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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순 Nov 13. 2023

불씨의 내용

                                                 


전화 속에는 아날로그 땅 알래스카가 있다 

설움에 푹푹 빠지는 시린 네 발목이 있다 

안개 속에 허물을 벗던 애인들 모두 떠나고 

너는 약도도 없이 전화기만 귀에 대고 알래스카로 간다    

  

맛있게 떠먹을 새벽도 준비하지 못한 채 

한숨의 무게에 눌려 도피처로 숨어드는 최후의 난민 

    

이번 남자도 정착이 아냐, 

점을 치는 보살이 진지하게 방울을 흔들며 

모자이크 처리한 너의 치부를 호명할 때 

네가 만난 남자들은 허공이 넘실대는 등판을 자꾸 보여준다     


숨을 곳이 고작 외로운 누빔점 알래스카밖에 없구나 

이 세상 모든 행운은 네가 기댄 벽을 무너뜨리네      


달콤하고 비장한 말씀을 굴리던 신들이 잠들러 간 사이 

슬픔의 정령만 깨어 있는 불면의 땅     


미래가 추운 두 아이를 매달고

무모한 소똥구리처럼 고장 난 희망을 애써 굴릴 때  

   

뿔이 고운 사슴들이 계약서도 없이 뜨거운 표정이다

따뜻한 화로가 놓여 있는 이글루를 향해    

 

폭설 속을 뚫는 불청객들의 풍경

파산선고 기초생활수급 질병종합세트의 컴컴한 길

     

온 계절 울퉁불퉁 넘치는 어둠 노려보며 

너는 끈을 놓지 않고 밤새 썰매를 몬다      


그걸 놓으면 화로의 용도를 미처 알기도 전에 

하나밖에 없는 불씨를 잃어버릴지 모르잖니     

 

견고해서 허물어지는 눈물이 썰매를 이끌고 간다 

불현듯, 어둠을 노려보다가 우리가 소리친다

저기, 조그만 저 빛, 저거, 아직 꺼지지 않은 저것, 맞지!  

   

이제, 검은 혀를 매단 

불한당 같은 어둠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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