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시와 언어
이제 시의 언어와 일상어의 관계가 명쾌해진다. 시의 언어는 특수하게 사용하는 일상어다. 다시 말해 일상어의 쓰임과는 다르게 음악성, 회화성, 초현실주의적 추상성 등 예술적 요소들을 적절히 운용한다는 것이다. 같은 문장이라도 ‘시’라는 시스템에서는 의미를 현저히 확장하기 때문에 시는 특수해진다. 제아무리 이상이라 해도, 그의 언어는 1930년대의 분위기와 말투, 냄새와 온도가 묻어 있으며, 특히 일상어를 벗어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시가 일상어의 특수한 사용이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시가 일상어에 속박된 의미를 해방시키는 언어라는 것을 필연적으로 전제한다. 시는 일상어의 무기력하고 자동화된 의미들을 끊어버림으로써 새로운 의미 체계를 만드는데, 이것이 언어예술로서의 시를 규정하는 핵심이다. 시 쓰기는 무의식적으로 기존의 관습적 의미 체계와 단절하고자 하는 충동과 욕망의 덩어리다.
임의의반경의원圓(과거분사의시세時勢)
원내의일점과원외의일점을결부한직선
2종류의존재의시간적영향성
우리들은이것에관하여무관심하다)
직선은원을살해하였는가
현미경
그밑에있어서는인공도자연과다름없이현상現象되었다.
─ 이상, 「이상한 가역반응」 부분45)
이 작품은 그가 1931년 7월,『조선과 건축』에 일문으로 발표한 시다. ‘이상한 가역반응’이라는 표제로 총 6편이 연작 형태로 게재되었다. 통상의 의미체계를 무시하면서 이상은 모국어를 뒤집어버린다. “원내의일점과원외의일점을결부한직선”이란 문장은, 비록 해석이 난해할지라도 적어도 일정한 모양은 갖추고 있다. 우선 그의 언어는 당대의 언어 형식 내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일차적으로는 그 체계에서 운용된다.
시의 언어는 일상어에 포획된 사물들의 관습적인 의미를 해방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시 쓰기와 관련된 모든 행위(곧 ‘창작’과 ‘사색’, ‘독서’ 등) 또한 관습적 의미와 단절하는 예비 작업이다. 앞서 우리는 칼리그람을 살펴본 적이 있는데, 이것도 일상어의 특수한 사용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46)
문제는 그 특수한 사용의 방법이다. 일상어를 어떻게 사용해야 시가 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그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우선 논리의 전복이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 안도현, 「사랑」 부분47)
안도현 시인은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다. 여름이기 때문에 매미가 우는 것이 당연한데, 그는 거꾸로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겁다고 쓴다. 나는 이 무지막지한 도치가 얼마나 크게 내 심장 속에서 울려 퍼졌는지, 지금도 여름이라는 단어와 함께 이 문장이 소환된다.
두 번째는 단어의 병치다. 이 방법은 의미의 층을 쌓는데 확실한 효과를 준다. 하지만 위험할 때도 있다. 자칫 처음의 단어보다 이어지는 단어가 무기력하다면 의미는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친 사용은 작품의 산만하게 만들어 종잡을 수 없게 만들거나 신선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단어를 무작위로 선별하거나(우연) 혹은 (시인의 통찰을 통해) 연관된 단어끼리 겹쳐놓거나(필연) 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숯이 된 꽃들, 검은 심연
검게 그을린 금속 관,
숯이 된 수의,
깊은 어둠, 검은 심연
─ 제오르제 바코비아, 「흑」 부분48)
바코비아는 ‘검정’과 관련된 일군의 단어를 병치한다. ‘숯이 된 꽃’을 시작으로, 그는 ‘검은 심연’, ‘검게 그을린 금속 관’, ‘숯이 된 수의’ 등을 통해 죽음의 이미지를 배가시키고 있다. 이 작품에서 ‘검정’이라는 색채는 묘하게도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데, ‘숯’과 ‘꽃’의 배치에서 오는 미세한 원근과 ‘금속 판’과 (시에는 쓰이지 않았지만) ‘불’의 결합이 향하는 단호함, 그리고 ‘숯’과 ‘수의’의 대칭이 가져오는 확고한 죽음 등이 그것이다. 깊은 어둠─검은 심연─의, 주름처럼 번져가는 ‘흑’은 각각의 경계를 오묘하게 닫는다.
검은 A, 흰 E, 붉은 I, 푸른 U 파란 O: 모음들이여,
언젠가는 너희들의 보이지 않는 탄생을 말하리라.
A. 지독한 악취 주위에서 윙윙거리는
터질 듯한 파리들의 검은 코르셋,
어둠의 만(灣); E, 기선과 천막의 순백(純白),
창 모양의 당당한 빙하들, 하얀 황들, 산형화들의 살랑거림.
I, 자주조개들, 토한 피, 분노나
회개의 도취경 속에서 웃는 아름다운 입술
U, 순환주기들, 초록 바다의 신성한 물결침,
─ A. 랭보, 「모음」 부분49)
랭보는 그가 통찰한 바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마치 숨 한 번에 터져나온 문장들 같다. 그는 이 작품에서 모국어에 깃든 프랑스 특유의 예술적 감각을 펼치고 있는데, 각각의 모음마다 색을 입히고, 그 색이 그려내는 이미지를 공감각적으로 확장한다. 예컨대, 붉은색의 I는 자주조개, 토한 비의 강렬한 시각 이미지와 함께, ‘분노’와 ‘회개의 도취경’, ‘웃는 입술’ 등의 청각적 이미지를 결합시킨다. 푸른색의 U도 마찬가지. 일렁이는 초록바다는 반드시 신성한 파도를 통해 뭍에 닿는다.
세 번째는 말하듯 시를 쓰는 방식이다. 일상어가 고스란히 노출시킴으로써 눈앞에 펼쳐진 문장의 더미들이 ‘시’라는 인상을 아예 지워버리는 것이다. 시가 ‘언어’와 ‘언어가 아닌 것’을 분별하지 않는다면, 일상어의 특수한 사용이라는 시의 언어에서 예의 ‘특수한’이라는 형용을 지워버려도 무방하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충격의 강도를 높일 수도 있다.
제이크 발로코프스키, 내 전기작가,
가 이 페이지를 마이크로필름으로 찍었다. 앉아 있는 곳은
케네디 센터의 에어컨 돌아가는 그의 독방
진 바지에 스니커즈 차림, 그가 숨길 필요는 없지
자신의 운명에 대한 모종의 초초 약간을:
이 지겨운 늙은이를 최소 일 년에 한 번은 봐야 한다니:
난 텔아비브에서 선생 노릇을 하고 싶었지만,
마이라네 사람들이,─그가 손가락으로 돈을 그린다─
‘어찌나 성화던지 종신재직권 얻으라고. 애들 있을 때─’
그가 어깨를 으쓱한다. ‘시체 냄새가 나요. 그 연구 분야는:
그냥 이 개자식 썩게 놔두고,
두 학기 휴가 내서
저항 연극 논문 쓰면 딱 좋겠건만,’ 그들 둘 다 일어난다
(하략)
─ 필립 라킨, 「후대」 부분50)
필립 라킨은 런던의 한 선술집에서 맞은 편 테이블에 앉은 친구에게 사람들을 흉보고 있다. 자신을 ‘지겨운 늙은이’로 칭하는 전기작가 제이크와 은근히 속물 근성을 드러내는 마이라네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 인용시에 언급된 것처럼, 제이크는 아이러니하게도 “케네디 센터의 에어컨 돌아가는 그의 독방”에서, 진 바지에 스니커즈 차림의 다소 게이 같은 모습을 하고, 이 지겹기만 한 늙은이를 욕하고 있다.
한편, 텔아비브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종신재직권을 얻으라고 성화를 해대는 ‘마이라네 사람들’ 때문에, 시인은 그것도 단념한다. 돈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위악(僞惡)이란 일종의 미장센일까. 시인은 손가락으로 돈을 그리면서 말한다. ‘시체 냄새가 난다’고. ‘그냥 이 개자식 썩게 놔두고 두 학기 휴가를 내라고. 그렇게 시인은 그들을 고집스럽게 비꼬고 있지만, 그의 의뭉스럽고 재기 넘치는 말들은 그 비웃음에도 살아 있다. 물론 이게 시일까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시라는 것은 틀림없다.
네 번째는 중의적인 단어를 적극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애초 다양한 의미를 파생하는 시어들을 배치하고, 의미의 두께를 최대한으로 만듦으로써 그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가령, “밤은 늦게 도착했다. 그는 정류장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자신을 잊어버린 것이다”라는 문장을 보자. 여기서 ‘밤’은 저녁 후에 시작되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고된 일을 겨우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아버지 혹은 청년의 의미를 가진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는 스스로를 망각했던 것일까. 다만, 모호함을 전략으로 내세운 것이니만큼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가 쓰고 있는 시에 대해 좀 더 분명하고 정확히 꿰고 있어야 한다.
다섯 번째는 직유와 같은 두 사물의 직접적 비교보다는 은유나 상징, 알레고리와 같은 간접 비교를 사용하는 것이다. “아파트 옥상에는 태양이 녹슬어 있었다”와 “아파트 옥상에는 태양이 녹슬어 있는 듯했다”는 엄연히 다른 문장이다. 두 문장 모두 황혼을 묘사하고 있지만, 후자의 ‘태양’은 악력(握力)을 가지지 못하고 물러나는 뉘앙스를 풍긴다. 반면, 전자는 ‘태양’을 행위의 주체로 삼음으로써 사태의 질감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그만큼 사태를 장악하는 힘과 세계를 대칭하는 내적 논리의 차이가 있다. “나는 너를 사랑해!”와 “나는 너를 사랑하는 것 같아!”라는 문장은, 그 자체로 연인을 향한 발화자의 진솔한 마음의 차이가 담겨 있다.
이 외에도, 순전히 연상에 의한 문장 쓰기나 신문 문장을 오려서 손에 잡히는 대로 한 문장씩 배열하는 다다이즘의 방식, 하나의 문장을 시발로 하여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문장을 연속적으로 쌓아올리는 방식 등도 있다. 요즘에는 언어의 금기조차 깨져버렸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욕설로 도배한다거나, 화학 공식을 사용한다거나, 페이지를 찢는다거나, 사진과 영상을 작품에 병합하는 방법도 사용되고 있다. 특히 랩과의 협업을 통해 아예 공연을 전제로 시를 발표하기도 한다.
[고찰⑩] 시는 일상어의 특수한 사용이다.
45) 이상, 앞의 책, 13쪽.
46) 이폴리네르는 1918년도에 나온 자신의 마지막 시집을 ‘칼리그람Calligrammes’으로 명명하고, 문자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법을 선보인다. 칼리그람이 혁신적인 점은 문자와 이미지의 경계를 무너뜨렸다는 것. 문자는 애초 한자처럼 상형이었으니, 그 상형을 독립된 개체로 간주하지 않고 이미지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47) 안도현, 『그리운 여우』, 창작과비평사, 1997, 30쪽.
48) 제오르제 바코비아, 앞의 책, 25쪽.
49) A. 랭보, 김현 옮김, 『지옥에서 보낸 한철』, 민음사, 1994, 16쪽.
50) 필립 라킨, 앞의 책, 1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