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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방, 이대로 괜찮은가?

애물단지 장난감, 꼭 필요한가?

by 심연

장난감을 지키려는 자 vs 장난감을 버리려는 자


창과 방패의 대결같이 한 치의 양보도 없던 기나긴 논쟁이 오늘로써 끝이 났다. 남들이 들으면 아이들과 부모의 대결인가 싶겠지만, 이 이야기는 바로 남편과 나의 이야기다.


장난감 필요 없어

평일에 어린이집에서 장난감 가지고 실컷 노니 집에서까지 장난감이 많을 필요는 없어. 층층이 높이 쌓여있는 장난감과, 바닥에 널브러진 장난감 때문에 오히려 애들이 다치고, 위험해.



장난감 필요해

장난감은 아이들 소유인데, 어떻게 부모가 멋대로 버려. 아이들이 잘 크고, 잘 놀려면 그 시기 발달에 필요한 장난감이 필요해. 다 한 철이야, 셋째까지 다 쓰고 난 후 하나하나 버리면 돼.


문득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어떤 입장일지 궁금해진다. 우리 집에서는 장난감 찬성론자가 나고, 장난감 반대론자는 남편이었다.


우리 집에 장난감이 처음부터 많았던 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주변에서 "장난감이 이게 다야?"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적은 축에 속했다. 그런데 큰 애가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때가 아마 큰 애가 세 살 되던 때로 기억한다.


거실의 모든 벽면이 장난감으로 가득하던 친구네 집, 여기가 가정집인가, 키즈카페인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그 집은 장난감이 무척 많았다. 큰 애는 마치 친구집이 제집인 것처럼 친구의 장난감을 이것저것 만지며 탐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로 발생했다. 친구집에서 재미있게 놀고 온 뒤 큰 애가 부쩍 의기소침해진 것이다.


우리 집보다 친구집이 더 좋다는 말도 자주 하고, 우리 집에는 장난감 없어하며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부모로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역할놀이, 블록놀이와 같이 아이들 발달 항목별 장난감 한 개씩은 구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장난감은 대부분 주변 지인들을 통해 나눔 받았다. 주변에서 "장난감 필요해?"라고 물어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감사합니다"하고 넙죽 받아왔다. 장난감 가격이 꽤 비싸다 보니, 나눔 받는 게 돈을 버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장난감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우리 집을 잠식하는 애물단지가 되어있었다.


하나의 물건이 들어오면, 하나의 물건을 방출하는 게 맞지만, 두 살 터울로 아이가 셋이나 있는 우리 집에선 장난감이 들어오는 건 쉬워도 나가는 건 쉽지 않았다. 지금 당장 쓰진 않지만, 언젠간 쓰겠지 했던 장난감부터, 큰애가 안 써도 둘째가 쓰니깐, 셋째가 쓰니깐 하면서 보관한 물건까지, 장난감을 보관한 햇수로만 5년이 됐다. 사실 말이 '보관'이지 '애들 있는 집이 엉망인 게 당연한 거지'하며 합리화하며 산 지 5년이 된 것이다.


자잘한 장난감들이 많다 보니, 매일매일이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다. 장난감 방이 어엿이 있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장난감들은 방에만 갇혀 지내지 않았다. 거실, 안방, 화장실, 소파 밑까지 온 집안이 장난감 지뢰로 가득했다. 장난감으로 방을 어지럽히는 건 무척 쉬웠지만, 삼 남매를 케어하며 이를 치우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행여나 아이들이 장난감에 걸려 넘어지거나, 다치기라도 한 날이면 남편은 장난감을 버리지 못하게 한 나를 탓하며 크게 분노했다.


장난감이 우리 집 애물단지를 넘어, 가정 불화의 원인이 된 것이다.


나랑 계속 살고 싶으면, 장난감 다 갖다 버려


남편은 평소에도 장난감 방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며 장난감들을 다 갖다 버리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하지만 그땐 그저 남편이 지저분해지는 방이 보기 싫어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장난감을 버리라는 말에 치우겠다는 말로 상황을 모면하기 바빴다. 그런데 치워도 치워도, 치워지지 않는 방을 보며 남편의 뚜껑이 "뻥~!"하고 열려버린 것이다.


남편의 최후통첩에 당황스러워 어안이 벙벙했다. 어떻게 장난감 때문에 저런 말까지 하나 솔직히 서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남편의 표정은 꽤나 진지해 보였다. 그는 진심이었다. 평소 안전에 대한 불안이 높은 그에게 장난감은 그저 아이들의 놀잇거리가 아닌, 사랑하는 아이들을 다치게 하는 위험한 존재였던 거였다.


'남편을 버릴 것인가, 장난감을 버릴 것인가'(?)하는 선택지가 앞에선 더는 "치울게"라는 말로 상황을 모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편의 말대로 장난감을 버리기로 했다. 아이들에게서 아빠를 없애는 것보단, 장난감을 없애는 편이 훨씬 나으니 말이다.


장난감 버리기는 생각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장난감을 버린다고 하면 아이들의 반발이 크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이게 웬걸? 반발은커녕, 아이들은 오히려 장난감을 버리라며 가져와줬다. 엄마보다 더 적극적으로 장난감을 버리는 아이들을 보며, '어쩌면 장난감에 대한 애착이 컸던 건 아이들이 아닌, 엄마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던 장난감은 50리터 쓰레기봉투 4 봉지에 다 담겨 나왔다. 그리고 겸사겸사 장난감 방에 있던 옷장 2개와 수납장도 다 같이 버렸다. 그리고 그 안 장난감에 얽혀있던, 집착과 미움, 원망 등의 감정까지 모두 함께 버렸다.


장난감 방이 사라진 자리에, 첫째 방과 둘째 방이 생겼다


장난감 방이 사라진 자리에는 둘째의 방이 생겼다. 원래 첫째와 둘째가 한 방에서 같이 잤었는데, 장난감방이 사라지면서 각 방이 생긴 것이다. 장난감만 사라졌을 뿐인데, 우리 집이 이렇게 넓어졌다는 게 놀라웠다. 그동안 이렇게 넓은 공간을 장난감에게 내주고 있었다는 게 아깝게 느껴졌다. 이제 보니 나눔으로 장난감 비를 번 게 아닌, 장난감님들의 월세를 대신 내주고 있었던 거였다.


장난감이 사라졌어도 아이들은 잘 놀았다. 이불을 꺼내어 수영장도 만들고, 놀이공원도 만들고, 주방용기가 소꿉놀이도 하고, 엄마와 역할극도 했다. 장난감이 빠진 자리에 책장과 책상을 배치하니,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꺼내 읽기도 하고,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은 플라스틱 장난감으로 특정되지 않았다. 집 안에 있는 모든 게 그들의 장난감이었다.


아이들은 그 뒤로도 장난감을 찾지 않았다. 장난감이 빠져나간 자리를 매운 건 가족들의 웃음소리였다.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스트레스받고 있는 집이 있다면, 과감히 결단해도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마 하고 나면, 이 좋은 걸 왜 진작 하지 못 했나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까지 들 테니 말이다.^^



[같이 보면 좋은 영상]

https://youtu.be/bDOYFGugsy8?si=sXJiFqjealV263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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