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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

2023.11.06. 월

by 고주

8시 20분.

우산을 쓰고

후문 앞에 서서 교통지도를 한다.

쓸리는 낙엽보다 바쁘게 교문을 들어서는 아이들.

“사랑합니다.”

나는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처음 보는 아이들도 있는데.

“안녕, 어서 와”

다음 주 월요일에는 큰소리로 해 주마.

굳이 나오지 않으셔도 된다는 학생부 선생님.

자기 몫은 해야 후련한 고주는 더 빨리 나올 것이다.

분필을 종이로 둘둘 만다.

하얀색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많이 가늘어진 실탄

가루가 날리지 않는 물 칠판용

한 개면 두 시간도 거뜬하다.

노트필기를 하는 아이는 없다.

선생님들도 교과서를 화면에 띄우고

읽으면서 수업한다.

늙다리 선생님이 나타나서

분필로 글씨를 쓰고

색분필로 동그라미를 쳐가면서

또, 칠판을 쾅쾅 두드리기까지

“할아버지 참 고생하신다.”하겠지.

용어나 초등학교에서 배웠을 공식들을 질문한다.

아는지 모르는지를 점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생각 속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간혹 초대에 응하지 않고 혼자 다른 세상에서 헤매는

길 잃은 양들이 있다.

과감하게 고삐를 채워줄 참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재미있는 수학 시간.

수학 시간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눈을 맞추고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말하고

맞는 말에는 칭찬을

특별한 생각에는 영혼을 담아 격려를


목이 터져라, 악을 쓰면서 치열하게 보내는 한 시간.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고개를 들면

학교 운동장으로 바짝 다가온 파도가 보였으면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 하늘 높이 공을 차면

멀리 파도가 마실 나간 펄밭에 공이 떨어지고

공을 찾으러 갔다가 바지락 굴 낙지에 홀려

해지는지도 모르고 노을에 묻히는 날들도 있었으면

아직도 버리지 못한 내 꿈

잃어 먹었다 싶으면 불쑥 튀어나와서

바람에 휘둘리는 나뭇잎처럼 심란하게 내 맘을 휘젓는다.

그날이 오려나?


전남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다.

학급 회의를 한다고 전 시간 5분씩 단축수업을 했다.

창문 너머로 진지한 교실이 비친다.

해야 할 것들은 거르지 않는 학교문화다.

학생 자치에 대해 아쉬움이 많았던 나다.

학교에서부터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환경이 필요하겠다 싶다.

좀 늦었지만, 많이 배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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