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화(火)

by 똘이엄마

화()의 기능은 무엇인가?


<자, 이제부터 화를 낼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화를 내는 사람은 없다. 화가 난다고 느끼는 동시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열불이 난다). 우리가 화라고 부르는 감정은 감각의 차원에서 감지된다(불 화(火)자로 표시하지 않는가! )


언제 화를 내는가?

존재에 대한 위협을 느낄 때 우리는 불쾌감(화?)을 경험한다.


숙제를 안 했다고 야단을 맞아도 일단 화는 난다. 나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자극하는 감각 -잔소리, 흘겨보는 표정-공격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타당성을 떠나 개체가 가지고 있는 의사에 반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존재에게 위협감을 주고 이에 따라 분노의 스위치를 작동시킨다. 심한 불쾌감은 인지 기능을 선동, 철저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맹렬하게 화를 분출할 트집거리(명분)을 떠올리도록 밀어붙인다. 뜨거운 그릇을 만졌을 때, 심한 통증(불쾌한 감각)을 느끼고 떨어뜨리는 반사 반응처럼 이 때의 판단기능은 순간적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려는 이유(변명 또는 핑계)에만 몰두하게 된다. 비싼 건데 깨지면 어쩌나 하는 합리적 사고는 낄 틈이 없다. 당장 공격받은 존재 자체를 이 불쾌감에서 해방시키는 데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난 후 가장 먼저 경험하게 되는 정서가 ‘불쾌감’인 것은 바로 이런 본능적인 존재의 위협(배가 고프거나, 아프거나 등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받는 반려견도밥 먹을 때 건드리면 ‘화’를 내며 주인을 물 수도 있다. 생존 본능에 근거한 존재의 위협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화난다’ 고 할 때 우리는 가슴에서 울컥 치미는 느낌을 받고, 얼굴이 상기되고, 호흡이 가빠지고,머리가 띵하거나 뒷목이 당긴다거나, 심장 박동이 증가하는 등 상당히 고통스러운 신체 반응을 경험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그 불쾌감은 반사적으로 솟구치는 것이라 ‘화를 내지 말아야지’ 라는 말은 엄격하게 말하면 틀린 이야기이다.

정확한 표현은 다음과 같다.

‘화는 함부로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라면 화가 날 때 즉각 해야만 하는 생각이 있다.



모터를 사용하는 기계는 과열될 수 있다. 일을 하는 이상 과열로 인한 사고의 가능성은 늘 존재하는데, 우수한 기계일수록 이상 징후를 빠르게 감지하여 손상을 최소화하고, 원상 복구하는 통제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 기능이 없다면 그 기계는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사용할 수 없다.


즉각적인 화의 표현은 장기적으로 유리하지 않을 때가 매우 많다. 앞뒤 가리지 않는 화로 인해 사회적 존재감은 타격 받기 쉽다. 존재감을 지키려는 행위가 오히려 존재 자체의 의미를 훼손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화가 나는 상황은 대부분 상호작용 중 대립으로 인해 존재감에 도전을 받는 문제인데, 조절 과정을 거치지 않은 화는 역으로 상대방의 존재감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되기가 십상이며 그로 인한 상대의 의도적인 공격을 유발,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객관적으로 상대의 비난이나 공격을 받아야 마땅한 상황이었다면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대다수는 나중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는 후회와 자책으로 자신을 갉아먹는다.

이러한 부작용은 때로 존재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살아있는 이상 화가 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차단할 수는 없으므로, 화를 적절히 통제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결국 상대방을 자극하여 불편하게 할 수 있는 감정 반응이 아닌 조절된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부분을 담당하는 것이 인간의 이성이다.

이는 ‘화를 참는다’는 것과 차이가 있다. 뚜껑이나 문을 닫듯 화를 무조건 물리적으로 억누르려고만 한다면 조절 기능을 설계하고 훈련하는 것이 아니므로, 시간이 지나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크게 폭발해 버리고 말 것이다.


어떻게 화를 표현할 것인가?


상사의 부당한 대우에 화가 났을 때

많은 동료 앞에서 큰 소리로 상사에게 반말로 화를 낸다면 어떻게 될까?


화가 치미는 순간 반드시 떠올려야 하는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

2) 지금이 화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때인가?


화의 조건.png


상대의 행동이 부당하다고 -일단, 나의 입장에서- 판단하면 화를 표현할 권리가 생긴다.

다만, 이 단계에서는 화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이성을 작동시켜야 한다.

우선 생각할 것은 적절한 타이밍인가의 여부이다. 시간이나 장소가 적당한가를 판단한 후 나의 분노를 표현하되,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는 방법을 찾는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인정받은 방법은 예의를 갖춘 말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 뿐이다.

전략적인 저자세로 나가라는 뜻은 아니다. 화의 표현은 공격 자체가 아니라, 나의 입장을 이해 받으려는 소통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존중받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면, 상대방의 본능적인 위협감이 유발되어 방어적이거나 더 공격적이 되어 소통은 물 건너가게 된다. 즉, 나의 뜻을 알리기에 적절한 분위기 조성에 실패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이쪽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는 목적 달성은 아예 불가능 해진다. 존중을 존재감의 인식으로 본다면, 나를 비롯한 다른 존재에 대한 정당한 인식이야 말로 생명체의 권리이자 필수적인 의무가 된다.

요약하면,

화’ 가 정당한 것이라는 확신이 들면,

1) 나의 뜻을 알리기에 최적의 순간과 상황에 대한 분석을 거쳐

2) 상대에 대한 존중감을 포함한 보다 설득력 있는 표현 방법을 궁리한 후

3) 차분하게 전달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상대방의 영역에 아웃 처리되지 않는 공을 쳐 넘기게 된다.

‘넘긴 공’이란 상대방의 해명(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점에 대한 설명) 또는 사과(상대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점에 대한 인정)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뜻이다. 이는 곧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의미하며, 나 역시 나에 대한 존중을 바란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러한 단계를 거친 공감대는 감정 자체만의 교류가 아니라 이성의 분석을 거친 감정에 대한 이해를 뜻한다.

이런 절차를 밟았음에도 납득할 만한 상호작용에 실패했을 시에는, 상대방에 대한 기대수준을 정확하게 책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향후 비슷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실망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며, 한편으로 효과적인 방어 수단을 마련하는데 유용한 경험으로 활용할 수 있다.


나쁜’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더하면 남이 된다’는 노래가사가 있다.

악(惡)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더하면 약(弱)이 된다.


우리는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쉽게 ‘나쁜’ 이라는 말을 붙인다.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도 분명히 있다. 흔히 싸이코패스라고 불리는 사람들로서 보편적인 정서의 공감이 불가능하여 타인에게 가책없이 피해를 입히는 무리들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에게 끼치는 잘못은 악의가 없으며, 만일 가시적인 피해를 입혔다 하더리도 서투르다거나 미숙하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유는 우리 모두가 ‘주관적’ 이라는 공간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앞을 보고 있는 동안에 결코 뒤를 볼 수 없듯이 우리의 시야가 모든 공간을 다 아우를 수 없는 것처럼 사고의 구조도 같다. 있을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 모든 가능성을 모두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누군가의 무례한 언행에 내 입장에서 ‘나를 무시한다’ 고 받아들이는 것과, ‘저런 행동이 문제라는 것을 모르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실제로 받는 정서적 타격감을 완화해준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 생각이 맞다. 이러한 사고는 지나친 감정적 대응을 막아 물리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를 줄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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