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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Aug 08. 2024

상추꽃,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

거기에 꽃을 향한 열망이 있다

드디어 상추꽃이 피었다. 오랜 기다림이 있었다. 작년 초가을에 큰 기대 없이 어린잎이라도 먹으려고 파종했다. 쌈을 쌀 정도로 자라지 않았으나 겉절이로 무칠 정도는 되었다. 겨울을 맞이할 무렵 옆 텃밭지기 분이 비닐하우스처럼 부직포로 씌우면 월동할 수 있다고 조언하여 그대로 했다. 상추는 내 텃밭에서 처음으로 겨울을 맞았고 얇은 부직포를 지붕 삼아 추위를 견디며 봄을 기다렸다. 봄이 오자 주변 어느 밭보다 빨리 성장했다. 봄에 파종한 상추와 비슷한 시기에 꽃이 피었으니 어느 상추보다 오랫동안 잎을 제공했다. 거기다 꽃까지 튼실하게 피우니 고맙다.


상추는 국화과다. 꽃은 대롱 모양의 대롱꽃은 없고 혀처럼 긴 혀꽃만 있다. 혀꽃은 끝이 톱니 모양에 얇게 주름이 지고 수술 5개가 암술 1개를 빙 둘러싸며, 꽃잎과 암수술 모두 노란색이다. 중앙의 큰 줄기에서 여러 개의 꽃줄기가 나오며 많은 꽃이 차례로 피는데, 먼저 핀 꽃은 열매를 맺어 하얀 갓털을 단 씨앗을 날리고 한쪽에서는 꽃봉오리를 키우고 있다. 꽃은 이른 아침에 피며 오후와 햇볕이 좋지 않을 때 오므리고 저녁에도 꽃잎을 닫는다. 꽃을 제대로 보려면 햇살 좋은 오전을 택해야 한다.

* 국화과 식물의 꽃 형태 : https://brunch.co.kr/@vicolor/37


상추꽃을 만나거든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 보길 바란다. 그러면 상추가 꽃을 피우고자 했던 열망을 만나게 될 것이다. 상추가 오로지 꽃을 피우기 위해 겨울 추위를 견디며 떼이고 뜯겨도 기어이 잎을 또 키워내다가 아무 몰래 줄기를 내어 키우는 걸 이제야 았다. 이제부터 상추쌈을 할 때 노란 꽃이 생각날 수도 있고 꽃 생각으로 줄기를 꺾지도 뽑아버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상추의 한살이는 씨에서 싹이 트고, 잎과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시들어 죽는 과정이다. 1년을 넘지 않는 삶의 반복이지만 어느 순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때에 따라 할 일을 하며 제 삶에 충실하다. 이 한살이에서 우리가 상추를 뜯어먹는 시기는 종자를 채취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한 대부분 한살이 초기인 뿌리잎이 나오는 시기뿐이다.


잎이 나오는 상황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추는 뿌리에서 잎(뿌리잎)이 먼저 나오고 기온이 오르면 줄기가 올라오고 줄기에 잎(줄기잎)이 달린다. 일반적으로 뿌리잎은 타원형에 넓으며, 줄기잎은 길쭉하며 줄기 위로 갈수록 점차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상추도 이런 형태를 띠며 줄기잎은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이처럼 잎 모양이 다른 것은 햇볕을 효율적으로 받아 광합성을 최대한 하기 위한 방편이고 위로 갈수록 잎이 작아져야 역학적으로 안정적인 수단이 아닐까 내 나름대로 추측한다.


우리가 먹는 상추잎은 대개 뿌리잎이다. 줄기잎은 뿌리잎에 비해 쓴맛이 강하고 더 뻣뻣해서 잘 먹지 않은 데다 줄기잎이 나오기 시작하면 뿌리잎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상추는 줄기가 크고 꽃이 피기 전까지만 먹고 뽑아버리기 일쑤이다. 식물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다. 종족 번식을 위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꽃 필 틈을 주지 않으니 말이다. 이것이 상추의 운명이고 인간의 손에 길러지는 작물의 숙명이다. 잎채소 중에서도 배추, 시금치, 미나리, 갓 같은 채소는 줄기를 내기 전에 수확하니 상추와 같이 줄기를 보기 어렵다.


상추는 쌈으로, 겉절이로, 김치로, 샐러드로 다양하게 요리되고 즐겨 먹어 사시사철 재배될 정도로 사랑받는 채소이다. 그래서 우리 선인들은 언제부터 어떻게 즐겼는지 궁금했다. 의서, 조리서, 시, 가사 등에서 여러 소재로 활용되면서 오래전부터 쓸모 많고 사랑받는 채소였다.


특히 실학자 박제가가 쓴 “차잡절”에 수록된 시에는 실학자답게 오랫동안 정확하게 관찰하고 쓴 흔적이 있었다. 잎을 따먹고 나면 상추가 빗자루 모양으로 자라고 작은 국화 같은 꽃이 피는데, 사람들이 이에 관심 없음을 아쉬워한 내용이다. 실제로 상추는 빗자루처럼 가지가 많이 달리고 같은 국화과 집안으로 꽃이 비슷하다.

“여차잡절”(旅次雜絶) 일부

울타리 아래 텃밭에 상추를 심었는데 /
이리저리 뻗은 잎 꽤 많이 따먹었네 /
뉘 알까, 더 있으면 빗자루인 양 높이 자라 /
떨기를 따고 나면 작은 국화 되는 것을 /
상추 잎 열몇 쌈을 맛있게 먹었으니 /
난간 위로 거여목 웃자라게 말아야 해 /
         <선비들의 텃밭 조선의 채마밭> 306쪽 참고

- 상추는 고려시대 의서 “향약구급방”에 ‘와거’(萵苣)와 ‘백거’(白苣)로, 동의보감에는 우리말 ‘부루’로 기록되어 있다. <“향약구급방에 나오는 고려시대 식물들” 407쪽 참고>


- 정약용은 “장기농가”에서 “상추 잎에 보리밥을 둥글게 싸서 삼키고 / 고추장에 파뿌리를 곁들여서 먹는다 / 금년에는 넙치마저 잡기가 어려운데 / 잡는 족족 말려서 관가에다 바쳤다지”라고 노래했다. <"선비들의 텃밭 조선의 채마밭" 314쪽 참고>


-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 5월령에서 “보리밥 파찬국에 고추장 상추쌈을 / 식구를 헤아리되 넉넉히 능을 두소”라 읊은 대목에서 쌈으로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이른 말이 농업이 근본이라 주해 농가월령가” 84쪽 참고>

  * 파찬국: 파를 넣어 만든 냉국

  * 능: 빠듯하지 않게 여유 있게


<가까이, 해질녁에,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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