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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Mar 20. 2024

살림의 프레임을 뒤엎다

나도 살림 잘하고 싶다.

결혼 9년 차, 그러나 난 여전히 살림이 어렵다. 그동안 내게 살림은 내일 옷을 입고, 밥을 먹어야 하니 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일 중 하나였다.


싱크대에 수북이 쌓인 설거지 더미에서 그릇 두 개, 숟가락, 젓가락 두 쌍만 꺼내서 대충 설거지해서 먹는 날도 많았고, 세탁이 다 된 빨래를 하나하나 널기가 귀찮아서 바닥에 깔아놓고 자연건조시키다가 필요한 것만 바닥에서 건져서 입곤 했다. 빨래를 말리는 게 귀찮아서 건조기를 샀는데, 건조기를 사니 이번에는 빨래 개는 게 귀찮아서 건조기에서 꺼낸 옷과 수건 등 개지 않고 소파에 쌓아놓고 생활했던 날도 많았다.


어디에 얘기하기도 낯부끄러운 살림꽝 초보 주부 시절에는 살림을 왜 잘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조차 몰랐다. 어차피 더러워질 방 매일 쓸고 닦고, 빨래도 매일 칼각으로 개서 정리하는 사람들이 너무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그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생각하며 집 정돈에 쏟는 몇 분 몇 초를 아까워하기만 했다.


당장 내일 입을 옷, 지금 먹을 그릇만 씻는 생존 살림을 꽤 오래 하다 보니, 집은 마치 가뭄에 바닥이 쫙쫙 갈라진 황무지 같았다. 집이 지저분하니 계속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밖에서 재밌게 놀았어도 집에 들어오면 힘이 쫙쫙 빠지는 것 같았고, 기분이 안 좋으니 작은 일로도 남편과 많이 부딪혔다. 집을 정돈하는 몇 분 몇 초를 아까워했던 게 불러온 엄청난 나비효과였다.


집이 휴식공간, 영감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깔끔함은 고정값이었다. 매일 하는 설거지, 청소기, 걸레질, 세탁 그리고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하는 모든 행위가 우리가 집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작은 움직임들이었다. 매일 입고, 자고, 먹는 모든 행위 중 살림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이 없다. 에너지 충만한 건강한 일상은 단정한 살림 위에서 가능한 거였다.


나의 살림 유튜버 선생님들 : (좌)보통엄마jin, (우)꿀주부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님 덕에 매일 밤 전국의 모든 살림꾼들 영상을 모아 보고 있다. 내 집은 치우기 귀찮으면서 남의 집 청소하고, 밥 해 먹는 걸 보는 게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짓는 장면이 나오면 구수한 밥 내음이 영상 밖에 있는 나에게까지 나는 것 같아 보고만 있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처음에는 '뭘 이렇게까지 해'하며 봤는데, 지금은 나도 해보고 싶어  영상 보는 내내 온몸이 근질근질하다. 살림 천지개벽이 필요한 내게 영상을 추천해 준 알고리즘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내 주변에도 살림 고수가 한 분 계신다. 바로 우리 시어머님이다. 어머님을 생각하면 만물의 엄마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집안 살림살이 하나하나, 화초 하나하나 모두 소중히 대하신다. 그래서인지 어머님댁 가전, 가구들은 오래됐어도 마치 새것 같고, 다 죽어가는 화초도 그곳에 가면 생기를 되찾는다.


어머님의 손은 한시도 쉬지를 않는다. TV를 보면서 밤을 깎고 있고, 대파를 다듬으며 대화를 한다. 좀 쉬시라고, 힘들지 않냐고 하면 깔깔깔 웃으며 뭐가 힘드냐고, 너무 재미있다고 하신다. 밝은 엄마의 웃음과 호텔보다도 깨끗한 집, 그리고 식탁 위를 가득 채운 영양가 있는 음식들을 보니 남편이 어떻게 그렇게 자존감이 단단한 사람으로 컸는지 알 것 같다.


해도 표 안 나고, 안 하면 표 확 나는 얄미운 살림이지만, 그 살림이 그저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 될지,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 될지는 살림을 하는 사람의 생각의 프레임에 달려있는 것 같다. 살림의 프레임을 뒤엎으면 살림도 예술이 될 수 있었다. 살림은 그저 귀찮은 일이 아닌, 나와 내 가족을 살리는 힘이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으로 살림을 배워보려 한다. 그리고 그 배움의 기록을 매주 이 브런치북에 남기려 한다. 살림꽝 주부가 살림왕이 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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