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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그리hangree Sep 01. 2023

도시락2

함께 먹으면 더 맛있는 도시락

요즘 아이들은 급식을 먹는다. 나는 급식을 먹어본 적은 없다. 그래도 비슷하게 스무 살 때 대학교 기숙사에서 삼시세끼를 꼬박 챙겨 먹었는데 그게 급식 같았다. 단체 음식이라 대용량이지만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것처럼 정성스러운 식판 한 상 먹으면 학교 수업을 하러 갈 때 참 든든했다. 엄마의 사랑까진 아니더라도 밥을 챙겨 먹는다는 것 자체로 하루하루 기분이 좋았다.

지금 느끼는 게 나 어릴 때 싸 준 엄마의 도시락은 사랑 그 자체였다.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이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나와 언니의 도시락을 싸는 걸 적어도 10년 이상은 했다는 거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꼬박 12년을 어떻게 도시락을 쌌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나는 기껏해야 아이들이 어렸을 때 소풍이나 한 번 갈 때 한 학기에 한 번 정도 김밥 도시락을 싼 정도랄까.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중고등학생이 된 우리 아이들은 소풍을 가도 식당에 가서 각자 사 먹는다. 도시락을 쌀 필요가 없다.

초등학교 돌봄교실에서 7, 8월 보조교사를 했다. 지금은 일이 끝나고 휴식 중이다. 돌봄교실은 방과 후부터 일정이 시작이지만 방학은 예외다. 이 초등학교가 공사에 들어가서 꼬박 두 달을 다른 초등학교로 이사가 아침부터 오후까지 8시간을 보낸다. 8시 30분에 시작이지만, 이전에 오는 학생이 있어서 내가 조금 일찍 가 출근을 하고 4시까지 8시간을 일했다. 근처에 나가서 점심을 먹거나 하기 어려우므로 돌봄전담사들은 도시락을 싸 온다. 나도 결국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도시락을 싸는 게 별거 아니었다. 아이들의 도시락처럼 아이들이 선호하는 반찬을 만들 필요도 없었고, 그냥 아침 차릴 때 반찬을 한두 개 정도 통에 담아서 가져오면 되는 거였다. 아침에 도시락을 싸 와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점심을 함께 먹는다.

처음 보육교사 자격증을 딸 때 실습하던 일이 생각이 났다. 그때 실습은 어린이집에서였다. 도시락을 싸 오는 것도 아니었고, 어린이집에서도 급식을 먹었다. 반찬을 유아들에게 덜어주고, 준비가 다 된 후에 선생님과 함께 나도 옆에서 급식 판에 음식을 덜어서 먹었다. 당시에는 먹는 게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아이들이 흘리거나 엎을 때를 대비해서 여기저기를 훑어보면서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곱 살 유아들이기 때문에 실수는 점심 먹을 때조차도 일어났다.

어린이집 같지는 않았으나 그런 분위기에서 점심을 먹었다. 방학이라 아이들은 직접 도시락을 싸 왔다. 돌봄교실 자체가 안전하게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사건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몰라 눈은 늘 여기저기로 굴러다녔다. 수저 떨어뜨리는 건 다반사였다. 내 숟가락을 빌려주기도 하고, 선생님이 주기도 했다. 또는 가서 물로 씻어 오기도 했다. 물병을 열어주거나 물을 채워주고, 도시락 뚜껑을 열어주기도 했다. 직접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직접 할 수 있게 했다. 어린이집의 유아와는 달랐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비슷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편안해지고, 아이들이 휴가로 자리가 조금씩 비자 아이들 옆에서 내 도시락을 열었다. 함께 먹는 아이들과 더욱 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함께 밥 먹는 사람들을 식구라 하지 않던가. 돌봄교실 아이들과 나는 식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선생님은 왜 콩밥을 먹느냐는 질문부터 매일 김치 싸 오는 게 신기하다는 아이들의 소리에도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나이가 드니 김치가 없으면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아이들은 소시지에 밥을 싸 오는데 그것도 좋단다. 나는 어려서 엄마가 힘들게 소시지를 사서 도시락 싸주셔도 퍽퍽하다고 짜증만 냈는데, 아이들은 엄마의 도시락이 그렇게 좋단다. 개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엄마의 도시락은 큰 힘이 되는가 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도시락 하나하나를 보면서 아이들의 엄마들은 얼마나 바쁜 와중에도 도시락을 어떤 걸 싸줄까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내가 맞벌이를 했다면 이렇게까지 못 해줬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맞벌이 가정에 온 마음을 다해 박수 쳐 주고 싶다.

가정에서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도시락을 통해 온전히 느낀다. 그걸 난 이제야 깨닫는다. 내 어릴 적 엄마도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반찬 한 번 사려면 눈치 보였던 그때 해준 사랑도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았으니 정말 죄스럽다. 아직 살아 계신 게 다행이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도 엄마에게 멋진 도시락을, 반찬을 해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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