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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분필을 들고 1
02화
사과소녀 1
2023.11.02. 목
by
고주
Nov 5. 2023
귀에 이어폰을 꽂고
살아생전에 갈 수 있을지 모르는 나라의 말을
듣는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6시 35분에 차에 올랐고
오르는 이 없으면 건너뛰는 신나는 질주
수원에 들어설 때는 딱 출근 시간과 마주한다.
서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차
줄을 서 기다리는 사람들
도저히 잠들지 못한 도시
이러지 않으면 굶어 죽기라도 하는가?
7시 45분, 학교 앞에 도착
엉덩이에 곰팡이가 자리 잡은 것 같다.
화장실에 앉는 자리 하나
아담한 내 독채다.
48명의 선생님 중 남 선생님은 10명이 조금 넘은 듯
중년의 근사한 신사 하나 추가했으니
경사 경사 대 경사겠지.
1학년 교실이 있는 2층 정보실 앞
쉬는 시간이 되면 청개구리 가득한 둠벙이다.
높은 소프라노가 주인인
이렇게 피가 끓는 아이들이
해가 세 번쯤 바뀌면
바람 빠진 풍선
소금 맞은 배추
말을 잃은 벙어리가 되니
다 한때다 이놈들아
맘껏 하고 싶은 대로 하렴
세월이 문제인가?
교육이 문제인가?
갑자기 시간표가 바뀌었단다.
연속으로 세 시간
처음으로 들어가는 다섯 번째 반
소문이 났는지
장터 약장수 기다리는 꼬마들 눈빛
“보충 문제가 너무 어렵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중학교 1학년에게 풀라고 하는 것은
죄입니다.
몰라도 됩니다.
용어를 제대로 아는 것
공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면 됩니다.
절대 어렵지 않습니다.”
수행평가 3점을 맞았어도 되느냐고
우리가 수학을 못 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사기가 하늘을 찌른다.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에서 대각선의 숫자를 찾아간다.
일정한 규칙을 발견하고 일반식으로 표시한다.
문제를 푸는 것보다 이 공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문제 푸는 것은 하고 싶은 사람만 하시라.
3점 맞았다는 소녀가 손을 든다.
꼭 미지수를 n이라고 해야 하느냐고.
a도 좋고 x도 좋다고 했더니.
꼭 알파벳으로 해야 하느냐고.
꼭 한 글자로만 해야 하느냐고.
질문에 봇물 터졌다.
결국 apple라고 하면 안 되느냐고.
된다고,
그럼, 그것보다 더 큰 수는 멜론으로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웃는다.
둘 중의 하나다.
바닥에 건질 것 없는 마른 우물이거나
너무 생각이 많아 왜로 가득한 천재이던지
환해지는 소녀의 얼굴에서 천사를 본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같은 분위기였는데
끝 종이 울리자 벌 떼처럼 일어선다.
자식들 들어준 척했네.
천사는 복도에서 볼 때마다 달려와 인사한다.
“사랑합니다.”
까불이 몇 명 이름을 묻는다.
개인 면담이 곧 있을 것이다.
장어튀김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여섯 점을 들었다.
갈대숲 속에서 꿩이 노는 것 몰래 훔쳐본 고사리가 들어간 닭개장.
매번 이렇게 나오는 것이 아닌데, 내가 온 뒤로 이렇단다.
혹 주방 식구와 아는 사이냐고.
목의 상태가 걱정이다.
촌놈 마라톤 하면 안 되는데.
내일은 무슨 일이 나를 또 기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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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한가운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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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신으로 모시는 고주망태입니다. 36년의 교직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이제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은 영원한 청춘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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