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아
집 짓자는 말을 꺼낸지 한달도 안되었지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바로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의 임대차계약 만기 때문이었다. 20년 4월, 신혼집에 입주하였고 계약기간은 22년 4월까지였다. 20년 11월에 집을 짓자는 말이 처음 나왔으니 앞으로 1년 5개월안에 땅을 사고, 시공사를 계약하고, 집을 짓고 이사를 가야했다. 대강의 타임라인을 그려보니 서두르면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았다.
건축 중엔 예상치 못한 여러 분란을 맞닥뜨리지만 대표적인게 공사비 증액 관련이다. 이는 건축주가 직영(건축 분야별로 다 따로 섭외해서 짓는 것)하거나 지역 소규모 업체에 맡기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일이어서 집 짓기 전 가장 경계해야하는 사안이다. 최근엔 분양 아파트 건축과정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그렇기에 경량목조주택으로 결정하고 나서의 다음 일은 믿을 만한 업체를 찾는 것이었다.
단독주택 건설사도 전국구의 대기업(?)이 있다. 우리나라엔 목조주택을 대표하는 세 개의 회사가 있다. 대표성은 결국 수주 능력과 비례하는데 아무래도 빨리, 많이 짓다보니 주택의 설계나 외관이 비슷비슷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몰개성이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업체들은 아파트 건설사와 마찬가지로 자재 공급업체들과 미리 대규모 물량 계약을 맺어놓는다. 조금 더 뒤에 이야기 하겠지만 이게 나중에 얼마나 큰 이득으로 돌아왔는지 이때는 알지 못했다.
이런 기업들과의 계약은 흔히 말하는 지역업체(내가 건축할 지역에 있는 업체)에 비해 단가가 비싸다. 대신 앞서 말한대로 가격 증액이나, 중간에 회사가 망할 것이란 위험성이 낮다. 또한 AS가 필요할 때 바로바로 처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몇천 아끼자고 위험을 담보할 수는 없었기에 전국구 기업과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목조주택으론 업계 2위인 회사의 모델하우스를 방문했다. 어마어마한 외관에 입이 떡 벌어졌다. 아무런 공부도 없이 방문한 곳이라 영업 담당자의 현란한 말을 반도 알아듣지 못했다. 수억이 왔다갔다 하는 일인데 공부가 부족했음을 실감하며 반성하는 태도로 업장을 나왔다.
그때 일전에 만났던 공인중개사에게 전화가 왔다. 해당 부지의 다른 땅에 계약취소분이 나왔다는 것이다. 지적도를 살펴보니 네모 반듯하지도 않고 모양도 특이했지만, 부지의 중간쯤이었고, 다른 부지들로 둘러쌓이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처음 봤던 땅보다 약간 작아서 분양가도 좀 더 저렴했다. 더 따져볼 것 없이 우리가 계약하겠다고 말했다. 주말에 현장에서 토목사와 계약하기로 약속을 잡고 다음 업체로 향했다.
다음에 만난 업체는 국내 목조주택 시공 1위의 업체였다. 답변 메뉴얼을 철저히 지킨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로 영업 담당자는 막힘없이 줄줄 말했다. 더욱 솔깃한 제안은 지금 계약하면 2020년 3분기 건축단가로 계약해준다는 것이었다. 이듬해인 21년도부터는 본격적인 코로나 여파로 인해 자재 수입이 현저히 줄어들고, 또한 해외 여행 대신 집 내부 인테리어 등에 돈을 쓰는 경우가 많을꺼라 자재값이 어마어마하게 오를 위험이 있다고 했다.
돈을 조금 더 쓰더라도 안전한게 제일이다란 정신으로 무장한 나로선 이미 들어오기 전부터 가장 큰 회사와 계약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뭔 깡으로 그날 계약했나 싶다. 업체에서 이야기하는 금액이 적정가인지 알아보지도 않았다. 예상금액 대비 얼마가 더 들지 계산기를 두드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우리는 그날 계약서를 작성했다. 심지어 땅을 사기도 전에 말이다. 안전장치로 원하는 부지가 계약 안될 시 계약금 전액 반환 조건을 넣었다. 20년 12월 26일이었다.
땅사기 전에 건축 계약이라는, 선후가 뒤바뀐 짓을 한 다음날, 계약취소분으로 나왔다는 땅을 사기 위해 토목사 사무실에 갔다. 공인중개사를 증인으로 두고, 토목사 대표와 계약을 맺었다. 뭔가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계약서 같았지만, 도로지분 10% 포함 148.8평을 평당 200만원에 계약했다. 이제 나도 땅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