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by 빛의투영

농경 휴업기간이다. 나의 휴식기라고 할 수 있는 두 달이라는 시간.

마냥 논다고도 할 수 없는 이 시간이 더 바쁘다. 10년 가까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가족과 지인들도 알고 있다. 전화를 해서는 "뭐 해? 바쁜 일 없지?"로 시작된다.

일주일을 꼬박 앓고 나서는 몸의 회복이 더디지만 점차 돌아오고 있다. 식욕이 젤 먼저 사라지더니 먹고살라고 먹고 싶은 게 생긴다. 어제는 아이들을 학교에 등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쪽으로 좀 와. 점적 호수 펴게."

작물이 없다고 해도 틈틈이 보수도 해야 되고 녹비 작물을 심어서 연작 피해도 줄여야 한다.

올해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다며 점적 호수를 깔아서 수당그라스를 키워 보겠단다.

최소한 하루 전에 뭘 할지 말해 달라고 했는데 맨날 직전에 뭘 해야 된다고 말을 하니 나의 하루치 계획은

지켜지지 못했다.

"왜 내가 하는 말은 귓등으로 들어? 그게 그렇게 어려워? "

날도 더운데 듣는 사람도 싫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 않다.

일주일에 이틀 금, 토 경상대에서 치유농업사 강의를 들으러 가는 날은 남편이 작은 아이를 학원에서 데려오는데 늘 내 몫이었기 때문에 까먹기 일쑤였다.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두기 때문에 쉬는 시간마다 수시로 확인을 해야 했다. 한 시간 전에 미리 전화를 해두었지만 다른 볼 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학원에서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간 적도 몇 번 있었다.


12일이면 강의 듣는 것도 끝이 난다. 26일에는 실전 대비 모의고사가 있을 예정이다.

무슨 OMR 카드 사용 연습도 하고 시험에서 실수하지 않게 대비한다고 했다. 아무리 신생 자격증이라도 그렇지 컴퓨터 사인펜으로 마킹이라니. 수능을 다시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수업 일수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서 부족하지 않고 실습 평가도 나름 괜찮고 모의고사 점수를 합해서 이수 수료증을 발급해 준다고 했다. 시험 접수를 하려면 이수증을 첨부해야 한다.

찍은 지 6개월이 넘지 않은 증명사진도 준비하고 이 번 연도부터는 원서 접수비가 생긴단다.

모의고사 보려면 2주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공부가 안된다.

주위에서 뭔가를 부탁하기도 하고 공부하려고 마음먹으면 꼭 일이 생긴다.

남편은 뭔가를 부탁하면 대답은 잘하면서 실행하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의 우선순위가 있다 보니 지금 당장 급하지 않아서 밀리고 밀리다 보면 엄마도, 어머니도 나한테 전화를 한다.

민원 해결사가 되는 타이밍이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선에서 준비를 해두고 남편만 데리고 가면 된다.

뭐든 잘 고치는 남편은 참 바쁘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방충망 교체 작업과 마당 수전보수 작업이 남았다.

곧 엄마의 독촉이 올 것 같다.


작은 아이의 언어재활 피드백 시간에 선생님께서 조언을 구하셨다. 지적 장애인이고 4학년인데 지금도 배변 훈련이 되겠냐고 말이다. 간단한 지시사항을 이수 할 수 있고 의사소통도 안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고집이 세고 기저귀를 하지 않으려고 해서 외출을 잘하지 않는다고.

"왜 안 돼요? 되죠"라는 말로 시작을 했다. 선생님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걱정만 하고 있으면 해결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그러나 내가 힘들어지는 것이 싫고 안 될 거라는 생각에 고민만 할 뿐이다.

시행착오는 늘 일어나고 있고 이 방법이 안되면 다른 방법으로 바꾸면 된다. 시간을 두고 꾸준히만 해 준다면

바뀔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아이도 상황의 변화를 안다. 지레 겁먹고 외출을 자제하거나 옷에 실수한 후 엄마의 반응이 무서우면 나쁜 기억으로 남는다.

장애아이를 키우는 것에는 반드시 목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없는 곳에서나 성인이 되었을 때 스스로

기본적인 것들은 해내야 한다. 반복된 훈련으로 몸에 익혀만 둔다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다.

물론 이보다 더 힘든 경우도 많지만 경증이나 지적, 자폐를 가진 아이들에게는 꼭 필요하다.

부모가 포기를 한다면 그 아이는 어느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스스로 살아갈 기회를 박탈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 아이는 자폐 2급 중증 장애를 가졌다. 겉보기에는 경증으로 보이기도 한다.

인지, 신체 기능, 생활의 전반적인 것들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무한 반복하며 가르친 결과 지금은 편하게 여행하고 체험 활동들을 하고 있다.

요즘 힘든 엄마들의 전화를 가끔 받는데 아이를 위해 애쓰는 만큼 좋은 결과가 돌아오니까 지금 당장 눈앞에

일만 생각하라고 다독여 준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 휴식도 가지며 자신을 위한 시간도 가지라고 말을 해준다.

"너는 잘하고 있어. "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었다. 남편이 가끔 해주기도 했고 힘을 주는 말이기도 했다.


전화도 받고 민원 해결도 하고 공부는 언제 하지? 1차 시험 59일 남았는데 식물재배학 말고는 생각나는 것이 없다. 1~3권 내용이 너무 광범위하다. 과락이 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동물 파트는 뭐 수의사 시험 볼 거냐고. 겨우 두 문제 나온다면서 무슨 100페이지냐고.

아이고 머리야. 두통이 온다. 벌써 노안이 오나 책을 좀 보면 눈이 침침해진다.

나 잘할 수 있을까?


오늘도 나를 만나러 와줘서 고마워.

내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걸까?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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