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헌 단편소설집_4
1.
반지하는 항상 곰팡이의 콤콤함이 존재했다. 희미하게 스며든 곰팡네, 그 콤콤함에 코 안쪽 목구멍과 연결된 알 수 없이 깊은 골짜기가 항상 꺼끌 거렸다. 그 곰팡이로 온 동네 전체가 미열을 앓는 듯했다. 그 자연의 섭리처럼 공중에 떠다녔던 곰팡이 포자들을 항상 새벽에 나를 일깨우곤 했다. 피곤해 기절하듯 잠들어도 항상 새벽 4시쯤이면 눈이 떠졌다. 그럴 때면 어두운 방안 속에서 귓속에 심장이 쿵쾅 소리만 가득히 들렸다. 때로는 나 자신이 곰팡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온몸에 염증이 가득 차 눈이 붓고 눈꼽이 많이 끼거나, 손톱 옆 얇은 살이 벗겨져 고름으로 차 붓거나 하는 그런 것들. 어쩌면 축축한 옷을 계속 입고 있어 어느 순간 불쾌함을 잊은 채 무겁게 살아가는 느낌. 이전에 한번 엄마, 동생과 같이 집안의 온 벽지를 뜯어내고 곰팡이를 없애려 한 적도 있었다. 만물상에서 산 7천 원짜리 곰팡이 제거제를 벽이 적셔질 정도로 뿌렸지만 오히려 곰팡이는 내성이 생긴 듯 화학 물질 냄새와 함께 더욱 증식해 갔다. 거실의 벽, 화장실 바닥 타일 사이사이의 시멘트, 장판 밑, 베란다 세탁기 바닥까지.. 마치 집 곳곳에 피부병이 걸린 마냥 온 곳에 곰팡이가 번져갔다. 그래서 나는 매 순간 환기를 시키고 싶었다. 바깥의 뿌연 미세먼지를 동원해서라도 집안에 떠다니는 곰팡이 포자를 쫓아내야 했다. 반지하에 환기를 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선 현관문을 열고, 문을 열자마자 나오는 - 지상으로 향하는 - 높은 계단 위에 청동색 문을 연다. 그리고 곧장 밖으로 나가 창문 밖 어젯밤 누군가 뱉어냈을 토사물이나 누군가 두리번거리며 버리고 갔을 검은색 쓰레기봉투가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그제야 지하로 내려와 절반의 빛만 들어오는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그렇게 매번 의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조그마한 창문에는 평상시에는 작은 돌들과 먼지가, 시끌벅적할 때는 담배꽁초와 침이 집으로 새어 들어왔다. 나는 인간일 때부터, 그때부터 사람들의 발 밑에서 무게를 견디는 땅의 고충을 배워야 했다.
2.
“은영 씨, 괜찮아? 엄청 피곤해 보여”
나비가 되는 첫 징조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었다. 피곤함, 그 이상을 눈치챈 사람들은 나에게 묻곤 했다.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어디 심하게 사고를 당한 건 아닌지… 나는 사람들의 주제넘는 걱정과 위로가 다가올 때, 그럴 때마다 거울을 통해 나 자신을 쳐다보았다. 눈은 빛이 반사되듯 파래져 있었고 각이 지고 있었다. 마치 수백 배 확대된 꿀벌의 눈처럼, 혹은 초록색 똥파리의 눈에 빛나던 수많은 육각형들처럼.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징조였다. 처음에는 - 확실히 피곤해졌구나- 싶어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파란색 눈은 세상을 더욱 각져 보이게 만들었고 그럴수록 더욱 많은 정보가 내 눈에 들어왔다. 각진 하늘, 각진 신호등, 각진 나의 남자친구… 청혁은 세상이 더 각지기 전에 나에게 병원을 가자고 했다. 안과, 내과, 피부과, 산부인과까지. 모든 병원에서는 원인을 찾을 수 없다 했다.
“일단 좀 쉬시고, 앞으로 증상이 더 심해지면 오세요.”
오히려 의사들은 나와 청혁에게 핀잔을 줬다.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 이런 걸로 병원에 오냐는 둥, 혹은 관심조차 없이 툭 내뱉은 의사들의 말. 그때쯤 이미 그 의사들이 여러 개의 육각형으로 번져, 여러 개의 사물로 보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병원 대기시간에 지친 남자친구가 내 옆에서 잠깐동안 어깨를 들이밀면, 남자친구는 여러 거울에 비친 사물이 된 듯, 그가 여래개의 육각형으로 나에게 비쳤다. 점점 나비의 눈이 돼 갈수록,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각이 넓어지고 있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길거리 지나치는 사람들의 눈빛, 몸짓, 속삭임이 모두 느껴졌다. 내 뒤에는 항상 나의 뒷모습을 구경하고 속닥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버하지 마, 아무도 너 신경 안 써, 사람들은 너한테 하나도 관심 없어”
항상 남 눈치를 보며 기죽어 사는 나를 보며 했던 동생의 거친 조언은 거짓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남을 신경 쓰고, 참견하고 , 평가한다. 사회는 사람들의 시선을 억지로 무시하게 강요했고, 그 시선을 인지하는 사람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듯했다. 나는 그곳에서 나비의 눈을 얻어 진실을 봤다. 사람들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 보는 것을 좋아하고, 평가하고, 속삭인다. 나는 그것을 나비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3.
청혁. 나의 오래된 남자친구. 키가 작고 겨울철 마른 나뭇가지 같은 사람. 가끔 피곤할 때면 입에서 어금니 썩었을 때의 코끝 찡한 쓴 내가 나는 사람. 그는 나비로 변해가는 나를 보고 말했다.
”가루는 안 떨어져서 다행이네.”
“나비가 원래 가루 떨어져?”
“원래 그렇지 않나, 그런 종류들은. 너 영화 팅커벨 안 봤어? 개 날아다닐 때마다 가루 흘리잖아.”
팅커벨과 나는 달랐다. 팅커벨은 사람에 나비 날개만 달린 것이고, 나는 육각형이 여러 개가 수없이 이어진 하나의 눈, 더듬이가 있는 진짜 나비가 되어가고 있는 건데..
청혁을 처음 만난 건 조용한 겨울의 흡연장이었다. 청혁은 머리가 기준 없이 자라 온 사방으로 삐죽거리는, 멀리 서봐도 누구보다 덥수룩한 남자였다. 그날의 바람은 날카롭고 매서웠고 그는 추운 듯이 온몸을 꼰 굼벵이 마냥 겨울 점퍼를 목까지 올리고 조금씩 연기를 내뱉고 있었다. 그는 키가 작아 더 눈에 띄곤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옆에 서서 불을 붙였지. 조용한 가로등 밑에서, 내가 뱉고 있는 게 담배연기인지 한 겨울의 입김인지도 모른 채. 그곳은 길고 세로로 얇은 양철의 꽁초 통이 있었는데도 주변 바닥에 담배꽁초가 가득했다. 아마도 동네 사람들의 침과 같은 타액, 깊은 한숨과 후회로 가득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곳에서 그를 처음 만났고 그는 나를 보며 처음으로 말했다.
”쪼끄만한애가 담배를 다 피냐”
작은애가 작은애보고 핀잔을 주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처음에 그는 나를 고등학생으로 알았었나.거친 피부 마냥 울룩불룩한 흰색 콘크리트 벽, 어두운 골목 커브 길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부딪치지 않게 하기 위해 가로등이 빛나던 그곳에서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공사장을 다니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연봉으로 인생을 재지 않고, 일당으로 인생을 점쳐야 하는 삶. 다행인 것은 우리 주변에는 항상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부수고, 버리고, 싸우고, 투쟁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한창 뜨거웠던 그 땅에서 버텨야 했고, 그를 자주 마주쳤다. 우리 동네를 부수기 위해 온 그는 나를 볼 때마다 말했다.
쪼그만한애가..
밤에 겁도 없이 어딜 …
대충 주름이 패일대로 패인 노인처럼 시작한 말은 항상 담배 연기를 뱉으며 혀를 끌끌 차는 것으로 끝났다. 그는 나를 걱정해 준, 나의 인생에서 나를 신경 써준 두 번째 사람이었다. 그의 툴툴 거리는 말투에는 항상 나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를 따라다녔다. 나도 그를 걱정하고, 염려하고 싶었다. 항상 무엇인가를 부수고 검은 회색 콘크리트로 무엇인가를 덮어버리는 공사현장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무척이나 걱정하고, 무척이나 염려했다. 나는 남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을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를 보며 이게 사랑의 각도일까 싶었다. 360’로 나와 붙어있고, 90’로 서로를 걱정하고, 180’로 나를 떠나가는. 청혁은 나를 걱정한 두 번째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걱정했던 첫 번째 사람. 청혁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나비 같아졌다. 이마에서 혹 비슷한 것이 자라기에, 나는 그것이 맨 처음에는 뿔인 줄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아직 나비일지, 꿀벌일지, 아니면 장수풍뎅이 일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마의 양쪽 끝에 툭 튀어나와 자라나 온 혹. 그 혹은 나에게 일종의 레이더 같은 역할을 했다. 걱정의 레이더. 염려의 레이더. 혹은 사건의 레이더.. 이 더듬이 레이더는 항상 나에게 경고했다. 저곳은 위험지대야. 저곳은 천적이 있지. 저곳은.. 이곳은… 다양한 방향으로 다양한 걱정을 나에게 선사했다. 나는 그 이후로 매 순간 염려하며 살아가야 했다. 어쩌면 사회는 걱정이 있어야 돌아가는 공장 같았다. 걱정을 윤활유 삼아, 염려를 동기삼아.. 나는 그럴 때마다 더듬이를 만지며 말했다.
“내가 사는 곳은 어딜 가든 위험한 곳이었구나”
청혁은 그런 나를 보며 크게 웃었다. 내 말에 동조하거나 반박하기보다는 그냥 나를 보며 웃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서 더욱 깊은 사랑을 느꼈다.
어느 날은 반지하 현관문 앞에 우편 봉투 하나가 성의 없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집배원이 계단 위에서 반지하 현관문 앞으로 툭 던지고 갔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직업과 연령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여전히 지하로 내려오기 싫어했다. 그 성의 없이 던져진 우편에는 정부 차상위 계층에게 제공하는 직업 연계 프로그램이 적혀있었다. 집에 가끔씩 들어오다 아예 잠적해 버린 아빠, 집에서 누워 항상 말라가던 엄마, 어렸을 때보다 훨씬 더 키가 커졌지만 여전히 바깥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는 남동생을 데리고 살고 있는 나는 정부의 특별 관리대상이었다. 정부에서는 마치 우리에게 자랑스럽듯 말했다. 일을 하면 돈을 주겠다고, 열심히 살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을 가르쳐 주려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너네에게 돈을 그냥 줄 수 없으니 일을 해서 돈을 받아가라는 식이었다.
나의 더듬이가 점점 더 커지고 구부러져 나의 시야의 윗부분의 끝에 들어올 때쯤, 나는 정부가 연결해 준 일을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비가 되기 전에, 나는 밖에 나가야만 했다. 엄마가 더 마르기 전에, 동생이 더 밖에서 나돌기 전에. 나의 주 업무는 동네에 하나뿐인 오래된 2층짜리 동사무소에서 서류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동사무소 바닥의 주황색 마루는 걸을 때마다 토닥토닥 소리가 났다. 접수처 앞 마루는 심히 해져 우유가 흘러 번져 보이는 것처럼 보이곤 했다. 그곳은 항상 동일하고, 일정하게 흘러갔다. 항상 거부당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기 위해 매일 같은 시간에 방문하는 할머니, 부러진 다리로 산재 신청을 하러 온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무엇인가를 열심히 작성하고 제출하고, 또다시 작성하고 제출하기만을 반복하는 젊은 여자. 마치 정해진 스토리가 있는 마냥,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그 정적이 공간에서, 어떤 예상외의 사건도 발생하면 안 되는 그 공간에서 아주 단순한 일을 했다. 1층에 서류가 생기면, 2층의 해당 부서에 옮기고, 옮기는 일이 끝나면 대기하는 일. 그 누구도 할 수 있는 일. 나는 그 누구도 쉽게 하는 일을 은수 언니에게서 배웠다. 은수는 내 첫 직장의 전임자였고 그녀는 그곳에서 곧 나갈 사람이었다. 그녀 또한 차상위 계층의 통지서를 받고, 시청 안내 공무원의 절차를 밟아 이곳에서 일을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서류는 여기에 있으면 안 돼. 보안서류는 2층으로 곧장 가야 하는 서류야”
“도장은 이 마지막 선을 넘으면, 다시 찍어야만 할 거야”
그녀는 마치 자신이 여기 없으면 절대 돌아가지 않는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그런 그녀가 좋았다. 그 누구도 관심없는 일을 점심시간 20분을 사용해 가며 마무리하는 그녀, 싸구려 보세지만 항상 보풀을 열심히 없앤 티가 나는 옷을 입은 그녀, 집중할 때 겹쳐지는 턱살이 눈에 띄는 그녀. 하찮은 일에도 항상 자부심이 느껴지게 일하는 그녀의 모습이 좋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잘 따랐다. 종종 동사무소 사람들은 풍요롭게 뚱뚱한 그녀와 거칠게 마른 나를 보며 웃곤 했다. 그녀 역시 차상위 계층이었지만, 나와 같은 듯 달랐다. 나는 일을 대하는 태도, 시선을 견디는 법, 묵묵히 항의하는 법을 그녀에게서 배웠다.
“여기 다 좋은 사람들이야. 착하고 서로 챙겨주려고 노력해”
그리고 빤히 나를 쳐다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너는 이뻐서, 아마 더 좋아하실 거 같아 다들”
그녀가 나를 보며 말을 할 때, 나의 더듬이가 찌르르 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듬이가 꼭 위험한 것 이외에도 반응하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도. 혹은 누군가를 공감할 때도 더듬이 끝 부분이 찌르르 떨며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런 소소한 알림을 주던 더듬이가, 가끔은 나에게 크게 쓸모가 있었다. 매번 찾아오는 빚쟁이들을 탐색하는 일, 어디에서부터, 어떤 걸음걸이로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나의 더듬이는 모든 것을 캐치해내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 집에 가까이 다가오면, 그리고 어두운 반지하의 계단에 내려와 현관문 앞에 서있을 때면, 마치 강아지의 꼬리가 힘차게 흔들려 엉덩이가 함께 흔들리듯 나는 더듬이와 함께 나의 머리 또한 크게 흔들렸다.
-안에 있는 거 다 알아-라고 말하듯이 사채업자들은 문이 쾅쾅 두드렸다. 그럴 때마다 온 집안이 지진이 온 마냥 흔들렸다. 현관문의 둥근 철쇠 손잡이가 좌우로 반바퀴씩 돌아갔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이불 깊숙이 들어가 흔들리는 더듬이를 잡고 있어야 했고, 엄마는 내 옆에서 숨을 얕게 쉬고 있어야 했다. 나는 그때마다 잠깐 죽어있으려고 노력했다. 두려움도, 어둠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아버지가 만든 빚(정확히는 아버지의 친구가 만든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절대 들키면 안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나가면, 나와 엄마는 잠깐동안 이불을 걷고 숨을 크게 내쉬고 들이셨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반은 지하, 반은 지상이 보이는 절반의 창문으로 어떻게든 안을 들여다보려는, 무릎을 꿇은 채 우리를 성배 하듯 창문을 훔쳐다 보는 빚쟁이들의 끈질긴 행위가 끝나고서야 우리는 다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 빚쟁이들이 이전에 훔쳐갔던 나의 전화번호부로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을 때 고모, 이모부 같은 나의 허술한 거미줄 인맥의 끝자락에 있는 인물들의 걱정하는 안부 연락이 올 때 말고는 우리는 정말 자유로웠다. 이전에는 집 밖을 나설 때, 항상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들을 걱정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듬이가 그들을 탐색하였고 나는 그들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누군가 우리 집 앞에 대기하고 있다던지, 혹은 나를 뒤쫓고 있다던지의 모든 행위가 감각으로 느껴졌다. 나는 곧 계속 나비가 되어갔고 혹은 나비가 되어 가야만 했다.
4.
정부가 연계해 준 직장의 월급은 하루 살기에 풍요로웠지만, 한 달 이상을 버티기는 애매했고 빚을 갚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항상 월급 명세서에서는 다양한 돈이 빠져나갔다. 그중에서 나는 현재보다 미래를 위해 써야 하는 돈이 눈에 거슬렸다. 미래에 받을 연금에 대한 값, 미래에 아플 병원비 값. 미래 걱정에 대한 값을 지불하다 보니 나에게 남는 것은 정말 하루 마무리를 위한 저녁값, 엄마를 위한 약값, 가끔씩 집에 들어와 자고만 나가는 동생의 용돈 값.. 그 이상은 어려웠다. 돈을 벌기 위해 하루를 쓰는데, 하루 그 이상은 가지기 힘든 상황은 너무나 정직했다.
“나는 그런 일 못해. 한번 발들이면 못 빠져나올 거고, 생활은 일정할 거야”
국가 연계 일자리를 알아보라는 나의 권유를 청혁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누가 들으면 번듯한 일자리가 있는 친구에게 대박 사업을 같이 하자고 제안한 것처럼 들리게 대답했다. 그는 하루 벌어 하루를 못 살아가는 삶을 살아갔지만, 그 불안정한 삶보다 고정적인 삶이 더 머저리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그가 바보 같으면서도 좋았다. 불안하게 휘청거리면서 걷는 삶. 누군가가 도와주고자 해도 손을 뿌리치고 고집 있게 나아가는 삶. 마치 휘청거리며 사선으로 날아가는 나비 같았다. 나는 그를 정말 사랑했다. 나는 어쩔 때 그에게 머리를 불쑥 들이밀어 나의 더듬이를 한없이 시험해 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더듬이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럼 나는 그에게 머리를 더욱 가까이 갖다 대었고, 그럴 때마다 그의 귀와 목, 그 어중간한 사이에서는 오래 이어폰을 낀듯한 고소한 냄새가 나곤 했다. 청혁은 나의 더듬이가 반응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의 피부는 시간이 갈수록 얇은 껍질이 벗겨지듯 탈피를 했다. 가루 같은 각질의 형태보다는, 얇은 실리콘 재질이 벗겨지는 느낌. 어느 순간 몸이 너무 피곤하다 싶어 홀몸으로 거울을 쳐다보면, 얇은 피부가 들떠 살 껍질과 피부사이에 얇은 공간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얇은 껍질의 안에는 검은색 반점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곧 시간이 지나 피부가 완전 벗겨질 때면 그 반점들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황색 피부에 검은색, 하얀색 점들이 가득한 나의 피부. 누가 보면 멍이라도 든 듯 오해가 생길법한 피부였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나비가 되어갔다. 반면 사람들은 나의 변화를 모르는 거 같았다. 그것은 엄마, 동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가끔씩 엄마는 나의 변해버린 피부를 쓰다듬고는 나를 보며 웃을 뿐이었다.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말을 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은 점점 더뎌갔고,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닫아버렸다. 나도 곧 정말 나비가 된다면, 곧 입이 막히고 엄마처럼 말을 더듬거리거나, 어느 순간부터 말을 하지 못하겠지. 나는 곧 엄마를 닮았나 보다.
“얼굴 좋아 보이네”
정말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동생은 나에게 말했다. 조그마하던, 울기 바빴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목소리를 깔더니, 동네의 보스처럼 행동하곤 했다.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엄마 좀 챙겨”
나는 곧 없어질 사람처럼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나비가 된다고 해도 나는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자신의 혐오 때문에 폭력을 참지 못하고 떠나버린 아빠와 나는 달랐다. 다만 눈이 더 나비 같아지고,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붙고, 더듬이로 모든 세상을 인식해야만 할 때, 그때 엄마가 나를 못 알아볼지, 내가 엄마를 못 알아볼지 모르기에 다시 한번 동생에게 단단히 말했다.
“엄마 좀 챙겨”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동생은 나를 몇 초 정도 쳐다보고 또 자기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집에 들어와 잠깐 잠을 자고 나가거나, 냉장고를 열어 멸치볶음, 무말랭이를 먹고 다시 나갈 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동생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일을 시작하고 반년이라는 나의 시간은 매우 빠르게 지나갔다. 무엇인가를 옮기고, 회색 종이봉투를 접고, 파지를 하는 일.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일. 그런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들에 지치지 않도록, 주변 회사 사람들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직장 동료들은 나와 청혁을 보고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저녁 6시 30분, 퇴근시간이 되면 그는 항상 동사무소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날 공사장 일이 있었다면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일이 없었다면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며 나를 기다렸다. 퇴근하고 나를 기다리는 그를 쌔게 앉으면 그의 주변에는 항상 톡쏘는 알콜 냄새와 담배 냄새가 났다. 나는 그럼 그를 더욱 쌔게 앉았다. 그의 냄새가 나에게 까지 퍼지기를 바랬다. 그런 우리 둘을 보며 사람(직장동료)들은 속삭였다. 여자는 빚쟁이고, 남자는 노름꾼이래. 이 동네에는 이런 사람들 밖에 없는 건가. 그러니까 우리가 항상 더러운 민원을 받지. 너무나 작게 말해 나에게 들리지 않아야 할 말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비가 되고 나서 그 모든 말들이 피부로 느껴졌다.
“나비는 귀가 없나 봐.”
“뭔 소리야?”
“그들의 말이, 귀로 안 들리던 게 피부로 느껴져. 원래는 안 들리던 것들이 다 느껴져.”
”바보 같은 사람들 말 들을 필요 없어.”
”들리지 않아도 느껴지는데?”
정혁은 잠시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그래도 가루는 안 떨어져서 다행이야.”
나는 그에게 어깨를 기댔다. 그의 들숨에는 강한 술 냄새가 났다. 그날은 아마도, 고된 공사장 일이 있었나. 그때의 나는 온몸의 피부에 하얀색, 검은색 반점이 가득했고 더듬이는 나의 시선을 절반정도 가릴 정도로 길고 낮게 솟았으며 눈은 진정한 곤충의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이러한 바뀌어가는 모습보다도, 빚쟁이에게 쫒기는 나, 재개발 공사 인부의 청혁의 삶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여러 사람들의 입에 우리의 이름이 오르고 내리 다를 반복했고, 그것에 질리기 시작할 때쯤, 아마 그때쯤 일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나와 청혁에 대한 소문 이외에도, 나의 몸은 빠르게 나비가 되고 있었기에 일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눈이 육각형으로 바뀌고, 더듬이가 생기고,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서서히 붙는 상황 이외에도, 나의 몸은..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존재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얼굴의 정수리 끝에서 사타구니까지, 정확하게 몸의 절반을 가르는 가로선이 생겼다. 이마, 코, 입을 지나 가슴 중앙, 배꼽을 건너 사타구니까지, 정확하게 나를 절반으로 가르는 선이.
”너 완전 나비가 되려나 봐. 서서히 나비가 되려고 준비를 하다가, 몸이 완전히 벗겨지는 거지. 완전히 나비가 되는 거야. 마치 탈피하듯이 깨끗하게.”
그는 “깨끗한 존재”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치 인간도 탈피를 통해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혹은 공사장 시멘트 가루가 힐끗힐끗 보이는 뻣뻣한 흰색 머리카락과, 무엇인가 긁혀 하얀색 생채기가 가득한 손과 바보처럼 뭉툭하고 더러운 손톱 또한 탈피 이후에 깨끗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말이다.
5.
“내 동생을 구하러 가야 한다.” 나는 그것을 어떤 징조도, 어떤 낌새도 없이 눈치챘다. 집은 여전히 빛이 들지 않아 어두웠고, 여전히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했다. 어디선가 엄마가 얻어온 성경 구절이 박힌 액자, 먹다만 몇 년 지난 비타민 통들, 다 갈라지고 패인 마룻바닥, 대충 가로, 세로 구분 없이 찢어진 빈 우편봉투들. 오래된 밥솥 겉면의 끈적거리는 먼지들까지. 그 어느 것도 바뀐 것이 없는데 나는 깨달았다. 내 동생은 지금 사채업자들에게 잡혀갔다. 나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니, 아마도 동물(나비)의 직감이 발동된 것일 수도. 이전의 동생은 항상 집에 연락도 없이 찾아왔다가 연락도 없이 떠나곤 했다. 그 기간이 짧게는 3일, 길게는 두 달 까지도 넘었다. 이번에는 모습을 감춘 지 이주정도밖에 안 되었을 것이다. 동생이 엄마에게 당뇨 약을 전달해 주기 위해 가져온 약 봉투에는 정확히 2주 하고 이틀이 지나있었다. 하지만 동생은 나를 부르고 있다. 속으로 나를 애타게 찾고 있다. 사채업자에게 두들겨 맞아가며 생각나는 사람. 그 사람은 과연 사랑하는 사람일까. 나는 내가 죽기 직전에 누가 생각이 날까.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게 사랑이 맞을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동생의 존재를 찾아 나서야만 했다. 엄마가 먹을 밥 3일 치를 짓고 커다란 3개의 그릇으로 나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 보리밥과 함께 먹을 양파 볶음, 진미채, 멸치볶음도 같이. 오래된 조그마한 냉장고는 3일 치의 식량을 보관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힘겹다는 듯 울고 있는 냉장고의 큰 소음을 뒤로한 채 집을 돌아보았다. 몇 년 전과 같은 풍경, 몇 년 후에도 같을 풍경으로 느껴졌다. 나는 누워 곤히 자고 있는 엄마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집을 나섰다. 나는 곧 시외버스를 타고 청주로 내려갔다. 나의 아빠가 사업을 했던 곳, 가족보다 더 아꼈던 친한 친구에게 돈을 빌려준 곳, 불법으로 보증을 서고 그 책임을 가족이 져야만 했던 곳으로 나는 떠났다. 동생을 찾아 나서는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몸이 가벼워 한쪽 발이 다 떨어지기 전에 다른 쪽 발이 떠올랐다. 마음은 무거운데 몸은 점점 더 가벼워졌다. 나비가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잃고 크게, 높게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그 가벼운 발걸음으로 커다란 시장 천막 입구로 향했다. 입구부터 생선 비린내, 튀김집의 오래된 기름 냄새, 야채 가게의 흙냄새, 그리고 시장바닥에 잔잔하게 스며있는 역한 하수구 냄새들을 뚫고 사채업자들에게 향했다. 시장 천막 밑의 조그마한 건물의 2층에 위치한, 어둡고 먼지가 많은 정리 안된 계단을 뚫고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오래된 복도 휴대폰 대리점과 사설 카메라 AS 센터를 지나이름이 적히지 않은 문 앞에 섰다. 나는 깊은 심호흡을 한번 했다. 미친 듯이 떨리는 더듬이를 잡고, 문을 벌컥 열었다. 어둡고 오래된 복도에 문 안쪽의 환한 빛이 비쳤고, 그 빛에 시야를 잠시 잃었지만 곧 적응되자 동생이 보였다. 동생은 조용히 바닥에 온몸이 벗겨진 채로 누워 있었다. 또한 온몸이 물에 흥건히 젖은 채로. 동생은 마치 온 수분을 다 쥐어짜 내 주변에 물이 흥건한 스펀지처럼 보였다.
“내가 말했지, 저년은 어떻게든 찾아낼거라고.”
하나뿐인 업무용 책상에 앉아있는 사람이 나를 보고 말했다. 사무실 벽에는 뭐라고 적혀 있는지 모르는 한자가 크게 적혀있었다. 정말 영화에서 보던 조폭들의 사무실 같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구역에 들어온 나를 보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소파에 앉아 고개를 돌려 문 앞의 나를 쳐다봤을 뿐이었다. 우리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 문을 두드렸던 사람, 무릎 꿇고 반지하 창문을 들여다보려고 했던 사람… 다양하게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모여 있었다. 그들은 나를 위해 소파 상석 자리를 하나 만들어줬다. 나는 그 깊고 푹 꺼지는, 이전에 앉아 있던 양복 남성의 엉덩이 온기가 잔뜩 느껴지는 검은 소파에 앉아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빌린 돈.. 갚아야 할 돈.. 갚지 않은 돈… 보증서와 계약서.. 그리고 동생이 지금까지 갚아왔던 돈 등 나에게 빚과 관련된 다양한 설명을 했다. 나는 상석의 소파에 앉아 은행의 vvip가 된 것처럼 우아하게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으로 곧 한마디를 더했다. ”내려온김에 돈 좀 벌고 가. 안그러면 동생 몸값으로 먼저 이자 좀 갚고 데려가던가” 나는 곧 선택을 해야 했다. 나의 몸과 동생의 몸 중에 어떤 걸 지켜야 할지. 어떤걸 더렵혀야 할지. 나는 곧 나비가 될 것이기에 나의 몸을 희생하는 쪽을 택했다. 나는 곧 나비가 될테니까. 그 이후로 나는 허름한 여관방에 지내며, 밤에는 청주의 룸살롱 술집에 출근을 해야 했다. 그 룸살롱은 각도가 매우 가파른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는 지하에 있었고 나는 여전히 지상에서 한층 내려가야 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곳의 손님들은 나를 보며 “신기”해 했다. 이마에 불쑥 솟은 더듬이, 각진 육각형 눈, 하얀색과 검은색의 반점 피부를 보며. 그래서 그들은 나를 만졌고 자세하게 관찰했다. 어쩔때는 내가 마치 곤충 박물관의 전시물이 된것 같기도 했다. 살아있는 채로, 날개와 배, 머리 쪽에 얇은 바늘이 박혀 온몸이 드러난 채로 전시되어 있는 나비. 죽은지 오래되어 바람만 스쳐도 바스락거리며 가루가 될것같은 나비. 나는 그렇게 지하에서 나비가 되어 그들에게 위로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나는 그곳에서 나비로서 돈을 많이 벌었지만, 우리 가족이 갚아야할 돈의 원금도 깍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오히려 시간이 갈 수록 이자만 더 불어갔고, 나는 하루 벌어 어제만큼도 살지 못하는 삶을 살아갔다.
은수 언니. 나는 그럴 때마다 은수 언니가 참 보고 싶었다. 항상 일에 책임감을 가지는 사람, 쓸데없이 중압감을 받으며 스트레스받는 자신을 미화하는 삶.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고, 더 큰돈을 벌기 위해 더욱 나를 나비로 대하는 큰 룸살롱으로 가야 했다. 그맘때쯤, 청혁이 너무 보고 싶었다. 나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를 떠난 상황이었다. 빈지하 룸살롱에서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많았지만, 나는 그들 사이에서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 그러자 나는 곧 어느 순간부터, 마치 출산을 앞둔 임산부처럼 며칠을 간격으로 일정하게 온몸에 진통이 느껴졌다. 그때가 되면 온몸이 사시나무가 되듯 떨렸고, 배안의 장기가 꼬여왔고, 눈이 미친 듯이 가려웠고, 팔과 다리에 끝부분부터 저린 듯 감각이 없어졌다. 그리고 진통이 끝나고 나체로 바라본 나의 몸. 나를 절반으로 나눈 가로선이 더욱 두껍고 짙어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정말 곧, 온몸이 절반으로 갈라지며 정말 나비가 될 것 같았다. 이 더러운 곳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인 마냥 빠르게 나의 탈피가 진행되었다. 청혁이 말했던 깨끗한 존재로, 나는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
6.
나의 진통 주기는 점점 빨라졌고, 룸살롱에 출근하는 날보다 여관 모텔에 온몸을 떨며 부들거려야 하는 시간들이 더 잦아졌다. 그래서 룸살롱 관리자는 나를 더욱 짧고, 굵게 사용하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나를 좋아하고, 과격한 손님들을 상대해야 했다. “너 진짜 내 딸 같다.” 머리를 왁스로 넘긴, 그 도시의 고위 공무원으로 보이는 그 사람은 나의 허리를 붙잡고 말했다. 그는 나를 보며 서울로 상경한 자기 딸이 생각이 난다고 했다. 그래서 나의 입에 계속 다양한 것들을 넣어줬다. 어쩔 때는 노란색 황도, 빨간색 딸기, 가끔씩은 하얀색 위스키를 먹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내 몸 안의 어떤 것이 휘청거렸고 울렁였다. 마치 컵 안의 물이 바깥의 옅은 충격에 동심원을 그리는 것처럼.. 그는 약간의 자극으로 미세하게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더욱 재미있어했다. 곧 그의 주름지고 얇은 손이 나의 머리 위에 높게 올라갔다. 그가 과연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 가늠이 가질 않았다. 그리고 그의 손이 나에게 다가올 때, 바로 그때,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나는 그를 바라본다. 조그마하고 작은 등. 여전히 덥수룩한 머리, 하얀색 생채기가 많은 손. 청혁이었다. 청혁은 나를 찾으러 왔다. 아무 말도 없이 떠났던 나를, 여전히 무엇을 부시고 옮기느라 바빴을 그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나가자”
단 3마디만으로 청혁은 나를 설득시켰다. 그의 손은 이미 다 까져 피가 나고 있었다. 나는 나를 감싸고 있는 공무원의 손을 밀쳤다. 그는 술에 취해 손쉽게 나에게서 떨어져 갔다. 벌러덩 다리를 벌려 넘어지는 그의 모습은 처절했다.그 틈에 우리는 달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둘만의 세상으로 향하는 판타지 영화의 주인공처럼. 마치 청혁과 나는 수없이 읽고 연습한 대본대로 움직이는 듯이, 우리 둘은 아무런 대화 없이 소통했고, 움직였다. 우리는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으로 뛰었다. 그 어수선한 복도를 뚫으며, 어둡고 축축하고 미끄러운 바닥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우리는 계단 위에서 굴러 넘어져야 했다. 애처롭고 형편없이 우리는 바닥으로 굴렀다. 어느새 지상에는 양복을 입은 사채업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언제라도 우리를 지하로 밀기 위해 수만 번 발차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 같았다. 청혁은 무엇인가 다짐한듯 그들을 올려다 보며 허리춤에서 조그마한 칼을 꺼냈다. 뭉뚝하고 짧은 칼을.., 그들과 우리는 우당탕탕 한 번 더 계단에서 뒤섞임이 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와 청혁은 어느새 지상의 어두운 거리를 뛰고 있었다. 그는 나의 손을 잡고 계속 질주했다. 뛰고 또 뛰었다. 숨이 막혀 토할 듯 구역질을 할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멈췄다. 청혁과 내가 맞잡은 손에는 피가 가득했다. 끈쩍거리는, 철 비린내가 나는 붉은색의 묽은 피. 우리 둘은 말도 없이 서로를 빠르게 더듬으며 몸을 살폈다. 그리고 그 피가 서로의 것이 아닌 걸 알았을 때, 우리는 더 달릴 수밖에 없었다.
7.
나는 엄마를 경기도 외각에 있는 요양원으로 옮겼다. 엄마의 요양원 비용은 가뿐히도 국가에서 충당해 주었다. 나는 이를 위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내가 일을 했던 동사무소에 가 7장 넘는 서류를 작성해야만 했다. 우리 집에 돈이 없다는 증명 서류, 아빠가 실종되었다는 서류, 집이 반지하이며 곧 철거될 것이라는 서류… 나의 부족함을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서류가 한가득이었다. 곧 내가 전에 앉아있던 예전 직장의 자리에는 다른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말했다.
“여기 사람들, 다 진짜 착하죠?”
그 사람은 나를 살짝 경계하듯 쳐다보았다. 나 또한 이 동네의 민원인들을 그렇게 쳐다보았을까. 나는 엄마를 요양원으로 옮기고 난 이후에 아주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엄마는 말을 못 하니까, 내가 어디에 갔는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친척들에게도, 사채업자들에게도, 그리고 엄마 자신한테도. 동생은 나의 몸값으로 이후로 연락이 안 되고 있다. 아마도 나를 빼내려고 자기 혼자 어떻게든 돈을 벌고 있겠지. 줄지 않는 아빠의 빚을 갚기 위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런 동생을 보지 못해도 알 수 있었다.
나와 청혁은 이곳저곳 끌어모을 수 있는 돈을 급하게 모았다. 청혁이 지금까지 무엇인가를 부수고, 깨 드리며 모았던 돈과 내가 벌었던 모든 돈을 합쳐도 시골에 땅하나 살 수 없는 부족한 돈이었다. 우리는 어떤 구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는 그것을 “재개발 이전 비용”에서 찾았다. 우리 동네가 부서지고, 기존 입주민이 쫓겨나는 상황은 어느새 우리 집 반지하까지 적용되어야만 했고, 나는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추운 겨울, 메리야스를 입고 전용 의자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와, 항상 우리 집 앞 창문에다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윗집 아줌마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그 이전비용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버리기에는 아쉬운 돈이었지만, 시골 조그마한 원룸 빌라 전세는 간신히 얻을 수 있는 돈이었다. 재개발 반대 집단 농성을 시작한 이웃 주민들은 그 돈을 먼저 받아버린 우리를 배신자라며 욕했다. 노란색 두건을 쓰고, 비싼 거대 스피커를 틀고 아성을 찾던 그들은 투쟁심이 넘쳐 보였다. 나는 그런 그들을 마땅히 배신하고 경기도 외곽의 조그마하고 막막한 시골에 내려왔다. 빌라에서 나와 좀만 걸어가면 황량한 논과, 이름 모를 하수구 냄새나는 하천과 그 사이를 잇는 10미터 안되어 보이는 다리와, 주변에 항상 타는 냄새와 비닐하우스가 있는 곳. 항상 안개가 끼고 미세먼지로 햇빛이 가려 주황색 싸구려 전구가 켜진 것 같은 곳. 커다란 송전탑이 바로 눈앞에서 느껴지는 곳. 나는 그곳에서 청혁과 둘이 살았다. 청혁은 여전히 우리가 살았던 곳의 재개발 공사를 위해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살았던 곳, 처음으로 만났던 곳, 처음으로 키스를 했던 곳, 처음으로 밤을 지새운 곳을 부수는 작업을 위해. 혹여나 청혁이 사채업자들을 만날까 나는 그가 다른 곳에서, 다른 것을 부수는 일을 하길 원했지만 그는 고집을 꺽지 않았다.
“내가 마무리하고 싶어, 너가 살았던 동네를 부수면서 끝내고 싶어”
사채업자들은 우리를 애타게 찾고 있는 듯했다. 내가 이미 떠나버린 집의 반지하 현관문을 뜯고, 집안을 뒤지며 내가 이전에 잃어버렸을 머리끈, 동생의 어렸을 적 고무 카우보이 장난감, 엄마의 버려진 핑크색 내복을 통해 우리를 찾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를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내 주변에는 나를 아는 사람은 정말로 청혁과, 엄마와 동생, 사채업자들뿐이었으니까. (아마도 은수언니까지)
나는 이사를 하고 난 이후로, (반지하의 곰팡이와 멀어진 이후로) 찾아오는 진통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나를 절반으로 가르던 가로선 또한 더 이상 굵어지지 않았다. 지상의 원룸에서 조용히 청혁을 기다리며 집안을 따듯하게 덥히는 일, 청혁의 퇴근시간에 소파에 앉아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들이 나를 인간답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나는 평생을 보내고 싶었다. 그와 함께 늙어가고 싶었다. 작고 작은 둘이 뭉쳐 어른이 되어 담담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느새 꿈이 되었다.
8.
그날은 청혁이 늦게 들어왔다. 가끔은 연락 없이 술을 마시다 늦게 들어오곤 했기에, 나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나의 더듬이가 살짝, 정말 끝부분만 바르르 떨리며 나에게 알렸다.
“위험위험위험”
나는 곧장 옷장에 대충 걸려있던 겉옷을 챙겨 입고 집 밖을 나섰다. 밤 11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나는 주변의 황량한 논밭 옆에 깔린 도로를 달렸다. 나의 슬리퍼가 힘겹게 아스팔트를 긁고 지나갔다. 나의 발걸음은 내 동생을 찾으러 갈 때보다 더 가벼워지고 있었다. 안돼, 가벼워지지 마. 나는 속으로 말하고, 또 말했다. 나는 나비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낮고 오래된 부동산 건물을 하나 지나, 하천을 잇는 조그마한 다리를 지나, 새벽에도 하수구 냄새가 나는 아스팔트 길바닥을 지나쳤다. 그리고 골목길의 하나뿐인 조그마한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그를 기다렸다. 곧 그가 술에 잔뜩 취해 길에 나타나거나, 나에게 전화가 올 것이라 확신이라도 하는 마냥. 그날의 밤은 추웠고 전화부스 안은 내 입김으로 안개가 낀 듯 뿌옇게 가려졌다. 그렇게 나는 몸을 잔뜩 오므린 채 있었다. 마치 뱃속의 태아처럼, 혹은 애벌레 안에서 탈피를 준비하는 나비처럼.
몇 시간이 지났을까. 청혁은 보이지 않았고 전화는 오지 않았다. 새벽의 어둠을 뚫고 해가 뜨는 게 보였다. 거리에는 어두운 가로등 불빛과 떠오르는 태양의 푸른빛이 섞여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끌고 갔던 슬리퍼를 이제는 차분하고, 덤덤하게 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의 문을 열었을 때, 청혁이 있기를 바랐다. 내가 모르는 길로 우리 집을 들어와 코를 새근새근 골며 자고 있기를 바랐다. 곧 집의 문을 열었을 때, 집은 너무나 차가웠기에 나는 단박에 그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아침 쓰레기 트럭이 좁은 골목길을 지나가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다 티비속에서, 그러니까 찬란한 아침 햇빛에 가려 거진 보이지 않는 아침 뉴스에서 속보가 글자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강북 재개발지역, 트럭 돌진사고, 사상자 다량 발생”
나는 곧바로 나의 더듬이를 붙잡았다. 부르르 떨리다 못해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나는 나의 몸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나는 뉴스기사를 검색했고 그것은 곧 나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했다. 전날 밤, 재개발 공사지역 추가 근무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향해 8.5T 트럭이 공사현장을 덮쳤고, 약 5명이 다치거나 중상을 입었다고, 그중에 한 명은 트럭 바닥에 매달려 50m 이상을 끌려갔다고, 필요 이상으로 다양한 정보가 나에게 쏟아졌다. 경찰에게 끌려 큰 트럭에서 내리는 범인의 옷에는 노란색 조끼와 함께 머리에 두건이 써져 있었다. 그 두건에는 “재개발 절대 반대”가 빨간색 피 색깔로 강렬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청혁이 있을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예전 나의 반지하 집에서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 병원 1층 응급실 앞은 인파들로 가득했다. 검은색 패딩을 입은 채 두꺼운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들,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등장한 듯한 고급 양복을 입은 사람들…다양한 복장의 사람들이 응급실 앞에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응급실의 문은 내가 “피해자”의 가족으로 신원이 정해지고 나서야 열렸다. 그곳은 바깥과 다른 세상으로 보일 정도로 밝은 형광등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사람들 몇 명이 급하게 지나갔는지 뜨거운 열기가 응급실 안에는 가득했다. 나는 그 오른쪽의 조그마한 접수실에 가서 간호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피곤에 절어 보이는 간호사에게 “청혁”의 이름을 대었고, 나는 응급실 제일 끝 구석에 번호를 전달받았다. 청혁의 자리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다. 마치 그 누구도 보면 안되는 것처럼, 혹은 전시가 끝나 철거를 앞둔 전시물처럼. 나는 그 커튼 안에 혹시나 누군가 더 있을까 고개를 숙여 밑을 바라보았다. 마치 병원에서 커튼 안 누군가에게 절하듯 몸을 낮춰야 했다. 아무런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심히 커튼을 열어 보았다. 그 안에, 어두운 침대에 누워있던 청혁은 마치 개조당하는 기계처럼 온몸에 줄이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었다. 왼쪽팔에는 링거 주삿바늘, 검지 손가락 끝 심박수 기계, 코 안쪽에 달려있는 하얀색 호흡기들. 그는 마치 잘못이라도 한 듯 포박당한 모습으로 다양한 선들이, 다양한 색상으로 그의 위에 복잡하게 꼬여 있었다. 이곳저곳이 부서진 듯 팔과 다리에는 깁스와 붕대가 묶여 있었고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 있었다. 그는 눈을 혼자서 뜨기 힘들어 보이는 신생아 같기도 했다. 언제나 울기 위해 준비하는, 세상에 소리를 외치고 싶은 회색빛깔로 퉁퉁 부운 신생아. 오직 그가 청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는, 쭈뼛대는 머리카락들이었다. 쭈뼛대듯 뻗쳐있는 머리칼. 모든 곳이 변해도 그 머리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청혁의 침대 플라스틱 철봉에는 회색 양복 상위가 걸려있었다. 나는 그것이 내가 몇 년 전부터 계속해서 봐왔던 양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의 사고가 우연에서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 양복 하나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청혁을 빼내야 했다. 재개발 시위대라던가, 사채업자 용역을 통해 폭력 시위를 조장했다거나 하는 것들에게서. 손쉽게 정의를 가늠할 수 없는 그 미묘한 공간에서. 더 이상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에게서 청혁은 무고해 보였다. 나는 조심히 커튼을 열어 다시 응급실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바쁜 의사와 간호사들, 각자의 커튼 속 누군가 있는지 모를 뜨거운 응급실이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쓰고 왔던 모자를 씌어주었다. 그리고 조심히 그에게 달린 여러 줄들을 뺐다. 팔뚝에 걸친 링거, 코와 입을 연결하고 있는 산소호흡기, 손가락 끝에 걸린 심박계를 하나하나 제거했다. 잠시 그의 곁에 있던 기계에서는 날카로운 경고음이 들렸지만 나는 그것이 밖에 퍼지기 전에 기계의 코드를 뽑아버렸다. 나의 등에 그를 업고 다리를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뎠다.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는 분명 어제보다 조금 더 무거워져 있었다. 가끔씩 열리는 응급실의 정문에는 곧 빨간 플라스틱 모자를 쓴 소방대원의 브리핑이 열릴 예정으로 보였다. 기자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고, 나는 그 틈을 타 후문으로 나가야 했다. 그 누구도 우리를 보지 못하게, 그 누구도 우리를 따라오지 못하게. 나는 몸이 축 늘어진 그를 업고도 내 발이 점점 가벼워짐을 느꼈다. 점점 더, 완벽한 나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택시를 잡고 뒷자석에 청혁을 간신히 앉혔다. 그리고 기사에게 말했다.
“A동으로 가주세요”
잠시 힐끔거리던 택시기사는 백미러로 우리를 보며 말했다.
“그곳은 지금 재개발 공사중이야 아가씨, 가봤자 막혀있을텐데”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나는 모른척 말했다.
“그냥 가주세요. 돈 있어요”
택시가 출발하자 청혁의 머리가 툭 나의 어깨에 닿았다. 병원과 기자들과, 양복들은 우리에게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도착한 뒤 나는 그를 또 간신히 엎고, 노란색 “안전제일” 플라스틱 여러개가 나열된 골목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은 원래 그렇게 부서져 있던 것인지, 아니면 트럭이 부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부서져 있었다. 이전에 좁고 얕았던 골목들이 모조리 다 부서져 있어 이제는 넓고 황량한 광야를 지나는 듯 했다. 경사진 곳의 삐딱하게 주차한 노란색 포크레인, 수없이 바스러진 오래된 벽돌들, 높은 공사장 철근들과 부직포들을 뚫고 나는 예전의 우리 집을 향해 걸었다. 그 넓게 모든 것이 부서진 공간에 오직 들리는 소리라곤 나의 거친 호흡 소리뿐이었다. 그 한겨울에도 청혁의 입에서는 입김이 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나는 총 6번을 넘어져가며 걷고 또 걸었다. 바닥에 버려져 더러워진 재개발 반대 피켓을 뚫고, 수십 년간 추위를 견뎠을 다 부서진 기왓장과 구식 벽돌들을 뚫고.
곧 마지막에는, 나의 몸이 기억하던, 곰팡이가 가득했던 집 앞에 도착했다. 우리 집은 흔적도 없이 모조리 다 부서져 있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곳이 내가 예전에 살았던, 온 공간에 곰팡이 포자가 가득했던 나의 예전 반지하 집이라는 것을. 그곳은 모든 것이 부서지고 자연으로 묻혀서야, 그제야, 곰팡이로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나는 곧 나의 조그마한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부서진 벽돌을 치우고, 날카로운 깨진 유리, 어디서 나온 줄 모르는 볏짚들을 서슴없이 던져버렸다. 마치 나는 예전의 곰팡이의 존재를 찾으려는 듯이 미친 듯이 땅을 파버렸다. 초반의 얼어붙은 땅은 파면 팔수록 젖은 부드러운 흙이 나왔다. 시간이 지나자 예전에 반지하만큼 깊지는 않았지만 나는 간신히 그가 누울 수 있는 조그마한 구덩이를 팔 수 있었다. 나는 청혁을 그 구덩이 안에 몸을 접히며 조심히 눕혔다. 지상에서 구덩이안의 그를 바라본다. 여전히 그는, 조그마했고 작았다. 그리고 나 또한 몸을 굽히며 그에 옆에 조심히 누웠다. 온몸의 옷과 속옷, 심지어 양말까지 벗은 채, 정말 홀몸이 된 채로. 그러자 땅바닥의 한기가 온몸에 느껴졌다. 그 추위 속에서 나는 그의 머리칼은 쓰다듬었다. 그의 뻣뻣하고 거친 머리카락이 나의 손가락 마디 사이에 느껴졌다. 그의 머리를 만지는 나의 손에는 이곳저곳 얼어붙고 터져 피가 굳은 상처가 가득했다. 나는 눈을 잠시 감았다. 그곳은 자연이 나지막이 신음을 내는 소음이 가득했다. 우우웅 대는 옅은 바람소리, 어떤 존재에 밟혀 바스락대는 흙먼지 소리… 인류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파괴된 그곳에, 그 자연의 고요한 시끄러움 속에서 나는 이전까지 오랫동안 잊었던 진통이 느껴졌다. 그것도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가장 강한 진통이. 나를 가로 짓고 있던 가로선이 뜨거워졌다. 나는 엄청난 고통에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나는 그를 꼭 껴앉았다. 나의 이 뜨거움을 그에게도 주고 싶었다. 결국 그 가로선은 곧 나를 절반으로 갈랐다. 누군가 경박하게 찹쌀을 쩝쩝거리듯 쩌업 소리를 내며, 마치 뜨거운 햇빛에 상해버린 떡이 쭈욱하고 늘어나듯.
나는 인간인 나를 탈피했다. 여러 나비의 징조를 보였던 나의 껍질이 곧 벗겨졌다. 나는 탈피한 나의 껍질을 바라본다. 푸석한 머리카락, 투박한 엄지 손톱, 각질이 낀 팔꿈치, 등의 검은색 털, 발의 각질까지. 그것이 너무 생생해서 누가 보면 마치 살아있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아니 어쩌면 방금 죽은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결국 나는 그가 말한 대로 완벽한 나비가 되었다.
나는 막연하게 도착지를 정하지 않고, 날개를 휘적이며, 사선으로 휘청거리며.
날아갔다.
나는 곧 나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