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닮은 네가 참 밉다.
유독, 별일이 아닌데 아이에게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화남의 포인트가
항상 같다는 것이 이상했다.
화를 내고 난 뒤, 상황을 돌아보면 별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반성하면서 그 상황이 되면 아이에게
똑같이 화를 내는 내가 도무지 이해되질 않았다.
남편도 나와 같았다.
남편은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고,
입에 물고 있을 때 유독 화를 많이 낸다.
예전에 시어머님께서 나에게 남편이
어린 시절 많이 먹지 않아서
속상하셨다고 이야기하셨다.
남편을 보고 알았다.
투사다.
아이에게 못난 내 모습을 투사하고 있었다.
내가 화내는 포인트. 나도 알고 있지만
숨기고 싶은 나의 약점이다.
나는 숨기고 싶은데, 아이의 그런 모습이 마치
아이가 나의 약점을 들춰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불편한 것이다.
그리고 화내는 이유가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과거의 상처다.
나 자신이 어렸을 때, 아이가 겪은 그 상황에서
나 역시 혼이 났을 가능성이 크다.
어린 시절 그러한 상황에 혼이 난다는 것을
겪어 온 내가,
현재도 비슷한 상황을 보게 되면 좋지 않았던
감정들이 살아나서 불쾌해진 것이다.
만약 아이에게 별일이 아닌데 화를 내고
죄책감을 느끼는
그 상황이 이제 싫다면 그런 상황이 오게 되었을 때, 의식을 한번 할 필요가 있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상황을 분석한 뒤,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너 지금 왜 화가 났니?”
그다음 무의식 속에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내가 “지금 그 모습이 내가 부족하고
싫어했던 모습이야.”라고 대답을 한다면,
그 모습도 내 모습이라는 것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나도 인정을 해줘야 한다.
내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괜찮아. 지금은 많이 좋아졌잖아.
그러면 뭐 어때. 잘살고 있잖아.”
자꾸 반복되는 그 상황마다 그런 나를 인정하고 무의식의 나에게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런 나도 괜찮게 느껴지고,
고치려고 노력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받아들인 채 감정을 조절할 수도 있다.
혹시나 무의식의 내가 “어린 시절 그 상황에
많이 혼이 나봐서 무섭다.”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역시나 무의식의 나에게 이야기를 해 준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라고
그 상황으로 돌아가서 그때의 나를
다독거려 줘야 한다.
무의식 중에 싫어하는 내 모습.
과거에 상처받았던 내 모습을 인정해 주고
위로를 해주다 보면
아이에게 별일 아닌데 화를 내는 일들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미래의 아이가 내가 싫어했던 모습을
가지는 것이 싫다면 내가 싫어했던 내 모습.
상처받았던 나의 모습을 인정해 주고 위로를 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