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숑은 왜 회사에서 전략 업무가 하고 싶었어?”
늦은 저녁, 회사 근처 고깃집. 술잔도 절반쯤 비워졌고, 고기도 대충 익어갈 무렵. 김 상무가 불쑥 물었다. 고기 굽던 손이 순간 멈칫했다.
“저요? 뭐 딱히 이유라기보다는... 그냥 뭔가 있어 보이잖아요. 전체적인 관점에서 회사의 미래를 설계하고, 비전을 제시하고… 그런 일?”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일해보니까, 그랬어?”
김 상무가 고개를 한쪽으로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나는 웃으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사실 해보니까 많이 다르죠. 각 부서에서 의견 모아 정리하고, 빠진 관점 보완해서 보고하고, 기존 안을 좀 더 설득력 있게 다듬는 일이 대부분이에요. 우리가 주도권을 가진다는 느낌보다는, 잘 정리해서 의사결정자들이 선택할 수 있게 돕는 역할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김 상무는 흐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대부분의 전략 업무가 그래. 회장이나 사장이 전략을 말하면, 그다음부터는 ‘전략을 번역하는 일’이 되는 거지. 그걸 파워포인트로 정제하고, 시뮬레이션 돌리고, 다른 팀들 설득할 논리를 짜는 일.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야. 그건 꼭 필요한 일이긴 하지.”
잠깐 소주잔을 들었다. 상무는 잔을 입에 대지도 않고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내려놨다.
“그런데 그건 전략 ‘문서화’지, 전략 그 자체는 아니야.”
잠시 불판 위 고기를 뒤집으며, 상무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젊은 친구들 보면 전략 업무에 괜한 환상이 있더라고. 뭔가 되게 똑똑하고 거창한 일처럼 착각하는 경우 많은데... 현실은 달라. 대부분은 있는 내용 좀 정리해서 실행계획 짜고, 그게 맞는 말이라는 걸 구조화해서 말하는 거고. 계획대로 굴러가는지 트래킹 하고, 보고하고. 그렇게 해서 잘 돌아가면 좋은 거고.”
상무가 소주잔을 들며 웃는다.
“그럼 상무가님이 생각하시는 진짜 전략은 뭐예요?”
“회사에서 맡은 전략 업무는 단순히 타이틀이고 조직 역할일 뿐이지. 진짜 전략가는, 일상에서도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야. 예를 들어 오늘 같은 자리에서 내가 너한테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이건 그냥 술자리인가, 아니면 뭔가를 떠보는 건가—그런 거 생각해 봤어?"
“만숑이 며칠 전에 나한테 얘기했던 그 고민들도 마찬가지야. 수중에 돈 얼마 없는데 A지역 아파트를 사야 할까 말까, 팀 후배가 말을 안 듣는데 어떻게 구워삶아서 내 말을 듣게 할까,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어떻게 하면 윗선에 관철시킬 수 있을까...”
나는 그제야 술잔을 내려놓고 김 상무 쪽을 바라봤다. 김 상무는 웃지도 않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런 고민들이야말로 전략이지. 누구도 대신 정해주지 않고, 정답도 없고, 결과는 네가 책임져야 해. 그리고 그런 고민을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게 진짜 전략가의 태도야.”
“그럼 결국, 전략이란 건 업무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관점과 태도의 문제네요.”
“그래. 전략이란, ‘왜 이걸 해야 하지?’를 끊임없이 묻는 거야. 그리고 그 질문에 진심으로 답할 수 있는 사람. 그게 전략가야.”
불판 위 고기는 거의 타들어가고 있었지만, 그날따라 대화는 이상하게도 더 선명하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