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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빛나는 그날, 우리에게

헤어진 그날 이후...#환승연애

by 규린 Mar 09. 2025




유지안(28)-8년 6개월 연애,  3개월 전 이별

박이준(30)-8년 6개월 연애, 3개월 전 이별

[시청자 자막]






하얀색 민무늬 티셔츠에 하늘색 카디건 그리고 슬랙스까지 핏이 딱 들어맞게 입은 키가 꽤 큰 남자가 카메라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인터뷰에 응했다. 시청자들에게 보이는 이 남자가 연애한 횟수는 8년 6개월 헤어진건 3개월 전 이별




그이는 제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좋은 사람이에요 그랬기에 놔줘야 했어요 사랑했으니까
그이는 사람을 끌리게 하는 매력이 있었어요. 다정하고 책임감 있고.. 제가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낸 데에는 아마 그이 덕분일 거예요  하지만 제가 그이를 행복하게 못해준 거 같으니 저보다 더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사랑받았으면 해요


쪽지를 다 읽은 이준의 눈엔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도대체 X가 누구길래 이토록 아파하는 것일까 가장 눈물이 없는 게 특징이라지만 보는 사람도 마음이 아파올 정도로 그리고 시청자들이 이 사람이 연인이 누굴까 가장 궁금해했다.




그의 인터뷰 장면이 끝난 후 누군가 다시 그 공간에 들어와 앉았다.




하얀색 블라우스에 분홍색 카디건, 회색스커드

검은색 리본으로 묶은 반묶음 머리까지 한눈에 봐도 예쁘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예쁜 여자 출연진이 나왔다.



그녀도 똑같이 쪽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녀는  만나본 사람들 중에 저에게 가장 힘이 되었던 사람이에요
사람을 잘 챙길 줄 알고 저는 그런 거 잘못하거든요.  배려심도 넘치고 곁에 있으면 따뜻해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아마 이렇게 오래 만났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그녀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요

그녀는  오히려 담담해 보였지만 눈동자 속에선 슬픔이 느껴졌다.
시청자들은 그 담담함 속에 느껴지는 슬픔에서 이 사람의 애인은 누구였을까 하고 집중되었다.

나머지 4명의 참가자들의 인터뷰 영상이 마치고  한자리에 모인 그들..
음식을 나눠먹으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제작진은 룰을 설명했다.


총데이트는 3명과 가능하며 마지막 날에 선택을 하는데 선택을 한 명도 안 할 수도 있다.



설명을 다 들은 참가자들은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첫날밤이 흘렀다. 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두 번째 아침이 되었다.



이준은  야외로 나와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는데 등뒤로 누군가가 걸어왔다. 그러면서 하는 말


" 언제부터 그렇게 했다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유지안이었다. 이준은 애써 그녀를 지나쳐서 로비로 향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다 일어났을 무렵,  전날 뽑은 데이트 상대와 데이트 기회가 주어진다.

이준은 여자 1과 지안은 남자 2와 데이트를 했다. 이준이 데이트를 함께한 여자는 밝고 명랑했다.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스타일이라 이준도 최대한 맞춰주면서 4시간 정도의  첫 데이트를 보냈다. 한편 지안은 남자와 낙엽이 떨어지는 둘레 길을 갔다. 천천히 걸으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따스하면서도 자상한 남자
자신의 바운더리에 있는 사람은 잘 대해줄 거 같은 사람이었다. 진짜 연인이 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데이트 시간을 가지고 다시 모인 그들은 서로 각자의 시간을 보냈고
제작진은 시청률이 가장 높은  지안과 이준을 테라스에 앉혔다.


지안이 앉아있고 잠시뒤 어떤 남자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알고 보니 이준이었다. 지안은 당황했지만 티를 내지 않고 그를 보지 않은 채 애꿎은 벽만 바라보았다.





" 잘 지냈니 지안아?"


저 목소리가 지안의 마음을 울렸다. 특유의 노곤노곤하면서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 지안이 좋아했던 그 목소리였다.

애써 담담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준은 알고 있었다. 담담한 게 아니라 그런 척하는 것이라고.


"  오빠가 이런데 나올 줄은 몰랐어 "


" 아니 궁금해서..  너는 관심이 있었잖아 "


" 내가 왜 나왔을지 이유가 궁금해?"



" 아니"



" 어차피.. 안 밝혀도 상관없잖아"


"....."

커피를 마시고 내려놓았다. 이미 대답을 들은 사람처럼.  그리고 고민하더니 이준이 이내 입을 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라는 별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이 둘은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인생의 거의 반을 함께해 온 친구이자 서로밖에 몰랐던 연인이고  그와 동시에 서로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느꼈고 가장 잊힐 수 없는 오래된 미련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이 둘 영상을 보며 코멘트를 달았는데 오래 만난 만큼이나 헤어졌다는 거에 아쉬움이 남아야 하는데 그런 느낌이 없어서 색다르다고 말이다. 마치 서로를 놓아줘야만 했던  이유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에게 이별사유라 있어서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 부모님들의 나쁜 시선, 맞선을 보라는 압박, 돈과 관련된 가정들 때문에 스물여덟과 서른의 연애.  선보라는 부모님들. 여러 가지가 겹쳤고 그로 인해
너무 지쳤을 뿐 그게 이유였고 크게 화도 안 내고 그렇게 이별을 맞이했지만 그중 한 사람  이준은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라는 스스로에 질문에 " 노"라고 답했다.



그리고 지안은 이내 말을 이었다.

" 권태기 한번 없이 오래 만났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지치는 바람에..
더더욱 아픈 이별을 맞이하게 된 걸 지도 몰라"

" 맞아.."



그렇게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20분의 시간이 끝났다. 촬영이 끝나고 소파에 앉은 둘.  모든 참가자가 자러 들어가고 잠이 안 오는 지안은 잠시 소파에서 생각에 잠겼다.

이때 이준이 그녀에게 말을 걸어온다.


" 내일 나랑 데이트할래?"

"어?"

" 아니.. 강요는 아니고.."

" 그래"

뜻밖의 수락에 떨떠름한 이준은 긴장도 되었다.  지안이 수락한 이유는
이미 이별을 맞이했지만 그녀와 함께한 데이트는 모두 새로운 경험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깊게 나눠보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다음날  선택된 상대끼리 데이트를 떠났다.  이준이 운전하는 모습은 오랜만에 본 지안은 느낌이 색달랐다.  오래 사귀다가 헤어진 지 1년도 채 안됬음에도 불구하고.

" 밥 먹고 갈까? 근처에 괜찮은 집 있던데 너  화덕피자 좋아하잖아 "

" 그래 좋아"

지안은 음식취향마저 잘 알고 있어서 첫 연애의 설렘보다 익숙함쪽으로 흘러가서 사랑이란 걸 잘 못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번엔 어디로 갈 거야?"

" 가보면 알아 네가 좋아하는데야"

식사를 끝마치고 다시 차를 타고 30분쯤 달렸다.  이준이 내리라고 하자 도착한 곳은 바람이 솔솔 불고 가운데는 오래된 나무 하나가 있는 곳. 조용한 걸 좋아하는 둘에게는 딱이었다. 그리고 이준이 준비한 것은 차박이다.
" 우와.."

" 맘에 드는지는 모르겠다"

" 새롭고 좋은 거 같아"

커피를 나눠 마시며  서로 먼산을 바라보다 정적이 흘렀다. 이 공허함 속 정적을 깬 건 지안이었다.



"  오빠  안 본 사이에 되게 말랐다."

" 그래? 이런저런 일로 힘들고 회사일도 잘 안 풀려서.."



사실 이준은 수석으로 로스쿨을 합격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하루에만 수십 건의 사건들이라 과로는 일상이었고 밥 먹는 것도 귀찮아 거르다 보니 연애할 때보다 더 말라있던 것이었다.


이준은 변호사로서 일이 많았고 지안은 광고 디자인 업계에 취직해 이리저리 구르며 겨우 인턴을 벗어난 터라 둘 다

서로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미안해"




이준이 갑자기 사과를 했다.



" 뭐를?"

" 헤어질 때 했던 말.. 사랑하는 게 힘들다고 그만하고 싶다고 했던 말.."


"....."



" 오빠만 잘못한 거 아니잖아.. 어찌 보면 나도 잘못한 거야 서로 타이밍을 못 잡은 거지"



"... 응.."

그리고는 서로의 허전함 속에 잠도 제대로 못 잔 건지 연애할 때보다 더 초췌해진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 잠깐 자자"



이준은 누워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지안은 살포시 손을 올렸다.



" 마지막으로  한 번만?"


" 그래"

지안은 익숙한 품 안에 몸을 기댔다.  고요히 들려오는 이준의 숨소리
진짜로 자는가 싶어서 불러봤다. 몇 번의 대답이 없아서 자는 줄 알았다.



그때 카메라에서 이준이 지안을 가리고 지안에게 짧게 키스했다.  이들은 너무 편하게 헤어져서 아직 미련이 남은 커플


데이트가 끝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온 지안과 이준. 이준은 자기 방으로 갔고
지안은 다른 참가자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생각에 잠긴 채로
그때 지안보다 두 살 많은 여자 참가자가 물었다.



" 뭔 일 있지?"

조금 친해진 터라 다들 말을 놓아서 편하게 대답했다.

" 언니 있잖아요... 오늘 데이트를 했는데.."

" 응 별로였어?"


" 아니.. 그 오빠가 사과를 하더라고.. 그래서 마음이 복잡해"


" 너네는 아직 연애를 다 해본 게 아니네"



" 그게 무슨 뜻이야?"


그 언니가 말했다. 사랑은 서로 붙잡고 놓고 매달려보고 울고불고 싸우고 지친 권태기 가지고 깨지고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게 사랑이라고 말이다. 그에 비해 너무 순탄하게 흘러가 더더욱 그랬지 않았나 싶다고.


밤늦을 무렵, 지안에게서 문자가 한통 날아왔다.


X와의 추억이 담겨있는 방, 관람을 원하신다면 신청함이라고 남겨주세요.



이준도 똑같은 문자가 왔고 두 사람은 참여함이라고 답했다.


-추억의 방 (지안)

첫 고백할 때의 대사와 그동안 100일 1년 기념선뮬들 그리고 끝엔 헤어질 때 했던 말
마지막으로 지안이 듣게 된 이준의 인터뷰내용.




아마 그녀는 저 때문에 힘들었을 거예요.  맞선보라는 부모님과 늦어지는 재판준비로 인해 밤샘이 많아졌고 그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날이 점점 줄었어요 게다가 집안의 위기가 크게 닥치자 살아가는 거 조차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에게 소홀히 했고 사랑에 지쳤다고 말을 해버렸어요 아직도 그 말을 후회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 연애할 때보다 여기 와서 더 많은 눈물을 흘라는 듯한 그에 지안은  펑펑 울었다. 그리고 놓아져 있는 분홍색 봉투
손을 떨며 봉투를 열었다. 거기엔 유지안, 사랑해라고 적혀있었다.


추억의 방 (이준)


물건들을 보다 보니 연애할 땐 몰랐는데 자신이 준 선물들을 하나씩 다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선후배였을 때부터 자주 갔던 떡볶이집 쿠폰까지
그 애 답다는 생각이 든 이준이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그녀의 인터뷰 영상.



그 어리고 사랑도 몰랐던 나이 열여덞에 처음 두근거림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이에요 어찌 보면 인생의 삼분의 일을 그 오빠랑 살아왔잖아요 그때 무렵 그 아이는 로스쿨을 가겠다고 알바를 참 많이 뛰었고 그 돈으로 저한테 선물도 줬었어요 본인이 돈이 어디 있다고.. 그러다가  그 오빠군대도 기다려 주고 다시 사랑할 거라 했는데  부모님이 보수적이다 보니   가끔 내려 가도 무언의 압박을 계속해서 줘서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리고 결국 이별을 맞이했어요
둘 다 공허함이 크죠..

이준은 하나씩 추억의 공간을 둘러보았다. 처음에 사귈 때 내뱉었던 대사부터 이별까지의 여정을 바라보면서 잘 울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이준은 숨죽이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마지막 지안의 편지. 지안의 편지답게 분홍색 하트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하나의 문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나는 우리가 사랑을 시작한 순간부터 하루하루 행복했어라고.



시청자들은 이 두 사람을 보면서 과몰입을 많이 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선택을 하지 않아 갈길 가거나 재결합을 하거나 두 가지 방법 밖엔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대부분은 재결합을 응원했다. 다른 참가자들도 이 두 사람은 끼어들기 힘들었다. 서로 밖에 없다는 걸 알았으니깐.





마지막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중요한 결정을 하는 날이다


X를 선택하는 시간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긴 이준을 보면서 지안은 다가가 옆에 앉았다.


" 오빤.. 고른 사람 있어?"


" 아니 나는 안 고를 거야"

답을 듣고 놀라긴 했지만 거짓말인 거 같지 않았다. 지안은 그의 진실된 눈빛을 아니깐.

이준은 반대로 지안에게 질문했다.

" 너는 누구 골랐어?"


"...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잠시뒤 마지막 순간이 진짜 다가왔다. 지안은 조용히 이준을 불렀다.




" 오빠.. 사랑은 부딪혀 보고 매달려도 보는 거래"


"...."

" 내가 한 번만 더 붙잡아도 될까.. 매달려도 받아줄 거야?"



그 말을 들은 이준은 밝게 웃어주면서 지안의 손을 잡았다.  

이준은 지안에게 말했다.



" 내가 너에게 야자 끝나고 집 가는 길에 했던 고백 기억나?"



" 당연하지 오빠"


".... 지안아 나는 내가 니 인생의 빛이 되어주고 싶은 만큼 좋아해.."



그 말을 끝으로 화면엔 이준과 지안이  맺어졌음이 알려졌다.


" 다시 사랑하자 지안아"


" 응!!"

모두가 예상한 결과였고 모두가 응원했다.
앞으로도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걸어 나가려는 커플. 마지막 장면에는 그들의 데이트 사진들이 올라왔고 시청자들은 그 두 사람을 응원했다.



첫날 고백한 커다란 벚꽃나무 아래에서  두 사람은 사랑을 약속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2년 후 근황에서는   지안과 이준의 결혼 소식이 들려온다.

앞으로는 영원히 변하지 말고 사랑하기를...



빛났던 그날, 우리에게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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