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고 피워낼 내가 있는 한,
나의 꿈은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 꿈을 잃어버린 나를 위로한
내 마음의 한 마디 -
불혹을 넘긴 엄마에게 아홉 살 인생이 물었다.
"엄마, 엄마는 꿈이 뭐예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응? 엄마의 꿈?" 다시 되물었다. 아이도 한번 더 묻는다. "네~ 엄마는 뭐가 되고 싶어요~?"
아이의 목소리는 음계 위를 뛰어다니듯 경쾌했다. 이번엔 엄마도 아이에게 물었다.
"글쎄~? 엄마가 꿈을 꿀 수 있을까? 엄마가 뭐가 되면 좋겠어~?"
엄마의 목소리는 가을비 무게에 늘어진 나무 한 잎처럼 무거웠다.
둘째를 출산하고 첫 돌이 되기 전이었다. 밀려오는 무력감을 벗어내고 싶어 무작정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무쓸모 같은 인생의 한계점 어딘가에서 헤매며 부지런히 쓸모 있는 집밥 일상을 보내고 있던 때.
그저 그런 육아 일상의 하루 중, 어느 저녁.
아홉 살이던 첫째가 엄마의 그림을 따라 그리다 오고 간 짧은 대화였다.
묻힌 내 꿈을 다시 꺼내보았다. 1~20대 푸른 청춘에 꿈꾸던 그 꿈을 다시 꿀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낼 수 있을까? 몇 번이고 묻고 또 되물었다. 하지만 내 대답은 '다시 꿀 수도 살아낼 수도 없어..'였다.
내가 바라던 그 자리에 서기엔 이제 제법 적지 않은 나이를 먹었다. 나이만 먹었나.. 하늘이 내 인생에 숨겨둔 보물들을 이제야 찾았다. 아직은 그 보물들을 지켜줘야 하는 내 역할의 비중이 크다.
하루는 동력 없는 인생 나룻배에 걸터앉아 의기소침했고, 우울했다. 또 하루는 바람결에 나붓거리다 후드득 떨어지는 낙엽처럼 힘이 없고, 의욕도 없었다. 그리고 어떤 하루는 이러려고 살아왔나 감정 광풍에 휘말려 화가 나고, 속이 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어떤 감정의 롤러코스터도 멈췄다. 주어진 계절이 입혀주는 옷을 그냥 입기로 했다.
몇 년 전이다.
"엄마~ 엄마는 꿈이 뭐였어~?" 30대였던 내가 환갑을 앞둔 친정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피아노도 배우고 싶었고 티브이 나오는 사람들 보면 노래도 잘하고 싶었지"
엄마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으셨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무심코 지나온 세월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한 겨울, 한 달이라도.. 좀 더 젊었던 엄마의 계절에 교회당 피아노 앞에라도 함께 앉아 드릴걸.. 딱딱한 굳은살 조금이라도 덜 무거울 때 음계라도 알려드릴걸.. (오래전 어느 날, 엄마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하셨었다. 그래서 내가 가르쳐 드리겠다 했는데 엄마는 손서레를 치며 그냥 하는 소리라고 넘기셨다. 이유는 못 생긴 손가락이었다. 가녀린 우리 엄마 손가락은 어느샌가 웬 남자 손가락이 되어 버렸다. 반지 하나를 맞추려 치수를 재어봐도 여자 손가락이 맞냐고 의심할 정도로 퉁퉁 부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싫다고 하셨다. 손가락 못 생겨서 창피하다고.....)
우리 엄마 목소리, 참 곱고 아름답다. 배워 익히고 다듬어질 수 있었다면 어느 중창단 알토 한 파트는 예쁘게 부르실 수 있을 만큼^^;;
나는 엄마 목소리를 닮았다. 그리고 시키면 크게 빼지 않고 곧잘 무대에 올랐을 만큼 아빠의 담대함을 닮았다.
아~ 옛날이여~~~
이제는 서랍 속에 박혀버린 낡은 상장, 빛바랜 사진첩에서나 볼 수 있지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고 꽤 잘했었다.
하지만, 엄마가 생계의 현실에 꿈을 부수고 엄마의 자리를 지켰던 것처럼
나 역시, 꿈꿀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빛나던 나의 꿈을 묻어둔 채 주어진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열정의 높이는 다를 수 있다. 그리고 품은 꿈의 넓이는 그 폭이 좁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불혹이 넘은 오늘, 나의 일상에서 내일의 꿈을 꾸고 오늘의 꿈을 살아낸다.
센스 없는 똥손에 수익화의 결실은 없지만 손그림을 그리고 폰드로잉을 하며 나만의 캐릭터를 찾아가는 중이다.(재작년 이맘때 나는 드로잉에 기본도 몰랐다. 그랬던 내가 따라 그리며 나의 이야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비록 짧은 글이지만 꾸준히 글을 쓰며 열 번이 넘는 공저책을 냈다. 마음을 보듬으며 걸음을 밀어주는 멋진 작가 언니 복을 얻어^^ 브런치스토리에도 작가로 글을 쓰고 있다.
엄마로 살아가느라 존재와 인생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엄마들을 격려하며 소통하게 될 날을 꿈 꾸며 강의를 듣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나만 몰랐던 내 재능? 은사? 하나를 찾았다. 바로 '경청'이다. 귀를 기울여 상대방의 마음을 듣는다. 그걸 내가 참 잘하고 있더라. 그래서 힘들다고 하면 함께 밥을 먹는다. 그리고 말의 온도를 높여 물어본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어주니 상대방의 마음과 일상의 온도가 올라간다.
나는 오늘.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당신은 오늘,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꿈이 빛나는 건, 꿈꾸는 내가 있기 때문이고
꿈이 아름다운 건, 꿈을 피워내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꿈을 꾸자.
그리고 꿈을 살아내자.
꿈꾸고 피워낼 내가 있는 한,
나의 꿈은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