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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Aug 16. 2024

왜당귀, 나비도 불러온다

배추엔 배추흰나비, 당귀엔 호랑나비

봄이 되면 텃밭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봄기운을 따라 돋아난 새싹을 살펴 잡초인지 작물인지 나누어 본다. 대부분 잡초인데 들깨와 왜당귀 새싹도 간혹 만난다. 작년 가을에 떨어진 씨앗이 월동하고 틔운 싹이라 반갑다. 왜당귀 모종은 다른 작물보다 더 비싼 편이라 더 흐뭇하고 들깨는 옆 텃밭에서 건너온 씨앗도 있어서 여기저기서 발아되어 좋다. 이런 재미에 들깨와 왜당귀 몇 개는 씨앗을 맺도록 남겨둔다.


잡초 싹은 뽑는다. 풀싹을 뽑는 건, 휴면하다가 특별한 조건과 적합한 시기를 벼르고 골라 발아한 씨앗에겐 미안한 일이다. 그래도 새싹일 때 뽑아야 쉽다. 작물은 인간이 싹을 틔울 수 있는 조건에서 파종하기 때문에 휴면이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잡초는 일부 씨앗은 일찍 발아하고 나머지는 흙 속에서 휴면하면서 적당한 시기를 기다린다. 발아 기회를 오랜 기간에 걸쳐 분산시켜 동시에 발아했을 때 올 수 있는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이다. <"미움받는 식물들" 308쪽 참고>

     

하나만 길쭉하게 올라오는 외떡잎식물의 싹은 대부분 뽑으면 된다. 밭작물 중 옥수수, 마늘, 양파, 파, 부추 등이 외떡잎식물인데, 옥수수는 대부분 모종으로 심고, 마늘과 양파는 싹을 틔워 월동하여 이미 크므로 헷갈리지 않는다. 파와 부추는 떨어진 씨앗이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 씨앗이 맺기 전에 수확하므로 많지 않아 무시해도 된다. 쌍떡잎식물은 떡잎에서 본잎이 올라오면 구분되는데 들깨나 왜당귀는 어린 본잎부터 특징적인 잎 모양이 나오므로 몇 번 보면 구별이 어렵진 않다.

     

식당에서 쌈밥에 함께 나온 여러 쌈채소에 왜당귀가 있었다. 처음 본 잎의 모양이 독특한 데다 진한 향이 입안에서는 물론 쌈을 싼 손에 남을 정도로 강했다. 그 후 몇 번 식당에서 마주쳤고 마트 채소 판매대에서도 눈에 띄었다. 처음엔 생소하고 고수처럼 강한 맛에 거부감이 들었으나 눈에 익게 되고 한두 번 먹다 보니 끌리게 되었다. 이것이 낯설게 다가와 향과 맛에 이끌려 빠져나올 수 없는 향신료의 유혹이다.

    

유혹에 끌려 모종을 심었다. 익숙하지 않은 작물이라 서너 포기만으로 시작했다. 옮겨 심은 어린 왜당귀 뿌리가 새로운 땅에 적응하고 자리를 잡으면 안쪽에서 새잎이 연이어 나온다. 이맘때 어린잎의 즙을 좋아해 몰려드는 진딧물만 잘 관리하여 어느 정도 자라면 곤충 걱정은 없다. 다만, 더위가 시작될 무렵부터 호랑나비가 찾아와 잎에 알을 낳는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당귀 같은 미나리과 식물 잎만 먹는 편식쟁이(기주특이성)지만 개체수가 적기 때문에 피해줄 정도는 아니다. 피해라면 내가 뜯어먹는 양이 훨씬 많으니 나비만 불러들일 수 있다면 얼마든 괜찮다. 나비를 보기 위해 당귀를 더 심기도 하며 이웃 밭의 당귀를 기웃거리도 한다.

     

꽃줄기가 나오고 꽃이 피었다. 꽃은 줄기 끝에서 사방으로 퍼져 마치 우산을 펼친 모양으로 핀다(우산모양꽃차례). 특별히 당귀는 꽃자루 끝에서 다시 우산 모양으로 갈라져 피는데 이를 겹우산꽃차례라 한다. 그러니 한그루만으로도 꽃다발 여러 개가 모여있는 듯 보인다. 이걸 그냥 지나칠 곤충은 없다.

<우산모양꽃차례><겹우산꽃차례>

잎만 따먹기에는 아쉬워 알아보니, 당귀 뿌리가 ‘여성의 인삼’이라 할 정도로 여자 건강에 좋단다. 또 당귀(當歸)는 ‘마땅히 돌아온다’는 의미인데, 이에 얽힌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은 잎보다는 뿌리를 얻어 아내에게 달여주기 위해 매년 왜당귀를 심고 기른다. 왜당귀 뿌리를 달이는 날 집안에 퍼진 향은 더 향기롭다.

    

식물의 성장단계는 크게 영양생장과 생식생장으로 나뉜다. 영양생장은 발아하여 뿌리, 줄기와 잎을 성장시켜 몸을 키우는 단계이고 생식생장은 축적된 영양분을 이용하여 개화, 꽃가루받이, 열매의 성숙까지 씨앗을 생산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좋은 뿌리를 얻으려면 봄이나 가을에 파종하여 월동하고 이듬해 꽃줄기를 올리기 전에 캐야 한다. 경험상으로도 그래야 크고 튼실한 뿌리를 얻을 수 있었다. 또 다른 방법은 월동한 개체를 봄에 옮겨 심으면 꽃줄기가 올라오는 현상(추대)이 늦고 덜 되어 뿌리 수량도 많아지며 그해 가을에 수확하면 된다.


왜당귀는 일본이 원산지라 이름에 일본을 의미하는 왜(倭)가 접두어로 붙었다. 우리나라 자생 당귀로 참당귀가 있다. 참당귀는 키도 훌쩍 크고 줄기와 꽃이 자주색으로 다른 식물에서 보기 힘든 색이라 첫눈에 반할 정도로 인상적이면서 신비감까지 있다. 중부이북 지역 산길을 걷다 계곡이나 습기 있는 곳에서 어쩌다 마주치면 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래서 밭에 심어 가까이 두고 싶지만 씨앗과 모종 구하기도 쉽지 않고, 그늘져 서늘하고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하는 생육습성을 맞추기에는 텃밭이 적당하지도 않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참당귀를 가꾸며 가까이 보고 싶다.


<겹우산꽃차례로 핀 왜당귀꽃> <산호랑나비 애벌레에서 번데기가 되려고 몸속에 변화가 일어나는 '전용'과정>
<참당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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