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g Shop(개구리 가게)
꿈보다 해몽 - 김대리 이야기
"김대리, 이번 건은 우리 부서의 사활이 걸린 문제니 자네가 잘 준비해서 발표하도록 하게."
조용히 부를 때부터 어쩐지 감이 안 좋았다.
"네, 그런데 전 베트남 론칭 건으로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요... 혹시 다른.." 부장님은 강하게 내 말을 삼켜버렸다.
"자네 바쁜 거 내가 잘 알지. 하지만, 지금 안 바쁜 사람이 어디 있나? 그래도 자네가 믿음직스러우니까 자네에게 맡기는 거 아닌가. 잘 좀 해보게."
난감했다. 그렇지 않아도 바빠 죽겠는데 프레젠테이션까지.
더구나 이 일은 원래 내 일도 아니었는데. 차대리가 갑자기 차사고가 나는 바람에. 게다가 다음 주 월요일에 발표라고?
물론 차대리가 발표하려고 준비해 둔 자료를 넘겨주긴 했지만 자료만 잔뜩 있고 정리를 안 한 상태. 파워포인트는 아예 만들어 놓지도 않은 채로.
"김대리님, 죄송해요. 제가 갑자기 병원신세를 지게 돼서요. 파워포인트는 제가 주말에 빡세게 준비하려고 했는데 이거 팔이 부러졌으니 자료를 도대체 만들 수가 없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전화기 속 차대리는 미안한지 말이 길어지면서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했다.
"이것 참. 저도 베트남건으로 바빠 죽겠는데..." 어쩌면 차대리는 이번에 이사장님에게 점수 좀 따고 싶었을 마음이 간절했을 수도 있단 생각이 스치자, 전화기에다 대고 짜증을 지속할 순 없었다. "... 그래요. 뭐 차대리님이 일부러 차사고를 낸 것도 아니고. 이번 우리 부서 프로젝트 건은 제가 잘 준비해서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몸이 빨리 회복하는 게 더 중요하지요."
"감사합니다. 김대리님. 이번에 신세 지는 거 다음에 꼭 갚겠습니다."
금방 만들 줄 알았던 파워포인트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고치고 또 고치고 하다가 토요일, 일요일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다. 그래도 난 해냈다. 프레젠테이션 연습도 마쳤다. 하지만 잠을 안 자서 그런지 불안감이 저 뱃속에서부터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넘어오고 손발은 미세하게 떨렸다.
'아, 아침해가 안 떴으면.'
월요일 6시 23분 아침해는 여느 때처럼 떴다. 그 흔한 차사고도 안 나고. 오전 7시 32분 나는 회사에 이상 없이 도착했다. 그 흔한 차사고도 안 당하고.
난 고카페인 음료 몬스터를 들이켰고 오전 9시 30분에 이사장님 앞에 카페인 기운으로 섰다. 신통방통하게 말이 술술 나왔다. 준비한 대로.
이사장님 얼굴 표정은 내 발표에 대한 모든 걸 다 말해주고 있었다.
무표정 -> 의심 -> 환한 미소 -> 눈가와 입가의 만족 주름 -> 반짝이는 눈.
난 대성공임을 직감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사장님의 코멘트에 내 눈앞은 깜깜해졌다.
"김대리. 수고했어. 맘에 쏙 드는 프레젠테이션이구먼. 특히 frog shop은 개구리처럼 점프해서 앞으로 나아가자고 쓴 거지? 아주 기발하고 맘에 들어."
"?"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frop shop?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지?'
난 이내 알아차렸다. 내가 flag shop을 frog shop이라고 잘못 쓴 것을. 욕심을 부려 어젯밤 파워포인트에 플래그샵이라 쓰지 않고 영어로 flag shop이라고 쓰려했던 것이다. 있어 보이려고.
그런데, 아뿔싸! 수면부족 몽롱함이 flag를 frog로 변신시켰던 것이었다. 이렇게 치명적이고 어리석은 실수를 했다니.
갑자기 달아오른 두 뺨과 부끄러움으로 쪼그라든 내 모습에 이사장님은 더 호탕하게 웃으시며 내 어깨에 손을 얹으셨다.
"이 사람, 부끄러워하기는. 우리 이번 건으로 다 같이 개구리처럼 jump 해 보자고. Frog처럼! Jump! 하하!"
*참고: 플래그샵 - 보통 우리가 말하는 플래그샵은 flagship store를 말하는 것으로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특정 상품 특정 브랜드를 중심으로 브랜드의 성격과 이미지를 극대화한 매장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