습이었다고 한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대신 양고기를 밀가루로 싼 후에 사람의 머리처럼 만들어 제사를 올렸더니 풍파가 가라앉고 무사히 강을 건넜다. 이후 이 음식이 만두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고려속요인 <쌍화점>에도 만두 주인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에는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에서 주로 먹는 음식이지만 대기업의 만두가 알아주니 우리나라의 전국적인 대표 음식이라 할만하지 않을까.

만두 재료를 사러 시장을 갔다. 집 근처인 신기시장은 인천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큰 재래시장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시장이 있다는 건 참 좋다. 김장김치, 부추와 양파는 집에 있으리라는 가정하에 만두피, 고기 간 것, 당면, 숙주, 두부 등을 샀다. 만두피는 50개 정도 되는 걸 묶음으로 파는데 삼천오백 원으로 다섯 묶음을 샀다. 고기는 소고기 한 근에 돼지고기 두 근을 함께 갈아달라고 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나 한 종류로만 하는 것보다 더 부드럽고 맛있다는 풍월 때문이다. 별것 사지 않았는데도 한참 돌아다닌 느낌이었다.

추석 전날 친정으로 향했다. 이미 예상한 일이었지만, 엄마의 냉장고에는 무언가 많은 요리가 이미 들어 있었다. 도라지무침, 해파리냉채는 기본이고 부엌 밖 가스렌지에는 LA 갈비가 맛있는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잡채를 할 용도의 채소나 고기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김치냉장고 한쪽에 뽀얀 식혜가 날 잡아 잡수라는 표정으로 밝게 쳐다보았다. 만두는 안 해도 될 것을, 과한 맛이 있지만 엄마가 하자고 했으니 점심을 얼른 먹어 치우고 재료 준비에 들어갔다.

함께 둘러앉아 만두를 빚는 장면은 참 좋다. 재료를 이미 다 만들어 놓았다면 좋을 일이지만, 속재료를 만드는 것은 이제부터다. 다행히 엄마는 김치를 씻어서 꼭 짜놓았고, 양파껍질도 까서 하얗게 씻어놓았다. 남편과 아이들은 꼬치를 끼우고 부치느라, 엄마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녹두전을 하러 가는 통에 나 홀로 만두속을 만들어 나갔다. 차례도 지내지 않는데 왜 이리 바쁠까 싶었지만, 하기로 했으니 해보련다. 김치 다지고, 양파 다지고, 간 고기 넣고, 두부 으깨넣고, 숙주 데쳐 넣고, 당면 불려서 다지고, 다 한 것 같았는데 부추를 뜯어오지 않았다.

부추는 엄마가 우리 준다고 따로 밭을 만들었다. 부추가 들어가야 맛있으니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얼른 밭으로 향했다. 밭에서 쓰는 작은 크기의 칼을 하나 들고 가서 쓱쓱 한움큼 베어왔다. 잘라 오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일은 다듬는 거였다. 누런 부분과 흙묻은 부분을 제거하면서 다듬어 씻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 만두 속 만드는 게 늦어지게 생겼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손이 빨라졌다. 애초에 빠른 손이 아니라서 빨라지는 게 눈으로 보이진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열심히 채를 썰어 넣었다.

양념으로는 소금, 후추, 맛술 정도 넣었다. 고추도 조금 다져 넣을까. 여러 재료를 함께 버무리니 제법 만두 속 같은 비주얼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여기에 만두피도 만들었으면 정말 큰일나겠다는 생각을 하며 안도했다. 거실을 슬쩍 봤더니, 전 부치기도 대충 마무리되는 듯했다. 첫째 며느리인 엄마의 손은 정말 크다고 생각했다. 준비된 재료는 늘 언니네 가족과 우리 가족을 모두 싸서 보낼 정도의 양이었다. 그러니 그걸 다 하는 우리도 손은 점점 커지는 게 아닐까.

전 부치는 걸 마무리하고 그릇 정리 후 만두 속을 거실로 옮겼다. 만두피의 가장자리에 붙일 물그릇 두 개와 만두 속에 네 개의 숟가락을 꽂았다. 빈 쟁반도 두 개 준비했다. 텔레비전을 켜고 마음편히 만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사이 엄마는 녹두전을 다 부치시고 찜솥을 올렸다. 네다섯 명이 앉아 같이 이야기하며 만두를 싸니 명절 같았다. 이래서 엄마는 만두를 만들자고 하셨겠구나 싶었다. 물론 우리가족만 다섯명이었다. 좀 의미는 없었지만, 열심히 손을 놀렸다. 널따란 쟁반에 만두가 꽉 차면 얼른 가져가서 만두를 찜솥에 옮겼다. 우리집에서는 이렇게 큰 찜솥이 없어서 만두찌는 게 쉽지 않다.

다 익을 무렵 솥 근처로 갔다. 만두를 놓을 쟁반을 들고 엄마 옆에 섰다. 뚜껑을 열고 모락모락 오르는 만두에 찬물을 끼얹었다. 손도 찬물로 식힌 후 뜨거운 만두를 옮겨 담았다. 정말 뜨거웠다. 엄마도 뜨거워했다. 노련함이 있어도 손이 단단해져도 뜨거운건 뜨거운거다. 잘 참고 할 뿐이다. 또 뜨거워지면 다시 찬물에 손을 넣었다가 얼른 만두를 꺼낸다. 첫만두는 다 같이 먹었다. 만두를 만들던 가족들도 잠시쉬면서 한 쟁반을 해치웠다. 역시 직접 만든 만두는 뜨거울 때 먹어야 정말 맛있다.

이렇게 몇 번에 걸쳐 만두를 쪄냈다. 3분의 1 정도의 소가 없어질 무렵 맵게 하자고 딸이 말했다.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고 고추는 이미 넣었으니 고춧가루를 넣기로 했다. 많이 매울거라고 걱정했지만, 나중엔 그게 더 인기였다. 다양한 방법의 만두 모양을 만들면서 딸은 예술을 했다. 감각이 뛰어난 딸은 다행히 힘들어하지 않고 만두를 빚었다. 많이 만들고 많이 먹으면서 만두빚기는 끝났다. 눈앞에 찐 만두는 안 먹을 수 없었다.

만두로 가득한 할 일이 너무 많은 추석 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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