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시
박성현
소년은 북해를 바라보았다
낡고 더럽고 희미한
해변도로 안쪽 폐허가 된 공장이 줄지었고 잔해를 덮은 검은 재와 메마른 바람만 불었다
죽어버린 소리들
속박된 언어들
피와
칼과
심장이 사라진 소년은
숨이 막혔다
광기가 그 거대한 뿌리를 일으켰다
—목마르지?
수도꼭지를 돌리자 풍뎅이가 쏟아졌다 욕실의 끈적끈적한 거울과 벽과 샤워 부스를 뒤덮고 비누와 치약을 모조리 갉아 먹고서는 하수구로 빠져나갔다 소년은 서랍을 열고 아스파린 한 주먹을 꺼내 씹어 먹었다 더럽고 희미한 얼룩이 혈관을 타고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목마르지?
밤이 가까울수록 북해의 호흡은 거칠어졌다 붉은 깃털로 뒤덮인 눈과 칼바람이 공장을 허물었다 소년은 두 손을 넣고 휘휘 저었다 토네이도가 시작되길 기다렸다가
그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 계간 서정시학 2023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