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그리hangree Sep 01. 2023

도시락1

도시락 주인에게 마음을 담는 일

이번 도시락은 특별하다. 비단 이번뿐 아니라 도시락이라면 뭐든 특별하다.     

전날부터 밑반찬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주방 한쪽에 있던 검은콩을 우르르 넓은 볼에 쏟아 넣어 씻어 물에 담근다. 이내 건져 내고, 깊은 프라이팬에 옮겨 담는다. 외간장(양조 간장)과 식용유, 약간의 설탕과 물엿을 넣는다. 물을 간장과 같은 양으로 넣고 끓인다. 특별히 할 일은 없다. 양념과 물이 함께 잘 어우르게 졸면 된다. 거의 끝나갈 무렵 깨 한 줌 넣고, 그렇게 콩장은 완성이다.

다음은 멸치볶음이다. 단단한 걸 잘 먹지 못하니, 아예 커다란 국물용 멸치를 부드럽게 졸여 줄 심산이다. 양념은 콩장과 비슷하다. 대신 먼저 양념장을 만든다. 양념장 재료로는 간장, 마늘 다진 것, 설탕과 물엿, 깨소금, 들기름 약간 필요하다. 양념장을 먼저 만들어 놓는다.

국물용 멸치는 멸치 똥을 미리 다 따 놓은 것으로 냉동실에 보관해 놓았었다. 똥을 따 놓은 걸 팔지는 않았고, 어느 날 큰 멸치를 커다란 한 봉지를 사서 넓은 채반에 붓고 똥을 한꺼번에 따 놓았다. 매번 따서 쓰기 어려우니 나름의 노하우라 볼 수 있다. 요리는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은 한다. 결혼 20년 차에 반찬 하나 제대로 못만들면 쓰겠나. 이 정도는 해야지.

멸치를 꺼내 기름을 두르고 비린내를 없애는 느낌으로 조금 볶다가 양념장을 넣고 졸인다. 물이 너무 없어서 탈 것 같으면 물을 좀 붓는다. 안그래도 물이 너무 없어서 눌다가 탈뻔했다. 잠시 텔레비전 한번 본다고 거실로 갔다가 태워서 못먹을뻔 했다. 물을 좀 붓고 냉장고 구석에 있던 꽈리 고추를 씻어서 조금 넣었다. 까맣고 누런데 초록색을 넣어주니 제법 요리답다. 내가 생각한 맛은 나지 않는다. 괜히 20년 차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밑반찬은 어려워.

하나 더 반찬을 만들기로 한다. 낮에 이걸 하려고 시장가서 무를 사왔다. 요즘 무값은 좀 비쌀 때다. 시장을 한참 돌아 크기 대비 싼 무를 사려고 다녔다. 3천원이라는 같은 가격에 천차만별의 싱싱한 무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을 발견했다. 가능한 큰 무를 사리라. 역시 바퀴달린 장바구니를 가져오길 잘했어. 크기에 비해 싸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큰 무를 샀다. 집에 와 깨끗이 다듬고 씻어서 채를 썰었다.

무채를 썰어서 소금에 절였다. 빨간 무생채를 만드려고 한다. 소금에 절이는 동안 김치냉장고에 손질한 마늘을 꺼낸다. 몇 달 전 시골에서 올라온 마늘을 남편이 까 놓았다. 마늘을 믹서기에 넣고 간다. 양이 많지 않으니 금방 갈아버린다. 마늘을 칼로 다지지 않은 지 오래다. 무가 어느 정도 숨이 죽으면 다진 마늘, 액젓(사실 멸치액젓을 좋아하지만, 까나리가 제일 좋은 것 같다.), 설탕, 식초, 파, 고춧가루를 넣는다.

손으로 양념과 무를 함께 비빈 후에 간을 본다. 조금 싱겁다 생각이 들면 액젓이나 소금을 약간만 더 넣는다. 무생채는 간이 그렇게 진하지 않아도 되니 적당하다 싶을 때 통에 담아둔다. 설탕이나 식초는 요리계의 비욘세 백 선생님이 감칠맛을 줄 때 넣으면 좋다고 해서 넣기 시작한 게 인정하게 된 후 계속 넣는다. 역시 맛에 있어서는 백 선생님 최고. 딸에게 맛이 어떤지 물어보니 매운 거 싫어하는 할머니는 맵다고 안 드실 거 같단다. 남편 추천으로 무초절임을 간단하게 만든다. 무를 넓고 얇게 썰어 식초와 설탕과 소금을 함께 끓인 물에 무를 넣어 재운다.

대충 만들어 놓은 후 다음 날 아침, 분주하게 반찬을 통에 담는다. 가족들 아침을 챙기고 잊어버릴까 싶어 마음이 급하다. 시어머님이 오늘 병원에 오시기 때문에 병원에서 가방을 보내려 생각하고 있다. 시골에 사시는 어머니가 우리 집 근처 대학병원에 오시게 된 건 한 달쯤 되었나. 지역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대학병원에 소견서를 써 주셨단다. 암일까 싶어 엄청 걱정 하셨다는데, 다행히 암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 6개월은 병원을 다니면서 열 알이 넘는 약을 드셔야 한단다. 처음엔 우리가 모셔 오고 모셔다 드리기도 했는데, 이번엔 다른 형제가 모셔 오기로 했다.

도시락 가방을 챙긴다. 얼마나 오래 드실지는 모르겠지만, 전날부터 준비한 반찬을 담아본다. 몇 일 전에 다이소에서 사 온 반찬통을 꺼낸다. 어머니와 같이 사는 게 아니니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을 통 안에 함께 넣어본다. 콩장과 멸치조림과 무채, 무초절임을 담는다. 넓은 보냉가방에 행여 맛이 변할까 싶어 아이스팩을 두 개 꺼내어 귀퉁이에 꽂아 넣는다. 지난번 보내드렸던 오이지 남은 것도 싹싹 긁어서 봉지에 넣어 가방에 넣었다. 우리는 다음에 또 만들어 먹으면 되지. 아픈 어머니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엄마가 내가 어릴 때 싸준 도시락도 이랬을까. 온 마음을 담아 싸 준 도시락이 그립다.*

이전 06화 닭 요리 중 제일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