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이 미치게 한다.
7월의 마지막 주. 며칠도 남지 않은 달력을 보면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달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메마른 대지를 적셔 준다고 고마워했던 비는 거기까지가 좋았다.
이놈의 날씨는 푹 삶다가 물에 퐁당 담그다 이제 또 삶는 중이다.
농부는 날씨에 울고 웃는다. 겨울 작기 때 비가 많이 내려 망쳐버린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눈비가 많이 안 오기로 유명했는데 점차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몇 년에 한 번씩 폭설이나 비가 많이 오긴 했었다.
올해는 단 몇 시간 만에 내린 비가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늘에 구멍이 났다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게 했었다. 계속되는 안내 문자에 불안 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남편의 다급한 전화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야 했었다. 바닥에 있는 전기 제품은 모두 테이블 위로 올려두고 전기 코드는 냉장고만 빼고 다 뽑았다. 아이들에게도 중요한 것만 챙겨 나오면서 다시 집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차를 타고 달리다 보니 하천 제방이 터져서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마치 거친 물살의 폭포 같았다.
논이고 밭이고 하우스까지 잠겨 농노는 있었던가 싶었다.
저 속도면 우리 집도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친정집에서의 하루 밤은 거의 뜬눈으로 보냈다.
이른 새벽 남편의 전화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행히도 우리 집과 하우스는 침수되지 않았다고 했다.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사이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다. 사촌 오빠의 집이 완전 침수 되었다고 했다.
하우스도 우리 하우스 빼고 모두 침수가 되어 날 리가 난 상태라 마냥 좋아라 할 수도 없었다.
하천의 제방은 한창 공사 중이었고 아무런 대비도 되지 않았고 공사 중에 문제도 있었던 것 같다.
현장 소장은 도망가 얼굴도 보지 못했고 직원 분이 오셔서 이건 수해로 일어난 일이니 각자 들어 있는 보험으로 해결하라는 식으로 말을 했단다.
그런데 남편과 남편의 친구는 각각 건설업과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했던 사람으로 현장 상황을 잘 알고 있어서
요목조목 따지니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비가 많이 왔어도 물 담은 적이 없던 곳이라서 사람들은 많이 놀라고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사촌오빠는 결혼식을 위해서 태국으로 출국을 한 상태였다. 집과 하우스가 모두 침수를 당해 있지만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편이 대신 나서서 일을 처리해주고 있었다. 침수를 당한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다가 남편과 남편 친구가
주도하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맞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사촌 오빠이고 다음으로 유리온실인 파프리카 농장이었다.
전기차도 한대 물에 잠겨 폐차를 해야 했다. 면사무소에서 모여 시청 공무원들과 대책회의를 진행하였으나
책임자가 빠져 버린 회의는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농민들이 잘 모른다고 빠져나갈 생각으로 온 것 같았다. 자기소개를 할 때 "토목공사 15년을 한 000입니다.
인테리어와 현장 소장을 20년 한 000입니다."로 시작하자 공무원들 표정이 싸늘하게 변해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고 했다. 남편 말로는 간을 보러 온 것 같다고 했다.
다음번에는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데려오라고 말하고 회의가 끝났다고 했다.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든다. 보험회사에서도 다녀 가지 않았는데 폐가전을 수거하러 오겠다는
전화가 왔다고 했다. 우리는 미리 모든 동영상을 찍어 둔 상태라서 준비는 끝났다고 볼 수도 있다.
남편은 보상받을 것이 없지만 주위에 이웃 형님들과 잘 지내고 도움을 주고받기 때문에 총대를 맺다고도
볼 수 있다. 사촌오빠가 자리를 비운 상황이기도 하고 수시로 전화해서 상황을 알려주고 있지만 빨리 돌아와야 했다. 가족들이 돌아와도 걱정이다.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손을 대지도 못 한다.
보상은 빨리 이루 어지 않을 것 같다. 질질 끌어가는 것이 눈에 보이니까.
이 번 달에는 아버님, 어머님 생신이 있는 달이라서 마음도 분주했다.
치유숲에 가려고 예약을 했었는데 19일에 하필 많은 비가 내려 취소를 해야 했다. 대피 소동도 있었고
주위가 침수가 되어 울상이 되어 버린 사람들 속에 피해가 없는 우리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뤄 두었던 치유숲을 어머님 생신에야 갈 수 있었다. 큰 아이는 방학이었고 작은 아이는 30일에 방학을
한다. 작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통영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나들이에 잠시나마 내려놓고 이야기를 하며 산책을 했다. 편백톱밥을 맨발로 걷는 기분이 참 좋았다. 공기도 상쾌하고 어머님, 아버님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좋았다.
큰 아이도 나름의 방식으로 잘 즐기고 있었고 이쁨을 듬뿍 받았다. 외동이었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동생 챙기기에 바빠 잘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서 늘 미안했었다.
큰 아이가 먼저 방학을 하면 둘이서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일 년에 꼭 한편 보는 극장판 '명탐정 코난' 같이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는다. 큰 아이는 18살이지만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여름엔 늘 바다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이번엔 여자 친구가 생겨서 어떨지 잘 모르겠다.
드디어 치유농업사 양성과정 종지부를 찍었다. 모의고사 시험을 봤고 26일에 수료식을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3개월의 시간 나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모든 강의를 다 들었다.
행복했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이제는 진짜 공부를 열심해서 시험을 볼 일만 남았다.
딱 한 달 남은 상황인데 공부 잘하는 방법을 아직도 모르겠다.
열심히 보고 문제도 풀어 보고 있지만 자꾸 기억 너머로 사라진다.
오늘도 나를 만나러 와줘서 고마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에 마음이 너무 무거워.
모두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