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시와 언어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언어 예술의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해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어떤 문장은 시로 읽고 또 어떤 문장은 시로 읽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체로 전자는 아름답거나 리듬감과 회화적인 인상이 넘치며 혹은 선불교적 깨달음의 문자나 정서적으로 강한 충격을 주는 문장 등이며, 후자는 일상에서 흔히 쓰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사용설명서나 논설문, 각종 기사 등 사물이나 사건의 정보를 알려주는 문장이다.
이외에도 뭔가 시적이긴 한데 그렇다고 딱 잘라 ‘시’로 명명하기 힘든 문장도 있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대답을 애매하게 만드는 문장, 어쩌면 여기─‘시’와 ‘시적인 것’─에 시의 본래적인 함의가 있을지 모른다. 앞에서 언급한 "사랑하다 죽어버려라”와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라는 문장에는, 양자 모두 시적인 상징과 아름다움을 가진 미학적 매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킬 수 없는 명확한 경계가 있다. 물론 시스템의 문제다. 시와 광고는 동일하게 언어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시스템 자체가 다르다.
“사랑하다 죽어버려라”는 정호승 시인의 시 「그리운 부석사」42)의 한 구절이고,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는 ‘2% 부족할 때’라는 음료의 TV광고 문안이다. 이 두 문장의 차이는 명백하다. 기호와 지시대상이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느슨하게 연결되었는지, 아니면 아교처럼 단단하게 결속되었는지 그 차이다. 이 관계는 작품에 대한 받아들임, 곧 이해와 해석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며 미학적 성공 여부를 가늠할 열쇠라 할 수 있다.
첫째, “사랑하다 죽어버려라”는 수많은 의미를 파생시킨다. 가령, 이 문장의 의미는 첫째, 죽을 만큼 사랑해라, 둘째, 일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자 셋째, 헤어진 연인을 저주하는 등의 수많은 의미를 가진다. 이 문장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더 많은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문장은 단 하나의 의미(혹은 지시대상)를 가지지 않고 읽는 이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사회와 국가, 민족에 따라 의미가 다양해진다.
둘째,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는 의미를 파생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2% 부족할 때”라는 음료와 같이 단 하나의 의미, 혹은 지시대상만을 가질 뿐이다. 만일 이 문장을 읽으면서 콜라나 사이다 등의 다른 음료수를 떠올리면 광고는 실패하고 만다. 광고의 언어는 시의 언어와는 달리, 그 문장의 리듬감과 상징,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확대하거나 파생시키기를 몹시 꺼려한다.43)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우리 앞에 시적인 문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시’라는 시스템을 벗어나면 시가 아닌 것으로 분류되는데, 단순히 장소적 좌표로 해결되는 것일까. 100%는 아니지만 상당히 중요하다. 시와 시가 아닌 것의 차이는 바로 문장의 위치, 혹은 맥락이다. 다시 말해 ‘문장의 위치’란, 그 문장이 어떤 상황(혹은 ‘장르’)에서 쓰이는가를 말한다. ‘광고’라는 위치, ‘시’라는 위치, ‘일상에서의 대화’라는 위치, ‘수학’이나 ‘국어’ 교과서라는 위치 등이다. 이 ‘위치’에 따라 언어의 성격은 달라진다.
이 ‘위치’는 ‘맥락’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자면, 축구 경기에서 깃발은 ‘오프사이드’ 등 규칙위반의 의미를 가지며, 아파트 공사장에서는 위험지대를 표시한다.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의 멈춤과 진행을, 대규모 집회에서는 역동성을 연출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유치환의 시에서는 ‘노스탤지어’ 혹은 ‘유토피아’, ‘실존’, ‘삶’, 그리고 끝내는 파기될 수밖에 없는 ‘좌절’과 ‘절망’을 표상한다. 시라는 맥락에서 깃발은 사회적 합의와 약속이 없으며, 개별 감상자의 마음-씀만이 존재한다. 맥락에 따른 의미의 변화는, 마치 마르크스가 말했던 “흑인은 흑인이다. 어떤 관계를 맺을 때에만 그는 비로소 노예가 된다.”는 정식과 동일하다.
문제는 맥락에 숨은, 암묵적인 의미 작용이다. 신문이나 잡지, 인터넷 등의 언어, 다시 말해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담론은 규범어로서의 가치를 지니면서, 기호와 지시대상의 불일치를 유도하지 않는다. 반면, 유치환의 시에서는 오로지 독자의 주관적인 판단이 중요하며 이 과정에서 ‘깃발’은 의미의 연속적 파생을 유도한다.
수많은 오후들이 지나간다
무상한 징조처럼
─ 제오르제 바코비아, 「지나가는 구름」 부분44)
이 작품에서 구름은 ‘수많은 오후들’이며 그것이 덧없이 지나가는 길로 표상되고 있다. 그 오후의 무상하리만큼 고요한 일상으로, 그 사건의 덧없음으로, 그리고 ‘나’의 터질 듯한 우울로 말이다. 시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야누스의 얼굴들이 압축적으로 펼쳐져 있는데, 그러므로 밤은 단순한 암흑 덩어리가 아니다. 밤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가지며, 암흑은 이 ‘밤’의 흐름에 따라 수많은 형태를 가진 ‘그것’으로 변한다. 밤은 ‘언어’라는 마법의 지팡이가 향한 곳이며, 지팡이는 밤에 주문을 걸어서 결과를 만든다. 이때 비로소 암흑은 눈을 뜨며 밤의 언어를 되새긴다. 시인이 하얀 잉크로 덧칠한 검은 원고지 위의 문장들과 같은.
42) 시 전문은 이렇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 새벽이 지나도록 / 마지(摩旨)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정호승,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창작과비평사, 1997.) 참고로 마지(摩旨)’는 부처 앞에 올리는 밥을 말한다.
43) 물론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라는 문장이 패러디 등의 형식으로 시에서 사용된다면, 얼마든지 다른 의미를 파생시킬 수 있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44) 제오르제 바코비아, 앞의 책, 1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