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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현 Jul 24. 2024

흰눈

수요일의 시


 

흰 눈


박성현


 


매일, 흰 눈이 내렸다 가장자리는 높고 안쪽은 따뜻했다 늦도록 기울어진 초승달과 새파란 별이 곁을 지켰다 언덕에 앉으면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앙상한 뼈에 달라붙은 옛날이 초록의 깊은 곳으로 물러났다 나는 울음을 꺼낼 수 없어 매일, 흰 눈을 뭉쳐 당신을 조각했다 바람이 등에 기대 휘파람을 부는 사월이나 피와 녹이 사납게 엉겨 붙는 구월에도 매일, 눈을 뭉쳐 당신의 악보와 의지를 그렸다 흰 눈이 내렸다 제발 그만이라 말해도 흰 눈 내리는 사월과 구월은 그치지 않았다 머물 수 없어 떠나는 이유가 회오리치는 대낮이라면 이제는 믿어야 할까 매일, 흰 눈이 내리고 혼자 부르는 노래는 상냥했으며 당신의 조각은 어김없이 녹아 흘렀다 눈이 내렸다 매일 높고 따뜻한 새가 날아와 당신을 지웠다 흰 눈이 내리면 내 몸에서 쏟아지는 울음을 꾹꾹 눌러 심장 속에 감췄다 심장을 찢어야 울음을 꺼낼 수 있는 한여름, 흰 눈은 그치지 않고 자꾸 당신을 지웠다









시집 <내가 먼저 빙하가 되겠습니다>, 문학수첩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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