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놓을 수 없는 존재
나는 연필을 참 좋아한다. 중학생 때부터 펜을 주로 쓰게 되면서 잘 사용하지 않다가 일을 시작하고 다시 연필을 찾아 쓰고 있다.
연필은 펜처럼 자동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닳으면 수시로 깎아줘야 하고 바닥에 떨어뜨리면 십중팔구 심이 부러지기 때문에 사용하기 불편하다. 그에 반해 펜은 종이에 대면 바로 나오고 늘 일정한 굵기로 쓸 수 있어 연필보다 편리하다. 그래서 연필은 밑그림을 그리고 스케치를 하는 미술 시간에만 사용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펜만큼 연필을 찾는다. 연필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매력을 알게 된 이후 늘 곁에 두게 되었다. 밖에 나갈 때도 펜 외에 연필을 따로 챙긴다. 연필은 여러 번 써도 잘 닳지 않아 실용적이다. 실제로 나는 연필 대여섯 자루로 몇 년을 쓰고 있다. 나무와 흑심으로만 이루어진 심플함도 마음에 든다. 그리고 연필은 언제든 지우고 되돌릴 수 있다. 그래서 색 펜이 있더라도 연필로 체크한다. 또한 연필 특유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촉감이 좋고 힘을 주는 정도에 따라 굵기나 진하기를 조절할 수 있어 유용하다. 색도 까만 검정색이 아닌 부드러운 회색이라 좋다. 연필을 쓰다보면 번져서 손 옆이 새까많게 묻기도 하고 금세 심이 뭉퉁해지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 단점을 상쇄시킬만큼 연필이 좋다. 심지어 눈썹 화장을 할 때 쓰는 도구도 붓펜형, 오토형이 있지만 직접 깎아서 쓰는 연필 형태를 선호한다.
거기다 나는 연필을 깎는 것을 좋아한다. 직접 칼로 깎는다. 연필깎이로 깎는 것보다 오래 걸리고 연필껍질들이 날라다녀서 번거롭지만 직접 깎는 느낌이 좋아 포기할 수 없다. 연필을 깎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잡생각이 사라지고 연필에만 집중할 정도로 재미있다. 연필 깎는 것이 너무 좋아 여유 있게 더 깎아둘까 싶지만 있는 것부터 쓰자고 늘 나를 타이른다. 혹시 주위에 연필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연필 깎아 드릴까요?"
연필의 매력은 또 있다. 쓰면 쓸수록 시간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길이도 작아지지만 연필 겉에 손톱자국도 생기고 로고가 지워져 희미해지기도 한다. 끝에 달린 지우개는 각진 모양에서 점점 둥글게 변해간다. 새 연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차이가 난다. 닳은 연필은 더 매력적이다. 쓰다가 몽땅 연필이 되면 그냥 두기만 해도 멋스럽다. 제각기 다르게 변해버린 연필들을 보면 마치 작품을 보는 것 같이 감탄스럽다. 어떻게 해도 예뻐보이니 나는 정말로 연필을 사랑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