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눈을 감고서도 내릴 곳을 세는
전철 안의 사람들
휴대폰에 눈을 박고
게임도 음악도 영화도
원하면 언제나
나처럼 남의 말 배울 때
길을 모를 때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아저씨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장면은 사진으로
소식 알고 싶으면 자판만 누르면 되지
얼굴이 보고 싶으면 영상 통화로
휴대폰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고마운 잡스라는 양반
원통해서 어찌 눈을 감았을까?
수원역에서 뛰는 사람들을 따라 올라선 수인 분단선.
이어폰 너머로 들리는 소리, 급행이라네.
이 정도는 눈앞이 깜깜해질 정도는 아니다.
수원시청에서 내렸다, 다음 열차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매탄권선역.
야! 나도 이제 서울 양반이네.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
눈으로만 보았지, 평생 한 번도 제 손으로 만들어볼 기회가 없는 도형.
숙제로 전개도를 그려오라고 했다.
직접 접어 입체를 눈으로 확인하게 해주고 싶었다.
플라톤이 불, 물, 공기, 흙, 우주를 가장 완벽한 정다면체로 여겼던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고 싶었다.
꼭 해오겠다고 고개를 그렇게도 끄덕이더니.
연이와 민이 딱 둘.
손바닥이라도 두들겨주어야 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여자가 강한지 알겠다.
집에 가서 내 생각 안 하느냐고.
나는 꿈속에서도 만나는데 서운하다고 했다.
이쯤 되면 분위기가 숙연해져야 하는데.
시커먼스는 축구 생각만.
뚱땡이는 잠만.
까불이는 장난치느라 정신없고.
그래도 몇 아이는 눈에서 불꽃이 튄다.
저 아이들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겠지.
나머지는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고 따라가면 되는 것이고.
나가야 할 진도는 많은데, 3교시는 성교육 임장 지도다.
경계를 아느냐고?
모르니 남의 경계도 모르는 것이라고.
sex가 뭐냐고 물으니 킥킥대는 눈곱만 한 숫 조무래기들.
젠더기반 폭력의 이해, 성적 자기 결정권, 그루밍 성범죄....
묵직한 주제들이 화면에서 나타난다.
랜덤 채팅앱의 피해자가 제일 많다고.
고개를 책상에 묻는 아이들.
내가 단단히 교육받고 있다.
수요일 5, 6교시는 자유학년제 주제 선택 시간이다.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다섯 개 반에서 희망대로 왔다는데, 그냥 친한 아이들끼리 놀려고 모였다.
라틴 방진, 마방진을 알려줘도 시큰둥.
맘에 맞는 여자아이가 옆에 있는지 정신을 못 차리는 홍.
같이 방방 뜨는 어쩌면 그만한 나이 또래에 있을 법한 치마들.
벽, 아득한 벽이다.
내 직방 처방이 있다만 참는다.
너무 머리가 아프고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막판으로 가기 전 밑밥.
다음 주에 보자고.
지쳐 집에 갈 시간을 기다리는데, 교과협의회란다.
3학년 시험지를 내놓고 풀란다.
혹시 문제에 이상은 없는지, 오탈자는 없는지, 난이도는 괜찮은 것인지를 꼼꼼하게 살펴달란다.
국립학교에 대한 편견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철저하게 한다.
시험문제에 관해서는 민원도 많지만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 그냥 넘기지 않는단다.
지나온 시간들이 조금 부끄러웠다.
배워야 할 일이다.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세상의 일.
하루는 너무 짧다.
해야, 해야 좀 천천히 올라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