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차곡차곡 미움을 적립 중이다.

by 빛의투영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남편에게 화가 났다. 기분을 드러 내지 않으려고 말을 적게 했다.

단답형으로 해야 할 말만 했다. 작은 아이가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언성을 높이고 싶지 않았다.

장애 아이의 특성상 큰 소리를 내거나 싸우는 것을 보면 하루 종일 기분에 영향을 줄 것 같아서 꾹꾹 누르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침대에서 빈둥거리며 누워서 유튜브를 큰 소리로 틀어 놓고 있었다.

일이 없어도 아이들이 학교 가기 전에 일어나서 출근하듯 하우스에서 모여 모닝커피와 수다를 떨곤 했었는데

오늘은 왜 저리 빈 둥 거리는지 보기가 참 싫었다.

칠 비가 내려서 그런지 트랙터 알바를 가지 않았지만 사무가 바쁘게 움직였다.

눈에 안 보이면 화가 덜 날 것 같은데

"안 나가나?" 한 마디가 도화선이 되었다. 그냥 늘 하던 대로 하지 왜 안 나가고 있는 건지.

"빨리 나가모 좋긋나?"라고 말을 했을 때 "어"라고 했다.

쫓겨나는 기분인지 화간 난 표정이다. 나도 순간 화가 울컥 올라왔다.


어제저녁에 비가 오는데 뭘 했냐고 물어왔더니 청주에 다녀왔단다.

뭔 죽통인가 하는 것을 사러 갔다 왔다고 한다. 55만 원에 싸게 샀다고 좋아했다.

건설 일을 그만 둔지가 언젠데 그게 어디에 쓸모가 있다는 건지 55만 원이 적은 돈이냐고 묻고 싶다.

뭔 기계나 장비만 보면 눈이 돌아가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정말 필요한 거냐고 물어봤다.

두루두루 잘 쓸 것 같다고 말하며 새 거가 얼마인지 아냐고 한심 한 듯 바라보는 눈 빛.

너무 꼴 보기 싫었다. 둘 곳도 없는데..


생활비 적다고 더 달라고 말할 때 얼마나 고민하고 말을 하는데 아무렇지 않게 덜렁 돈을 쓰고 오는지

속이 터진다. 아이들 학원비에 식비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물가가 얼마 올랐는지 알고는 있는지 묻고 싶다.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진짜 필요한 건지 수십 번 고민하고 담았다가 뺐다가를 하는데 참 쉬워서 좋겠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술 담배를 안 하니까 취미 생활은 이해한다. 낚시를 하러 가는데 돈이 안 들 수가 없다.

릴도 사고 가짜 미끼를 싸게 판다고 무한정 사다 모아도 배 타고 나갈 때 드는 비용까지도 그럴 수 있다.

숨 쉴 구멍이 하나쯤은 있으면 좋으니까.

뭐든 살 때 큰돈이 들면 의논은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애들 밑으로 들어가는 돈이 얼만데..

남편은 미움을 차근찬근 적립해 가는 중이다.

지나가는 말로 "당신 적립금이 많아. 늙으면 두고 보자." 했었다.

그때마다 "나만큼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라며 해맑게 웃었다.


아이들과 방학 동안 어디 좀 가자고 시간을 내라고 했더니 아르바이트해야 돼서 안된다.

겨우 시간을 맞추면 비가 오고 작은 아이의 투정은 내가 다 받아 내야 했다. 장애 아이에게 안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다음에 가자는 말로 기약 없는 약속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미안한지

남편은 모른다.

육아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떠안아왔다. 다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좋을 때도 있었으니까.

나는 오글거리는 것을 싫어하지만 꽁냥 거리는 거는 둘이 있을 때 해도 되는데 꼭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챙겨 주는 척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별로 안 친하지만 볼 일이 있어 온 친구들과 마당 테이블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때 마침 등장해서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다가 "나는 아직까지도 너한테 잘 보일라고 노력하잖아"이런 말을 툭 던진 적이 있다.

친구들은 부럽다며 사랑받는 네가 밥을 사라며 속을 긁어 댔다. 동창회에서 안주감처럼 회자된다고 했다.

나는 동창회에 잘 가지 않는다. 아이들을 봐줄 사람도 없었고 늘 동동거리며 살아왔다.

이제 좀 편해지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적어졌다.

혼자서도 잘 노니까 그래도 괜찮았다.

처음에는 친환경 농가의 모임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친목도모를 하는 모임이 된 곳에서도 저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통에 아줌마들 사이에서 민망해 죽을 것 같다.

나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늘 엉덩이를 가볍게 움직여야 한다. 막내는 늘 어딜 가도 엉덩이를 붙이고 있으면 눈총을 받는다. 그런 속도 모르고 시답은 농담이나 하고 있으니.


며칠 전 일이다. 작업복 바지가 몇 벌 있는데 비가 오는 통에 마르지 않아서 사러 가자고 길을 나섰다.

나간 김에 아이들 학원 마칠 시간에 데려오자 싶어서 같이 간다고 했다.

그게 잘 못이었던 것 같다. 차라리 따로 다닐 것을 괜히 같이 간다고 해서 마음만 상했다.

운전하고 가는 도중에 벌초 이야기가 나왔고 작은 아버지 기일 이야기가 나왔다. 세 번째 기일이 다가온다

언제 인지 기억이 안 나서 아냐고 물어봤다. 음식 하는 것을 도와줘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도와주기

싫은 감정도 있고 반반이다.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명절 제사를 지내지 말자고 작은 어머니께서 주장하셔서 1년에 5번 제사준비를 하는데 어머니와 둘이서 제사 장을 보고 당일날 작은집 형님과 동서가 와서 같이 음식을 했었다.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주말이 맞아야 볼 수 있었다. 우리 형님은 음식이 다 끝나면 기다렸다가 식당에 밥 먹으로 오는 사람 같다. 어머니 댁에서 걸어서 3분도 안되는 거리에 살면서 말이다.

명절 제사를 안 지내기로 하면서 내 일만 늘어났다. 산소에 가서 간단하게 절만 하자고 해놓고 왜 어머니 댁에 모여서 밥을 먹고 가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오니 음식을 안 할 수도 없고 이럴 거면 차라리 제사상을 차리는 게 더 났을 것 같다. 오랜 습관이라고 하지만 달라지기로 했으면 달라져야 하는 게 맞잖아.

늘 고생하는 사람만 고생하는 것이 맞는 거냐고 묻고 싶다. 남편에게 하소연했더니 자기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다. 스트레스받는다고. 어머니도 아무 말 안 하시는데 기본값이라고 생각하라면서 짜증을 냈다.

그냥 "당신이 수고가 많아"라고 한마디만 하면 끝날 일이었다.

아침에 한다는 말이 "그라모 그때 가서 말하지 왜 미리 말하는데?'라며 테이블 위에 있는 스탠드를 주먹으로

치려고 하다가 차키와 지갑을 들고 문을 부서지게 닫고 나갔다.

밖에서 차를 거칠게 몰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대문은 열려 있고 뭔가를 들고 찼는지 마당에 있는 것 중에 제자리에 없는 것이 있었다. 성질 머리하고는. 내가 아들이 하나 더 있었네. 누가 사춘기 아들인지 모르겠다.


명절은 해마다 반복되고 그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내가 다 받는데 그 말을 들어주기가 싫다고 짜증 내는 인간이랑 계속 살아야 되나 생각이 든다.

나는 맏며느리가 아니라 막내며느리다. 사람들은 뒤에서 욕할지언정 형님이 오든 말든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한다.

집안에서 불란 일으킨다고 아무 말도 안 한다.

작은 시누는 내게 이런 막말도 했었다. "잘하는 네가 더 잘해라."


남편을 곱게 볼 수가 없다. 밖에서 보면 무서운 마누라 혹은 드센 여자로 낙인찍혀 있다.

좋게 말을 하면 안 들어 먹으니까 언성이 높아지는 거다.

어머니께서 민원을 제기하시면 그걸 처리하게 위해서 어디서 놀고 있는 남편을 데리고 가야 한다.

바쁘면 어쩔 수 없지만 눈치를 보는 건 항상 나였다.


기분 좋게 들어와서 분위기 잡는다고 안아 보자고 들이 대면 죽빵을 날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 차곡차곡 미움을 적립해라 만기 때 보자.


오늘도 나를 만나러 와줘서 고마워.

어떻게든 또 하루가 간다.

그래도 남은 시간은 즐겁게 보내려 한다.

속상할 땐 걷는다. 하우스 안에 나의 낙원(플루메리아, 크와이묵, 대추야자, 파인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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