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을 위해서 더는 참지 않기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by 호영

우리가 마시는 물도 정해져 있는 한계가 있고,

먹거리에도 한계가 있다.

지구에 있는 모든 것에는 정해져 있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사람도 지구에 있는 생물체 중 하나이다.

사람의 인생도 어찌 보면 물 흐르듯이

지구의 생물체가 살아가는 과정 중

하나이기 때문에 정해져 있는 한계가 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인간에게는 평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사춘기 시절 사고 치고, 부모 속 꽤 썩였던

아이가 커서는 번듯한 성인이 되어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는 사람이 있지만,

사춘기 시절 칭찬을 받으며 자랐던 모범생이

성인이 되어서 늦바람이 나는 경우도 있다.


“행복 총량의 법칙.” 행복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다 누리고 행복하게 잘 살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고생하는 경우도 꽤 많고,

나이가 들어서 팔자가 피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잔잔하게 일정한 행복을

유지해 가며 사는 경우도 있다.

인생에도 정해져 있는 한계가 있듯,

사람의 감정에도 정해져 있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절대 무한하지 않다.


나의 일상 속에서 참을성에도
정해져 있는 한계가 있다.


만약, 내가 무엇인가 미친 듯이 참고 있다면,

그만큼 참는 에너지를 이미 소모하였으므로

다른 것에서 참지 못하고 터지고야 만다.

예를 들어 만약 다이어트를 한다고

먹고 싶은 욕구를 꾹 참는다.

먹고 싶은 욕구를 참느라 에너지를 소모하였으므로

또 다른 성 욕구나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것은 어려워진다.


그리고 참는 에너지도 나의 에너지라서

그 에너지를 다 써버리면

다른 것에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다.

중독행위를 참는 에너지를 기르기 위해서는

내가 평소에 참는 에너지를

어디에 가장 많이 쓰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아마도 중독행위를 하는 대부분 사람이 가장 많이 참는 것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일 것이다.

감정을 계속 참아낸 것이다.


화가 나도 제때 화를 내지 못한다.

짜증이 나도 제때 짜증을 풀지 못한다.

슬퍼도 마음껏 슬퍼하지 못한다.

우울해도 우울하다 표현하지 못한다.

외로워도 외롭다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지쳐도 꾹 참고 한다.

심지어 긍정적인 감정도 참아낸다.

기뻐도 크게 기뻐할 줄 모른다.

행복해도 행복한 것인 줄 모른다.

즐거워도 웃는 방법을 잘 모른다.

기특해도 칭찬을 잘 못 한다.

이런 식으로 일상에서 감정 하나하나를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꾹꾹 눌러 담는다.

참고 또 참는다.


이렇게 참으면서 에너지를 다 소진을 해버려서

지치고 무기력해진다.

결국 다른 것을 시도할 수가 없거나,

집중을 할 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실패가 반복된다.

또다시 감정을 참게 되고, 중독행위를 막아낼

에너지가 없어서 반복하고

급기야 자존감이 계속 떨어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감정표현에 참는 에너지를 아껴야

중독행위를 참아낼 수 있다.

감정을 참지 않기 위해서는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나의 감정을 알고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감정표현 연습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 일기다.


먼저 나의 감정을 알아내고 마주하기 위해서

아무 수첩이나 핸드폰 메모장을

나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은 다음 내가 느끼는

감정을 하나하나 다 적어낸다.

욕설도 괜찮다. 문장, 문맥 상관없이

내 머릿속에 있는 감정들을 다 적는다.


그리고 자기 전 일기장에 감정 쓰레기통에

적어놨던 감정들을

그때의 상황과 맞춰서 정리해서 적어본다.

‘내가 이런 상황에서 어떠한 감정이 느껴졌으니,

다음에는 이렇게 표현해야지.’

머릿속에 그 상황을 다시 그려보고

어떻게 할지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그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말 그 상황이 일어났을 때,

머릿속으로 그렸던 시뮬레이션대로 하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렇게 나의 감정을 참지 않고 표출하는 연습을

하면서 참는 에너지를 감정에 더는 쏟지 않고,

중독을 참는 힘을 남겨두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에너지로 정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하자.


To. 아빠에게.

아빠, “행복 총량의 법칙” 그동안 삶이 힘들었다면, 이제 분명 행복한 일만 남았을 것에요.

아빠에게 정해진 불행은 이미 다 썼고,

행복만 남았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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