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시
박성현
그 언덕은 밤이었고
식어버린 달이 떠 있었다 아직 밤이 아닌
남자의 입술에는
붉은 기와 무늬의 저녁놀이 흘러내렸다
그 언덕의 밤에는
벽과 나무와 구름이 없어서 남자는
허리를 세운 채
낮고 무거운 서쪽에 기댔다
그 언덕의 밤에서
올빼미가
울었다 올빼미는 날개를 단단히 잠그고
회색 머리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 언덕의 밤으로
소년들이 걸어왔다
모두 챙이 넓은 모자를 썼고
맨 끝에서 느릿느릿 올라오는 소년은
지팡이를 집고 있었다
소년들의 얼굴에 묻은
낮의
기묘한 어둠, 남자가 기댄 서쪽을
한 소년이
주머니칼로 잘라냈다
그 언덕의 밤은
남자가 사라진 곳 소년들이 이미
남자의 사지를 둘러메고
들판으로 향했다
* 계간 <미네르바> 2023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