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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퀸 Mar 16. 2024

최팀장


"최팀장님, 이번엔 캘리포니아로 가셔야겠습니다."


텔레퓨처텍은 몇 년 전부터 북미시장을 뚫기 위해 애써왔다. 이번이 미국으로 향하는 일곱 번째 필드테스트다.


초반엔 돌아가면서 출장을 가기로 되어 있었지만 회사는 최팀장을 선호했다. 최팀장 일을 잘했다. 외국경험도 있고 무엇보다도 팀원들을 따뜻하게 잘 대해주며 책임감이 강했다. 이번에도 최팀장 손에 네 명의 팀원들이 맡겨졌다.


"팀장님, 저는 이번에 미국 처음 가는 건데 팀장님만 믿겠습니다. 팀장님 소문이 자자합니다. 영어도 잘하시고 팀원들도 가족처럼 잘 챙겨주신다고요."

막내사원 준원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늘 싱글벙글이다. 워낙 모두에게 아부성 발언을 잘해서 별명이 '비비고'다.

"그래, 손 비비고! 걱정 말게 내가 잘 챙겨줄게. 손군에게 좋은 경험이 되겠군."


한 달 뒤 비행기를 탄 팀원들은 처음부터 어딘지 모르게 주눅 들어 있었다. 저렴한 비행기표를 고르다 보니 유나이티드항공을 이용하게 되었 아무래도 영어가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때부터 팀원 모두는 최팀장만 바라보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팀이 하나가 되어 최팀장을 조건 없이 따르니 나쁠 것도 없어 보였다. 최팀장은 마치 큰 형님이나 아버지가 된 것 마냥 팀원들을 가족처럼 살뜰하게 챙겼다.


미국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푼 팀원들에게 최팀장은 오랜 비행을 잘 견뎠다고 따뜻하게 위로하며 포옹할 듯 바짝 다가가 일일이 어깨를 토닥였다.

팀원들에게 휴식을 허락하고 최팀장 본인은 차를 렌트하느라고 바빴다. 이번에 북미시장을 겨냥해서 만든 휴대 전화기가 잘 터지는지 테스트할 장소를 지도에 표시하고 필요한 장비도 혼자서 챙겼다.


"자, 이제 슬슬 테스트하러 나가 볼까?"


캘리포니아에서 대학시절을 보낸 최팀장은 운전하면서 이동하는 곳마다 그 지역에서 유명한 곳, 음식, 알아야 할 것 등으로 이야기꽃을 활짝 피웠다. 관광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진 팀원들은 말들이 많아졌고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맘껏 수다를 떨다가도 최팀장이 무엇인가 설명하려고 입을 열면 마치 대통령의 말씀이라도 되는 양 모두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아, 조금 더 가면 K-마트라고 엄청 큰 몰이 있는데 잠시 그곳에 들르도록 하지. 우리 간식거리도 좀 살게 있고 해서." 시골길 같은 도로를 한참 달리다 보니 큰 몰이 눈앞에 보였다.

최팀장은 우회전해서 K-마트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도로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운 최팀장은 차문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켜며 허리를 돌렸다. 다들 화장실이 급했던지 팀원들은 내리자마자 이미 건물 쪽으로 몸을 향했다. 담배생각이 간절했던 최팀장은 막내를 불러 세웠다.

"어이, 자네들은 먼저 들어가서 먹고 싶은 거 고르고 있게. 손 비비고! 자네는 화장실이 급한 거 아니면 나랑 천천히 가지?"

손 비비고는 급할 것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고 최팀장은 도로와 맞붙은 주차장 한편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최팀장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손 비비고는 심심했는지 그의 장기인 온갖 아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최팀장에게 감동을 먹었다느니, 어쩜 그리 영어를 잘하냐는 둥, 어머니같이 따뜻하고 아버지같이 믿음직스럽다고 기름칠한 혀로 계속 조잘거렸다. 최팀장얼굴은 점점 호빵처럼 둥글둥글해눈꼬리는 촛농처럼 흘러내렸다. 


담배가 꽁지만 남을 때까지 귀호강을 실컷 한 최팀장은 아쉬운 듯 발을 끌며 내키지 않는다는 듯 조그맣게 말을 꺼냈다.  

"어, 이제 슬슬 들어가 볼까?"


그런데 몸을 돌리던 최팀장 갑자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최팀장의 휘둥그레진 눈과 다물지 못하는 입을 본 손 비비고는 최팀장의 눈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저 멀리서 산만큼 거대한 짐승이 그 둘을 향해 돌진하는 것을. 

곰인지 늑대인지 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 불쌍한 두 사람의 뇌는 정지해 버렸고 두 발은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눈 깜빡하는 사이에 그 큰 짐승은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왔고 최팀장은 순간적으로 막내사원의 두 팔을 뒤에서 움켜쥐고 그의 등 뒤 잽싸게 몸을 숨겼다.


한번 물으면 절대 놓아줄 것 같지 않은 커다란 송곳니를 드러내며 무섭게 돌진해 오는 그 짐승은 금방이라도 두 명의 사내를 덮칠 기세로 다가왔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던 가련한 두 명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10미터.....

5미터....

3미터...

2미터..

1미터.


맹수는 계속 달렸다.

멈추지 않았다.

흙빛으로 변한 두 인간에게는 눈길 비슷한 것조차 주지 않았다. 

그들을 지나쳐서 계속 내달렸다.

멀어져 갔다.


1미터.

2미터..

3미터...

5미터....

10미터.....


온몸이 마비된 채 꼼짝도 못 했던 두 사람  짐승의 뒷모습을 좇았다. 공포가 살짝 누그러지자 멀어져 가는 누런 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최팀장은 온몸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꽉 쥐었던 손이 막내사원 팔에서 툭 떨어지고 다리 풀려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막내 사원은 주저앉는 최팀장을 부축하지 않았다.

마른 명태처럼 뻣뻣해진 그는 푸른빛이 도는 쇠덩어리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미세하게 파르르 떨리는 입술은 감옥의 철문처럼 앙 다물어져 있었다. 단지 이글거리는 두 눈만이 실망과 분노의 불을 최팀장 얼굴 위로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감히 막내 사원을 쳐다볼 수 없었던 최팀장의 얼굴은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

처음엔 붉게 타오르는 듯하던 그의 면상은 곧 시커먼 숯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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