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이다.
아주 오랜만에 주말 아침에 늦잠을 잤다. 일요일이고 딱히 할 일도 없는 그런 날이었다.
6시면 깨는 딸아이는 잠시 내 방 문을 열고 엄마가 있나 없나 확인하고 돌아갔다.
나는 잠귀가 밝은 편이라 어디 방문이 열리고 닫히는지 무얼 하고 있는지 다 들린다.
치유농업사 교육이 모두 끝이 났다. 26일 모이고사를 치고 수료증만 받아오면 시험칠 자격 준비가
된 것이다. 이제 나머지는 공부를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된다.
아는데 나태함이 밀려온다. 계속 읽고 또 읽고 큰 소리로 말해 보기도 했다.
써서 외워 보기도 했는데 엄지와 중지가 너무 아프다. 학생이었을 때는 굳은살이 박여있어서 늘 움푹 파인 것 같은 형태였는데 부드러운 살이 되어있었다.
어떤 게 좋은 방식이었는지 모르겠다. 생각 날듯 말 듯 자꾸 까먹어서 다시 보고 또 보고 진도가 나갈지 않아서 짜증이 계속 났다.
녹음 파일을 계속 들었던 법률은 그나마 할만하고 식물 재배학은 농업이 주업이다 보니 유리하다.
그래도 갈길이 구만리다. 공부가 안 될 때는 녹음파일을 듣다가 잠이 든다.
치유농업사 마지막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시원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갑자기 기분 나쁘게 말하는 사람 덕분에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사람들이 농장에 놀러 오고 싶다고 말을 했었다. 초대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지만 초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같이 실습도 가고 하면서 불편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았기 때문에 내 상식으로는 그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의 형태가 있겠지만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었다.
열대과일을 취미로 키우기 시작하면서 환경 조건이 좋은 편이라서 잘 자라는 모습들을 사진과 글로 동호회에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설명을 해주기도 했었다.
그게 시기와 질투를 유발 할 줄은 몰랐다. 농장에 구경을 오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업이 아닌 취미로 시간을 많이 뺏길 수 없어 남편의 눈치를 많이 봐야 했다.
오시는 분들의 주목적은 구경이 아니라 얻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든 가져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늘려 놓은 식물들 앞에서 "우와 많네요 하나 주면 되겠네요"라든가, "가지가 많이 자라니까 늘려서 사람들 나눠 주면 되겠네. 일도 아니잖아."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어떤 날은 하우스 위치를 알고 훔쳐가는 일도 생겼다. 식물 번식 날짜와 화분 번호를 적어 두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다. 주위에서도 심심하면 들락 거려서 앞뒤 문을 잠글 수밖에 없었다.
꽃을 좋아해서 여러 가지 꽃들도 많았는데 다들 나를 보면 똑같은 말이다.
"이쁜 꽃 있으면 하나만 번식해줘 봐"라든가 "니만 예쁜 꽃보지 말고 구경을 시켜줘 봐라"한다.
구경 시켜 주면 온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별거 없더구먼 꽁꽁 싸매 놓는다고 말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그게 돈이 되나?"라고 묻는다. 과일을 키워서 먹고 싶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정원처럼 가꾼다고 했더니 돈 안 되는 짓 한다고 훈계를 늘어놓고 갔다.
특히 농한기에는 하우스 밖에서 구경하느라 시끄러웠다. 즐거웠던 나의 하우스 정원이 점차 스트레스처럼 느껴지고 사람들이 싫었다. 친한 척하던 아주머니는 친구에게 자기가 꽃을 구해 주기로 했다며 맡겨 놓은 것처럼 내놓으라고도 했었다. 처음으로 세상에서 미친년은 나다를 보여주었다. 친절하면 호구로 보는 사람들이
참 싫었다. 정성스럽게 가꾸던 하우스와 작물이 심긴 하우스를 모두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식물들을 옮겨오면서 절반이 죽어버렸다. 많이 속상했지만 그 사람들을 다시 보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그런데 다시 그런 부류의 사람이 눈에 보였다. 사실 처음부터 느낌이 별로라 피하고 있었는데 자꾸 친한 척을 해서 건성으로 대하고 있었다. 꽃 이름을 다 아는 것도 아닌데 자꾸 사진을 가져와서 꽃 이름을 맞혀보라며
테스트를 했고 열대과일 전문이라서 잘 모른다는 말을 계속했었다.
앞자리 뒷자리 분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불쑥 껴들어 당황시키거나 안 좋은 말들로 기분을 상하게 하기도 했다. 어느 날 내가 피한다는 것을 느꼈는지 "oo샘, 내가 오니까 피하네"라는 말도 했다.
알면 그냥 가시지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다시 볼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좋게 넘어갔다.
마지막 날 내게 했던 말 때문에 더 싫어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자꾸 오고 싶다고 해서 지금은 시험공부해야 하니까 합격하고 초대하겠다고 했다.
합격하신 분들만 오세요라고 말을 했었다. 열심히 해서 합격하고 편하게 보자는 이야기였지만 나름 가시를 담아서 한 말이긴 하다.
점심을 먹으려고 모인 자리에 불편한 사람이 "나는 농장에 물어서 아무 데나 찾아갈 거야."라는 말을 툭 던졌다. 같은 지역에 살아서 오다가다 마주칠 수도 있다. 작은 아이 학교 근처에 살기 때문이다.
그저 웃고 고만 있었다. 그랬더니 "정말 합격해야 구경시켜 주나?"라고 되물었다.
"네, 합격하셔야만 출입이 되세요."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아무 때나 갈 거야. 문 열고 들어가면 되지."
라는 어이없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문 잠겨 있어서 안 열려요." 했더니 "찾아갔는데도 안 열어 줄 거라고?"
라면 큰 소리로 사람들 들으라고 말을 했다.
"선생님, 제가 합격할 동기를 드리는 거잖아요. 왜 합격할 생각은 안 하시고 떨어질 생각을 하세요?" 라며 이야기는 마무리되었지만 화가 나서 점심 먹은 게 체할 것 같았다.
오늘이 마지막이다라는 심정으로 겨우 버틴 것 같다. 자기 밭에 심은 천혜향 나무가 접목 부위가 죽고 대목만 살 았는데 레몬나무를 구해서 접목해야 하는데 자꾸 이야기하는 걸 보면 나보고 해달라는 말이다.
"구해서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하고 공부를 하는 척했다.
치유농업사로 치유농장을 운영하다 보면 더 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의 직업의 특성 때문인지 뭘 자꾸 설명하라고 하고 자료를 주었음에도 내 설명을 듣겠다며 안 봤다고 아주 당당히 말을 해서 많이 놀라기도 했었다. 단톡방에서 그 사람 글이 올라오면 얼른 닫아 버렸다.
사람이 자꾸 싫어지는 경험이 늘어나고 있다.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지만 너무 힘들다.
유독 피곤함을 더 느꼈던 마지막 날이었다.
엄마 같이 따뜻했던 선생님도 계셔서 그나마 위안을 받았던 것 같다.
3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마무리되어서 시원 섭섭하다.
함께 했던 선생님들께 고마웠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끝나고도 몇몇 분들은 계속 연락을 하고 싶기도 하다.
오늘도 나를 만나러 와줘서 고마워.
사람을 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네..
그래도 좋은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