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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Sep 06. 2024

아욱, 가을 제철밥상

가을만이라도 아욱국이라 하고 싶다

된장국은 하루 건너 먹을 정도로 흔히들 먹는다. 그래도 질리지 않고 맛있다. 맛있으려면 좋은 된장을 써야 한다. 국산 콩과 우리 염전에서 나온 천일염을 사용하여 장독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익어간 것을 굳이 찾아 쓴다. 이런 된장이라야 입에 맞는 맛을 낸다. 된장을 살 때마다, 자식들 주려고 허리 굽혀 항아리에서 아낌없이 퍼 담으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그리워진다.


된장국 맛의 6할이 된장이라면 나머지 4할은 부재료다. 국에 넣는 부재료에 따라서도 맛은 천차만별이고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맛이나 정도에도 차이가 있다. 부재료는 주로 채소를 넣으며 계절에 따라서도 조금씩 다르다. 봄에는 냉이, 쑥, 달래, 시금치를, 여름에는 근대, 감자, 애호박을, 가을에는 배추와 무청, 버섯을, 겨울에는 시래기 같이 해당 계절에 주로 얻어지는 채소를 넣는다. 요즘에야 철없이 구할 수 있어도 제철이 제맛이다. 맛을 더하기 위해 소고기, 멸치, 조개를 넣어 맛을 진하게 하거나 매운 고추를 넣어 칼칼한 맛을 보태기도 한다.


된장국에 아욱도 빠지지 않는다. 아욱은 씻어서 바로 넣어도 좋으나 미끈하게 우려내면 더 감칠맛이 난다. 소금을 넣고 거품이 날 때까지 문질러 치대 풋내와 텁텁한 맛이 빠져야 입에 당기는 맛이 난단다. 물로 한두 번 헹궈 물기를 뺀 뒤에 된장을 넣어 버무려 재워두면 밑간도 되고 깊은 맛이 우러난다. 여기에 다슬기를 넣으면 궁합이 최고다. 이럴 땐 된장국이라 하지 않고 다슬기국이라 부르니 된장과 아욱은 조연에 그치고 만다.

 

된장과 아욱을 넣어 끓여도 된장국이라고 말하니 여기서도 아욱은 조연이다. 사실 아욱국이라고 불러도  만큼 다른 된장국에 견주어 맛이 좋다. 주연 못지않은 조연의 맛을 보기 위해 봄마다 아욱 씨앗을 뿌린다. 더 맛을 내려면 내 텃밭에서 느리게 자란 아욱이 좋다. 마트에서 구입한 아욱은 호박잎만큼 커서 낯설고 무엇보다 국물이 입에 맞게 우러나지 않는다.


씨앗에서 막 올라온 새싹은 언제나 귀엽기 마련인데 아욱 새싹은 예쁘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떡잎과 이어서 나오는 본잎의 모양은 심장형(하트 모양의 넓적한 형상)으로 같다. 그러나 가장자리의 모양은 조금 다른데, 떡잎은 매끈한데 본잎은 물결모양으로 파여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다. 어린잎에도 잎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런 아욱의 새싹을 보고 있으면 왜 심장 모양이 사랑을 의미하는지 짐작 간다.

본잎이 나오고 이어 줄기가 곧게 커가면서 줄기와 가지에 차례로 잎이 달린다. 줄기를 따라 잎이 배열된 모양을 잎차례라고 한다. 아욱은 줄기 마디마다 잎이 1장씩 달리는데 다음 마디에서 방향을 달리하여 서로 어긋나게 달린다. 이런 형태를 어긋나기라고 한다. 이외에도 잎차례에는, 한 마디에 두 장의 잎이 마주 보고 붙으면 마주나기, 마디 하나에 3장 이상의 잎이 빙 둘러 나면 돌려나기, 소나무나 은행잎처럼 한 곳에서 모여 나는 모여나기 등이 있다.


이처럼 일정한 잎차례를 갖는 것은 잎을 서로 겹치지 않게 배열하여 구석구석까지 햇볕이 잘 들게 하여 광합성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전략이다. 어떤 형태가 더 효율적인지는 견주는 것은 의미 없고 각자 자기에게 꼭 맞는 형태를 선택하여 진화해 지금에 이르렀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억겁의 세월만이 아는 일이다.


곧게 자란 원줄기에 아욱잎이 예닐곱 차례 어긋나게 달리면, 원줄기 윗부분을 잘라준다. 그러면 키를 더 위로 키우기보다 새로운 곁줄기가 돋아나와 옆으로 퍼지며 잎을 더 풍성하게 피우게 되어, 수확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6월이 되어 제법 더위가 느껴질 때면 잎겨드랑이에서 꽃줄기가 나오고 이어서 꽃이 핀다.

      

아욱꽃은 작다. 그래도 꽃이 갖추어야 할 꽃받침, 꽃잎, 암술, 수술을 모두 가진 갖춘꽃이다. 꽃잎은 5장이며 다른 색이 섞이지 않은 순백이거나 간혹 가장자리에 연분홍빛이 옅게 남아있기도 한다. 수술은 하나로 합쳐진 수술대(한몸수술, 단체웅예)에서 여러 개로 갈라져 나와 삶은 문어다리처럼 동그랗게 말리며 엉켜 있다. 수술이 먼저 성숙하여 가루를 날리고 나면 뒤이어 술이 나온다.


꽃이 시들고 시간이 지나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텃밭에서는 씨앗이 잘 영글지 못하고 쭉정이가 되었다. 재배 환경이 지 않거나 작물을 돌보는 정성이 부족할 수도 있고 종자회사에서 씨앗을 맺지 못하도록 육종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봄에 파종하여 무성하게 잎을 내고 꽃까지 었던 아욱의 묵은 대를 여름이 끝나갈 무렵 걷어냈다. 그 자리에 아욱을 또 파종했다. 가을 아욱은 사립문을 닫고 먹는다 할 정도로 영양이 많고 맛이 깊다. 이번 가을에는 마른 새우까지 넣어 끓여 보려고 한다. 된장국에 아욱과 건새우를 넣는 조리법은 영조 42년(1766년) 출간된 『증보산림경제』에도 소개될 정도로 오래전부터 이어온 맛이다. 지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입맛으로 검증된 아욱과 새우와 된장의 조합으로 빚어진 가을 참맛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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