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시렸던 소녀와 그 소녀를 사랑한 소년의 이야기
채희연과 이도빈은 중학교 시절부터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희연은 언제나 듬직한 모습으로 도빈을 지켜주었고, 도빈은 그런 희연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같은 반에서 공부하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 그들은 서로의 비밀을 나누고, 꿈을 이야기하며 애틋한 감정을 쌓아갔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희연의 삶은 점차 어두워졌다. 학교폭력이 그의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했고, 희연은 점점 더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부터 시작된 무자비한 괴롭힘 들은 2학년까지 지속되었다. 집안도 가난하고, 부모도 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란 희연은 이 세상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도빈은 희연이 힘들어하는 것을 느꼈지만, 그를 도와주고 싶어도 방법을 찾지 못했다. 희연의 미소가 사라지고, 눈빛이 흐려져 가는 것을 보며 도빈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희연아,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없어서 미안해,”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느 추운 겨울밤, 희연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도빈은 그날 희연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불안한 마음으로 형의 방을 찾았다. 방 안은 고요했고, 희연의 자취는 어디에도 없었다. 도빈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희연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채희연, 어디 간 건데?”
그 시각, 희연은 겨울에 반팔 하나만 입고 학교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더 이상 모든 걸 버티기엔 너무 힘들었다. 18살이 견디기엔 세상은 너무나 가혹했다.
기초수급자라고 놀림받던 중학교 시절도 겨우 버틴 그녀였는데, 이제는 물리적 폭력으로 몸도 마음도 너무나 다쳤다. 책상에는 욕이 적힌 낙서가 가득했고, 사물함에는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교복과 체육복은 더럽고 구겨져 있었으며, 그 모든 것이 희연의 고통을 대변하고 있었다.
희연은 이제 끝내기로 결심했다. 유난히도 밝은 달 아래에서 눈물이 흘렀지만, 주저하면 더 지옥 같은 생활이 계속될 것 같았다. 두 눈을 감고 올라섰다.
툭...
그날 밤, 앰뷸런스가 울려 퍼졌고 희연은 이미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희연의 사망 소식을 뉴스로 접한 도빈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희연아, 왜 너는 나에게 이렇게 떠나갔어?”라는 절규가 그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빈은 희연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희연의 죽음은 그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졸업식 날, 도빈은 친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지만, 그 순간에도 희연과의 따뜻한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희연, 나 잘하고 있어?”라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도빈은 희연을 잊으려 애썼지만, 그의 기억은 자주 그를 괴롭혔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빈은 희연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졸업식 날, 그는 희연을 보내주기로 결심했다. 그는 희연이 좋아했던 장소로 향했다. 그곳은 그들이 함께 뛰놀던 운동장이었다.
도빈은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서 희연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희연아, 미안해. 내가 더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이제야 너를 보내줄게.”
그는 손에 쥔 꽃다발을 조심스럽게 땅에 놓았다. 순간, 희연의 기억이 그를 감싸며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곧 도빈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고통으로 변해갔다.
도빈은 무릎을 꿇고, 가슴을 쥐어짜듯 울기 시작했다. 그의 눈물은 멈출 줄 몰랐고, 마치 세상의 모든 슬픔이 그의 몸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희연아, 왜 이렇게 빨리 떠났어?”
절규가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숨이 막힐 듯한 고통 속에서 그는 희연과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리움과 후회가 뒤엉켜 가슴을 찢어놓았다.
도빈은 눈물을 흘리며, 희연이 겪었던 고통을 떠올렸다. 하루하루가 힘들고 지옥 같았을 그 시절, 희연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도빈은 그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러오는 희연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도빈아, 힘내!”라는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제발, 나를 잊지 말아 줘...” 희연의 마지막 말이 도빈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 순간, 도빈은 희연의 고통이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그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희연이 원하던 삶을 살아가고, 그의 꿈을 이어가겠다고.
도빈은 힘겹게 일어나, 희연의 이름을 다시 한번 부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희연아, 나는 너를 위해서라도 포기하지 않을게.”
그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지만, 그 속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제는 희연의 기억을 가슴에 품고, 그가 원했던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도빈은 희연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리고 그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일어섰다.
“희연아, 너의 기억을 간직할게. 너는 나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거야.”
그렇게 도빈은 희연을 보내주며, 그의 삶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