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있어서
- 대화 도중 신랑이 내게 건넨 말 -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이 몇 명인가.. 많으면 잘 살았고, 적으면 잘못 살았나..' 싶게 만드는 수치화 세상.
세상 물살을 거슬러 생각해 본다. '내 곁에 남은 사람이 누구지~?, 지금, 오늘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내년이면 20년째 곁을 지켜주고 있는 내 사람, 우리 신랑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아직, 하얀 겨울 찬바람이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정오의 햇살이 봄을 앞당기고 있던 2005년 2월. 신입생 오티에서 처음 만났다.
해마다 신입생 오티는 2월 마지막주에 했는데 그 해는 유난히 더 추웠다. 초겨울 얇은 콤비 재킷에 청바지. 오기 싫은 곳을 억지로 왔다는 걸 누가 봐도 알아차릴 수 있었던 복장이었다.
2박 3일. 짧은 시간이었지만, 추운 날씨에 얇은 옷차림의 그가 참 신경이 쓰였다.(물론. 그 당시 내게는 우리 조의 신입생 대부분을 각자의 다른 이유로 다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 선배들에게 옷을 빌려 주기도 했고, 말이 없는 그가 적응 못할까.. 더 말을 걸기도 했다.
입학 후에도 종종 마주치면 꼭 안부를 물었고,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했다. 그러다 종강을 앞둔 6월, 당시 한창 유행했던 가수 버즈의 '겁쟁이' 노래로 SMS 고백을 받았다. 그 6월이 우리의 시작이 되었고, 그 후로 만 19년째 만나는 중이다.
19년 동안, 1년 기본 서너 번 정도. 변함없이 해주는 한 마디가 있다.
당신이 있어서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진짜.
당신이 없었으면 못 했을 거야
인생이 늘 내 뜻대로 되던가. 때로는 생각처럼 안 되는 일도 많고, 내 마음과 다르게 불편해지는 일들도 많고, 생각보다 더 지독하게 들러붙는 일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 신랑은 꼭 한 번씩 내게 이야기한다. "당신이 있어서 견디고 있는 거라고.."
그러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더 큰 날개를 달고 더 멋진 인생을 살았을 거다'라고 멋쩍은 반응으로 지나치곤 했다.
올 가을.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에 서 있는 우리 신랑.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같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 몇 주 전에도 보통의 어느 날처럼 대화를 주고받던 중이었다. 지나온 날들 중 하루처럼 '당신이 있어서 가능했다. 진짜다' 19년 동안 비슷하게 들어왔던 별다를 것 없는 신랑의 한 마디가 유난히 마음속에 깊은 파동을 일으켰다.
나는, 무엇을 해주어야지만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며 살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날 신랑의 짧은 한 마디에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내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는 신랑의 꽉 찬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연애 7년 시절과 달리, 결혼 후 유난히 신랑에게 기준이 엄격했고, 말의 온도가 참 낮았다. 그 때문에 서운하고 섭섭한 순간도 참 많았을 텐데.. 자존심 상하는 날들까지 묵직하게 집어삼키며 아내를 정말 끔찍이 사랑해 온 내 사람이다. 많은 미사여구로 화려한 문장이 아니어도 고마움의 진심과 사랑함의 전심이 헤아려진 순간이었다.
참 많은 순간, 오늘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었다. 당연함의 1순위는 가족. 그중에서도 배우자였다. 그 당연함에 때로는 감정이 태도가 되어 무례한 날도 있었을 테지. 나 자신도 당연함에 속아 익숙하게 뻔뻔해진 날도 있었겠다. 그런데 내 사람은 19년 전에도, 19년 동안에도, 19년째인 오늘까지도 변함이 없다. 그저 나라는 존재 자체. 내가 있어서 고마워한다. 내가 있어서 오늘을 견딜 수 있단다.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나라는 존재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고 말한다.
오늘도 아무것도 아닌 나를, 내 존재를.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며, 변함없이 사랑해 주는 내 사람, 참 고맙다.
불꽃같은 사랑은 식는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불꽃이 되어주면 된다. 그리고 서로의 불꽃을 피워주면 된다. 당연함에 무례함을 빼고, 익숙함에 존중을 더하면서.
부부에게만 그러할까? 가족, 직장, 이웃. 모든 인연이 그렇지 않을까?
무엇을 해주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내가 해주는 무엇 때문이 아니라 내 존재의 이유로 힘을 얻고 있을 테니까.
받은 대로 다 갚아주려 너무 힘쓰지 않아도 괜찮다.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는 사람들, 그 존재의 가치로 받은 사랑이 나를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될 테니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어떠함이 아니라
당신이 있다는 존재만으로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은, 살아갈 이유가 충분합니다.'
이 글을 읽어준 당신이 있어서 글 속에 내가 살고 있습니다. 나를 살게 해주는 당신,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