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큰 딸입니다.
열심히 잘 사시면서도 항상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죠.
술이 아니면, 행복을 느낄 수 없었던 아빠.
아빠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금주.
매일 술을 마시지 않아야지 다짐을 하시고,
다음 날 차 트렁크 구석에 몰래 숨겨놓은
소주 한 병을 아무도 안 보이는 곳에 가셔서
급하게 마시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한심하게 느껴졌을까?
본인이 얼마나 못나 보였을까?
이렇게 밖에 못 하는 자신이 얼마나 미웠을까?
스스로가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오죽하실까?
가족들이 그런 자신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을까?
하는 마음도 들어서 당신을 생각하면 참 안타깝고 마음이 아립니다.
하지만 원망도 많이 했어요.
무엇보다도 엄마를 힘들게 한 것.
그리고 그렇게 힘들어하는 엄마에 대한 책임을
저에게 떠넘기신 것.
본인이 미안해서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
젊으셨을 땐, 건강도 자부하시고
술을 많이 드시긴 했지만,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시며 활기차고 백 점짜리 아빠였는데.
점점 나이가 드시면서 아빠는 술을 드시지 않으면 대화도 없으셨고, 눈빛도 잃으셨어요.
술이 아닌, 우리는 아빠의 행복에 포함이 되지
않은 것 같았죠.
아빠는 섬세하고, 배려심 많고,
외로움을 많이 타셨어요.
어느 순간 아빠의 눈빛에서 공허함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슬퍼 보이는 눈빛.
현실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는 눈빛.
행복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을 도피하고,
현실 속에 못난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서
술을 찾고 마시며 자신만의 세계로 빠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지금 그런 마음이거든요.
예민함과 우울도 유전인지, 나이가 들수록 감정도 아빠와 많이 닮아가는 것을 느껴요.
마음이 왠지 점점 공허해지고, 괜히 슬퍼져요.
분명히 행복한데 행복하지 않은 일상이
너무 버거워요.
이러다가 점점 나만의 동굴 속으로
숨어버릴까 봐 무서워서,
SNS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나마
내가 살아있다는 표시를 하기 시작했죠.
SNS 안에서의 나는, 전혀 못나지 않아요.
SNS 게시물은 나의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나에게 욕구가 충족되고,
어느 순간 현실 속에 못난 나는 잊고,
SNS 속의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처럼 여기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 친구처럼 느껴져요.
현실의 나는 나의 모습이 아닌 것 같이
이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죠.
그리고 내가 올린 게시물에 ‘좋아요’가 달릴 때의
그 느낌이 마치 내가 인정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자꾸만 게시글을 올리고
확인을 하면서 '좋아요' 수가 많이 없으면
마치 나의 가치가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내가 너무 한심한 것이에요.
그 순간 느꼈죠. 아빠가 이런 기분이셨겠구나.
제가 아빠의 기분을 느껴보니,
이해가 가면서도 두려웠어요.
아빠처럼 살게 될까 봐.
아빠를 사랑하지만,
아빠처럼 사는 것은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아빠의 손녀가 또 저를 닮았어요.
이 아이도 유튜브에 빠지면서
현실을 살지 못하고 있어요.
현실 속에 못난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면서
아빠, 아빠의 딸, 그 딸의 딸이.
자신만의 가상의 세계에 빠져버렸어요.
그래서 각자 얻은 것은 우울증, 공황장애, ADHD.
딸마저 그러니 저의 머리에 망치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차려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현실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가 못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우리는 도파민에 의한 행위 중독에 빠진 것이에요.
아빠, 저는 도파민 충전하면서
쾌락을 느끼는 것이 아닌,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을
하나씩 찾아서
아빠와 공유를 해볼까 해서 이 편지를 남깁니다.
우리 앞으로 잔잔한 행복을 느끼면서
남은 인생 잘살아 보아요.
당신을 보면 아프지만, 사랑합니다.
From. SNS에 빠져 사는 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