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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4. 화
by
고주
Nov 18. 2023
<내림>
구급차 경찰차 소방차를
유난히도 좋아하는 내 손녀 채원이는
경찰차 구급차를 들고 삐용 삐용
바쁘게 달려가는 시늉을 하고
소방차는 불 불 불 하며
높은 데서 뛰어내린다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뭐냐고 물으면
숨도 쉬지 않고 죠리퐁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은 하면
눈알을 몇 번 굴리다가 막걸리
저도 강원도 씨라고
속살이 노란 고구마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제 휴대폰 동영상으로 주는 것은
맛있는 사탕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대답하기 싫으면 못 들은 척
무엇만 하려면
자꾸 옷소매를 걷어 올리는 이유는 뭐냐?
어디서 그런 것을 배웠어?
차만 타면 하부지 집에 가느냐고 묻는다는데
외할아버지 피가 엄마에게로
또 너에게로 흐른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
원 없이 가자고 해
또 해봐
넌 그래도 돼, 이쁜 천사야
넓이를 구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넓게 퍼지는 검은 눈동자들을 보는 순간 가슴이 꽉 막혔다.
제자들과 모임을 하고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는데.
일찍 떠지는 눈, 일어나 노트북을 켠다.
다양하게 올라와 있는 자료들을 뒤진다.
내가 배웠을 때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일반화해 가는 과정들이 쉽게 보이지만 극한이고 적분이다.
부피까지 자료를 찾고 수업의 순서를 정하고 나니 눈이 까칠하다.
다시 파고 들어간 동굴.
알람을 듣고 일어나기는 또 처음이다.
한 번 헛디딘 발걸음은 되돌려도 절뚝인다.
나름 노력한 결과는 있지만 까무러칠 정도는 아니다.
미리미리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하겠다.
교실 뒤편으로 자신들의 꿈을 적어놓은 액자들이 쭉 늘어서 있다.
유치원, 초등학교를 포함한 선생님은 많다.
여학생들이 많아서 그런지 수의사도 제법 된다.
연예인, 운동선수, 부자,........
우리 때 많았던 대통령은 하나도 없다.
확실히 인기가 없는 모양이다.
선물 중개인이 뭔고 했더니 주식에 관련된 것인가 본데, 잘되거나 망하거나 둘 중 하나다.
아버지라고 쓴 아이는 하나도 없다.
중학교 1학년이 바라보는 세상이 너무 좁아서 안타깝다.
우주 항공전문가, 재생에너지 개발자, 천왕성 개발자 뭐 이런 것은 없을까?
제힘으로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꿈들이 현실성은 가까울지 몰라도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인데.
시간이 갈수록 한없이 쪼그라지는 꿈인 것을.
이 학교에 오기 전 이발을 했는데, 금세 머리가 길어 귀 위로는 새 날개처럼 들떠 있다.
속은 하얗고 겉은 바랜 검은색과 갈색이 어색한 동침이다.
머리를 깎으면 검은색은 줄어들고 속의 하얀색이 넓어질 것이다.
타조처럼.
알 만큼 알았을 것이니 그냥 둬 말어?
그나저나 날은 좀 풀려야 할 텐데.
<아버지의 외출>
100세에 한 살 부족한 당숙 뵈러
둘째 아들이 운전하는
불편한 스타렉스 의자에 흔들리며
찾은 강진의 요양원
물기 다 빠진 검불처럼
앙상한 당숙님
처음에는 얼굴도 알아보시지 못하셨다
해방되던 해
길림성으로 이주했던 일가족이 내려왔다,
올라가면서
장마철 하늘
구름 몰려오듯 한, 세상이 불안해
남겨놓은 어린 아들
문은 닫혀버렸고
말없이 소처럼 땅만 보고 사셨다
누구를 원망하는지
무엇을 바라지는지를
아무도 아는 이가 없다
입 꼭 다물고 가슴속에만 심고
홀로 키워오셨으니
해에게도
달에게도 손가락질 한번 당하지 않으셨다
뚜벅뚜벅 걸어오셨다
부축받아야만 일어서실 수 있으면서도,
오래 살고 싶으시단다
길림성에는 가고 싶지 않으실까?
피붙이 중에 제일 의지했던 누이 뵈러
막내딸과 장성의 요양원으로 가셨는데
몸은 구부정해도
눈빛만은 파랗게 날이 선 대쪽 같으신 분
운동 좀 하고
기운 차려야 할 것 아닌가 동상
엄한 말 없는 꾸짖음
살아서는 마지막 보는 것으로 해
동상
꼭 보고 싶으시다고
나섰던 밖 출입
다녀와서 며칠을 누워 계셨지만
맘속은 막힌 것이 뻥 뚫리셨으면
박차고 일어나 휘휘 동네 마실 나가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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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차
소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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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신으로 모시는 고주망태입니다. 36년의 교직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이제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은 영원한 청춘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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