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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현 Mar 01. 2024

‘쓴맛’에 얽힌 이야기

제3장 첫 문장, 그 지독한 불면

[시 창작 에피소드 #3]  



   

시는 우리 삶에 충실하다. 아무리 그 문장이 낡고 산만하더라도 그 작품은 ‘시’로서 우리와 동일한 농도와 무게를 가질 수 있다. 유명하지 않고 또한 널리 암송되지 못해도 그 시는 적어도 시인의 인생 전체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통해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시의 충실성은 언어의 ‘힘’(혹은 밀도)와 관련될 수밖에 없고, 우리는 그 언어를 깊이 응시하고 내면화함으로써 삶의 심연에 새롭게 다가갈 수 있다. 


요즘에는 아예 동일한 제목으로 시를 발표하는 시인도 있다. 통상 ‘소나기 1’, ‘소나기 2’…… 등으로 순번을 매겨 작품을 구분하는 게 보통인데, 이젠 그마저도 낡았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는 논할 필요도 없다. 시인이 그러해야 한다면 그런 거다. 다만, 그것을 변별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확고한 논리가 수반되어야 작업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비록 두 권이지만, 내게는 이 두 시집을 관통하고 이어주는 단어가 있다. 바로 ‘쓴맛’이라는 단어다. 첫 시집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2018)과 두 번째 시집 『내가 먼저 빙하가 되겠습니다』(2020)의 문장들은 대상이나 주제 면에서 유독 엉켜 있는 흐름이 보이지만, ‘쓴맛’처럼 아예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는다. 아마도, 나는 매번 시집을 발간할 때마다 이 단어를 제목으로 하는 시를 게재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단어가 미세하게 진동하며, 혹은 큰 틀에서 변주되는 그 시간의 피치 못 할 간격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겠는가.      



꽃이 진 자리에서 쓴맛이 났다 꽃이 진 자리가 쓴맛이라 당신이 미워졌다 소슬하니 휘파람을 불다가도 다시 당신이 미워져서 이불 속으로 꼭꼭 숨었다 손끝이 물러터지도록 오래 엽서를 썼다 비틀거리는 글자에도 쓴맛이 박혀 있었다 몹쓸 말을 생각했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몹쓸 말이 없었으니 밤새도록 벚나무 아래 누워 바람만 탓했다 엽서를 쓰다말고 뒤를 돌아봤다 뒤돌아볼 때마다 당신이 미워졌다 미워서 병든 마음을 뽑아내면 당신이 쑥 뽑혔다 차마 버릴 수 없어 며칠을 울었다 쓴맛이 나를 자꾸 벚나무 그늘로 데려갔다 바람이 곁에서 소슬하니 휘파람을 불었다

─ 박성현,「쓴맛」 전문     



내게 ‘삶’이란 ‘쓴맛’의 다른 이름이다. 달콤함은 모호하다. 해변의 모래알처럼 어떤 대상에 붙박여 있는지 불분명하다. 그래서 혀에 오래 남지 않고 단숨에 솟았다가 사라질 때도 있지만, 대체로 달콤함은 녹는 순간부터 미각을 마비시키고 흐트러뜨린다. 하지만 쓴맛은 단호하다. 맹렬하고 단단하고 거칠다. 살아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감각이다. 바람이 불어대는 ‘소슬한 휘파람’을 단 번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몸은 생경해진다. 


쓴맛은 그 자체로 바늘로 뒤덮여 있어 문신을 새기듯 혀에 모양을 새기고 길을 낸다. 그 모양과 길은 사람의 생활과 습속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래서인지 미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쓴맛을 통해 결정되는 듯하다. 위에 인용된 시는 두 번째 「쓴맛」이고, 바로 이러한 상처에 대한 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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