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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 데이

2023.11.10. 금

by 고주

와락 달려드는 찬바람

함께 걷는 어둠

힘차게 밟는 초등학교 담과 마주한 첫 번째 계단


싹 싹 싹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낙엽과의 힘겨운 싸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그것마저 듬성듬성한 내 또래 아저씨가

다 펴지지도 않는 허리를 일으킨다.

뿌드득 뿌드득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파업으로 지연돼서 죄송하게 되었다는 같은 편 여자 목소리

어제나 같은 시각에 달려오는 전철의 발소리

길게 늘어선 줄, 바로 앞 여자의 긴 머리카락

끝이 갈라지고 덜 말라 푸석한 틈으로 보이는 구부정한 흰머리 하나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를 뛰어서 달려왔으나

쉭하고 문이 닫히는 급행열차를 보고

퍼석하게 마른 입술 사이로 토해내는 한숨 소리

찡그리는 얼굴의 주름처럼 구겨진 아저씨의 툭 떨어지는 하루


아파트 사이로 난 긴 숲길

물기 머금은 나뭇잎에 비치는 찬 햇빛

꺄아악 꺄아악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청둥오리의 웃음소리

맞아!

오늘이 금요일이지

다음 주는 수능이 있어 하루 반을 벌었네.

아이 좋아라.

적토마 같은 여자아이들이 찬 복도에 털썩 앉아있다.

빼빼로 가득한 큰 봉투 옆에 차고.

담임 선생님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수학 시간에도 저렇게 밝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남자친구에게도 건넨다.

또, 받는다.

주겠다는데 굳이 받지 않겠다는 주변머리 없는 녀석도 있다.

결혼하자는 것도 아닌데 도망가기는.

자식아 줄 때 받아.

곧 춥고 배고플 때 온다.

친한 척은 다 하면서 내게 오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다.

사과소녀까지도.

그러고 보니 오늘까지 딱 10일 되었다, 이 학교에 온 지.

사랑한다는 말을 아직 흔쾌히 하지 못하는 나와 같구나.

얘들아, 내게 시간을 조금만 더 줘.

자꾸 헛소리해서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훈이를 수업이 끝나고 부른다.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죄송합니다라고.

수업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한다.

머리를 조아리고 돌아가는 녀석의 웃는 엉덩이.

다음 주는 좋아지겠지.

지우개를 잘게 썰어 손톱으로 튀겨 여자아이들을 맞추는 홍.

바람에 튀는 도깨비풀 같은 반응에

이빨이 다 쏟아질 것 같은 해바라기가 되는 녀석.

부러 이름까지 외웠고, 두 번이나 경고했음에도 멈추지를 않는다.

회전체, 원기둥, 원뿔, 원뿔대.....

용어와 성질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순서도 바뀌고 빼먹고

강물에 던져지는 평평한 돌멩이

고놈이 쉬지 않고 던지고 있는 것이다.

파르르 파르르 떨리는 내 손끝.

끓어오르는 가슴

하얗게 뜨는 머릿속

살얼음판이 된 교실

내 언 얼굴과 날카롭게 쏘는 눈빛을 보았을 것이다.

“홍이는 뒤로.”

힘들게 수업을 정리하고 문제를 풀게 한다.

“네가 분위기를 흐리면 선생님이 자꾸 수업과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잖아.

말은 못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힘들어해.

아마 너를 욕하고 있을지도 몰라.

이게 마지막이야.

알았지.”

코가 쏙 빠져서 들어가는 녀석이 짠하고 안쓰럽다.

결국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이제 초등학교 졸업한 너희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 준다는 생각까지 할 수 있겠느냐.

그럼 어른이지.

다들 와싹하고 웃었지만, 홍이는 웃지 못한다.

과연 다음 시간에는?

이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도를 닦는 일이다.

염색한 머리의 검은 기도 하얗게 변하고 있다.

도인이 돼 가고 있다.


임용고시

반 표시판 위를 덮는 흰 종이

유치원

내일은 선생님들을 뽑는 임용시험이 있는 날

우리 학교는 시험장

무슨 경비가 나왔다며

어제 나누어준 샤인머스캣 한 송이

눌려 뭉개진 몇 알

떨어진 몇 알

딱딱 붙어 웅크린 많은 알

의자에 앉아 시험을 치를

피곤에 절은 선생님들

희망과 절망을 양손에 든 선생님들의 두근거림이

시험지보다 먼저 깔려있다

잘 숙성돼 엄청나게 달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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