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시와 사물
시 쓰기는 사물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시는 어떤 특정한 사물을 대상으로 삼아 비유나 수사로 표현하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시 쓰기’는 사물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고, 그것의 내밀한 목소리를 이끌어내는 작업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인은 지금까지 이어지던 사물의 관습적 이미지들을 멈추게 하고 돌려세움으로써, 사물을 그 사물-속-에서 구원하게 된다.
파울 첼란은 이렇게 쓰고 있다: “시는─그 어떤 조건에서도!─여전히─인지하는 사람의, 나타나는 것을 향하고 있는 사람의, 이 나타나는 것에게 묻고 말을 거는 한 사람의 시가 됩니다. 시는 대화가 됩니다─자주 절망적인 대화이지요.”6) 파울 첼란은 시의 대화적 속성을 '절망적인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당시의 카니발적 민중 언어가 불가능했던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둔 말일 것이지만 언어와 사물의 관계로 확장해도 무방하다.
이때 ‘대화’는 사물에 밀착하고 소통하면서 그 관습적 외투를 한꺼풀 벗겨내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익명의 대상, 곧 암막(暗幕) 뒤에 감춰진 은밀하고 모호한 형상─단지 짐작하고 추측만 할 수 있는─을 ‘언어’라는 가시적 세계로 끌어올린다. 이는 현상학적 차원에서의 ‘판단중지’라 할 수 있는데, ‘나’의 자동화된 의식을 멈추게 함으로써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사물에게 새로운 형상을 상기시킨다.
페르난두 페소아도 자신이 느꼈던 강렬한 에포케를 이렇게 표현한다: “봐, 세상에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담배 가게」)7) 이 세계는 세계 그 자체라는 시인의 일갈은 그의 시 쓰기에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사물은 이데아를 속삭이지 않는다. 사물의 은밀한 곳에 신이 숨어 있다는 믿음은 믿음일 뿐이다. 사물은 신을 속박하지 않으며, 사물 스스로가 신의 편재(遍在)다. 그것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오로지 현존만을 우리에게 들려주며, 이것이 사물 속에 존재하는 시인의 모습이다. 숨겨진 것들이 없을 때, 시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고, 다른 사물들과 접속하는 관계의 진실함을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사물과의 대화는 오로지 사물의 응시를 이끌어낼 때만 가능하다. 내가 사물을 오래 지켜보면서 그 호흡과 박동, 숨소리의 미세한 떨림까지 자세히 본다면 사물은 우리에게 자신을 열기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시는 사물의 현존이라는 지극히 사실적이고 반박이 불가능한 세계를 일으켜 세우는 언어가 된다. 나태주 시인의 이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충고일 것이다.
얇은 슬레이트들 위에서 비둘기들 함께 자리를 옮긴다,
등으로 버틴다 서쪽에서 오는 가는 비.
잠긴 머리 각각과 자리 잡힌 깃털 가로지르며 바람 불고.
따스한 더미 주변에 옹송그리며 모이는 게 그것들한테 딱이지,
겨울 일광 약해지기까지는, 그리고 그들 형체
알아보기 힘들다 벽돌 구조물 배경으로. 이내,
빛, 작은 강렬한 치우친 달 하나에서 온 그것이
보여준다 그것들, 자기들 그림자처럼 검은, 그렇게 잠든.
─ 필립 라킨, 「비둘기들」 전문8)
전후 영미권 내의 대표적인 시인인 필립 라킨은, 페소아의 직관에 직접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이 시가 묘사하는 것은 단순하다. 희미한 겨울 일광으로 모여든 비둘기들의 가난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 풍경이 상기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노동자들의 일상도 그렇지 않는가. 그의 눈에 비친 ‘비둘기’는 군집으로 “얇은 슬레이트들 위”에서 주억거리고, “서쪽에서 오는 가는 비”를 등으로 버틴다. 바람은 비둘기의 매끄러운 회색 머리와 깃털을 가로지르는데, 겨울 일광이 약해질 때면 비둘기들은 체온을 나누기 위해 한데 모인다. 비둘기들은 “자기들 그림자처럼 검은” 잠을 잔다.
이 시에서 숨겨진 것은 없다. 눈앞에 펼쳐진 잿빛 풍경만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문장들은 하나의 스넵 사진처럼 도드라지면서도 우리 삶의 단면을 그려낸다. 비둘기와 노동자들의 고된 삶의 이력들이 선명하게 대칭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비둘기 속으로 스며들고 그들과 대화함으로써 우리 삶의 누추한 일상과 결핍에서 이어지는 상실을 포착해낸 것이다─어쩌면 그것이 비둘기를 스케치한 라킨이 만든 또 하나의 세계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 쓰기를 이렇게 정의할 수도 있다.
[고찰③] 시 쓰기는 시인의 내면에서 이뤄지는 사물과의 대화다.
물론 ‘사물’이란 주체가 마주하는 모든 타자로 확장된 말이다. 시 쓰기는 이 사물과의 긴밀하고 주관적인 대화를 통해 우리가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혹은 인식하지 못했던 다양성을 이끌어낸다. ‘그것’은 익명의 바다에서 오롯이 빛을 발하는 등대를 보게 되며, 그 까마득한 심연이 바로 자신의 내면에 현존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파울 첼란의 노래처럼, 그 소용돌이치는 정신의 고요처럼: “너희 키 큰 포플러─이 땅의 사람들! / 너희 행복의 검은 연못들─너희가 그들을 비추어 죽게 한다! // 내가 너를 본다. 누이야, 네가 이 찬란한 빛 속에 서 있음을.”9)(「풍경」)
6) 파울 첼란, 전영애 옮김, 「자오선」, 『죽음의 푸가』, 민음사, 2011, 241쪽.
7) 페르난두 페소아, 김한민 옮김,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서』, 민음사, 2018, 51쪽.
8) 필립 라킨, 김정환 옮김, 『필립 라킨 시전집』, 문학동네, 2013, 254쪽.
9) 파울 첼란, 앞의 책, 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